유튜브 영상 PD수첩 '개구리 소년 주검이 남긴 미스터리'를 참고했습니다.
목격자가 유골 위치를 설명하기 전에 주황색 끈 보이시죠??? 저게 폴리스 라인입니다.
그럼 동그라미 친 쪽일 겁니다. (당연히 목격자 어르신께서 등산하시다가 잠깐 쉬시는데 움푹 파인 곳까지 내려가서 쉬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근데 영상에서 목격자는 넓적한 돌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유골은 나무 옆에 있었고, 넓적한 돌을 드니까 신발이랑 옷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신발이랑 옷을 누른 넓적한 돌에 앉으면 돌이 좌우로 흔들렸을 테고 그래서 목격자가 돌을 들쳐봤을 겁니다.)
만약 살해하자마자 저곳에 매장하고 유골(살해 당시에는 시신)을 나무 옆에 뒀다면 11년 동안 발견하지 못한 게 말이 안 되고 유골이 저위치에서 가만히 썩어가는 거는 더 말이 안 됩니다. (등산객에 의해 더 빨리 발견됐거나 3월에 배고픈 산짐승들이 유골을 물어갔겠죠)
당시 유족분께서는 경찰들이 유골이 발견된 곳도 수색을 했다고 했고, 대구시는 98년도에 IMF 때문에 실업자들을 상대로 와룡산 일대에서 가지치기 사업을 했었다고 합니다. (유골이 발견된 곳에 128명이 투입됐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골이 발견된 해 여름에 태풍 루사가 왔다 갔습니다. 목격자가 발견한 유골이 오랫동안 바깥에 방치됐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넓적한 돌 아래 아이 신발이랑 옷 같은 게 있었다고 했는데 이게 우연히 아이의 옷이랑 신발이 굴러다니다가 넓적한 돌이 옷이랑 신발 위에 올라갔을까요??
이건 범인이 이곳에 아이들을 묻었다고 일부러 표시해 놓은 겁니다.
왜 표시했냐고요?? 범인은 이 동네를 다 뒤져도 안 잡힐 자신이 있었던 겁니다.
그럼 이장하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도 있는데 굳이 왜 이장을 했을까요??
유골이 11년 동안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범인은 처음부터 이장 계획이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장을 해야 할 이유가 생긴거죠.
재개발로 인해서 이사를 가야 했던겁니다.
범행 당시에는 집 뒷마당이나 밭에 묻었는데 이장 하지않고 이사 가 버리면 본인 신분이 노출됩니다. 그래서 범인은 이장한 겁니다.
유골 발견 당시 화면을 보면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럼 당시에 유동인구도 많고 아파트 불 가로등 불도 환했을 겁니다. 근데 사진 가운데 공사하는 거 보이시죠?? 거기가 지금 성산 고등학교인데 당시에는 건설 중이 있었습니다.
밤에는 어둡고 사람도 없고 바로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어서 그쪽을 택한 겁니다.
(막혀있어서 공사장이나 등산로로 가는 사람이 아니면 그쪽으로 아무도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불미골에서 그곳으로 이동해서 살해를 당한 게 절대 아닙니다.
영상에서도 친구(선원지에 같이 가려다가 돌아온 친구)가 그곳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태권도에 갈 시간을 생각했다면 그곳으로 갈 이유는 더 없습니다.)
동네와는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 아이들과 마주칠 수 있는 곳, 선원지와 가까워서 집으로 데려가기 수월했던 곳, 그럼 분홍색으로 동그라미 친 10가구 중 한군데 범인이 살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10가구 중에 (8월 말에 태풍 루사가 왔으니까) 2002년 9월 1일부터 2002년 11월 1일 사이에 이사 간 혼자 사는 남자가 범인입니다. (2002년 9월 26일이 시신이 발견된 날짜인데 이장하자마자 이사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한 달 정도 기간을 두면 대략 11월 1일)
범인은 평소 집에 오고 가는 길에 그곳에서 노는 아이들과 몇 번 마주쳤을 것이고 그래서 범행 당시에 아이들과 초면이 아니었을 겁니다. 범행 당시 40대로 추정되고(아이들의 아버지 또래여서 덜 경계했을 것) 초범이 아니거나 죽이는 거에 익숙한 도축하는 사람일 겁니다. 초범이 아이 다섯을 죽이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럼 다음에는 어른 혼자 어떻게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와서 살해했는지, 왜 우철원군의 두개골에만 상처가 많은지 설명해 드리고
당시 경북대 법의학과에서 유골들이 그대로 있어서 이장했을 확률이 낮다고 했는데 이것도 반박해 드리겠습니다.
(사진 추가 : 성산 고등학교 2008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