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갖는 감정을 자신이 겪는 감정처럼 여긴다.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왔으며
모든 사람이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로부터 시작한다.
아니 사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일치할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매우 특별한 경우만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느님 한분께로부터 모든 인류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기에
사람이 갖는 감정과 생각이
모든 사람이 하나로 거의 일치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자 주장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여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예수님이 마치 나인 것처럼 , 내가 마치 예수님인 것처럼....
가감없이 내 느낌을 예수님의 느낌인양
그렇게 묵상하여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묵상을 실제처럼 한다면
그 묵상한 내용의 시간이
짧은 시간을 묵상할지라도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처럼 묵상하면 할수록
실제의 시간은 짧지만
묵상한 내용의 시간이 길어진다.
쉽게 말하자면 대충 묵상하면
묵주 1단의 내용이
아침에서 저녁까지의 일상생활을 묵상할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다시말하자면
실제처럼 묵상할수록
묵상한 실제 행동의 시간은 짧아지지만
묵상한 내용은 길어진다.
실제처럼 묵상할수록 많은 생각이
묵주기도 내용 안에 들어가니까 말이다.
왜냐하면 묵상한 내용의
실제 행동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묵상할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단의 묵주기도를 여러번 그리고 많이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라는 말이 된다. 실제처럼 할수록 말이다.
각 단마다 실제 행동한 시간은 짧게 짧게 밖에
묵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처럼 묵상한다면 1단이 금방 채워지니까 말이다.
마음과 느낌만으로 묵상을 연습하는 것도
어쩌면 이 방법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처음으로 연습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이 말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말았으면 한다.
자전거를 처음 탈땐
세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