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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묘의 여씨접근불가 전설

완소혜교 |2006.11.16 11:45
조회 57 |추천 0
관성묘' class='bl01' target=_blank>관성묘 또는 공자묘' class='bl01' target=_blank>공자묘(孔子廟)를 문묘(文廟)라고 하는데 대해서 관우의 묘인 관왕묘' class='bl01' target=_blank>관왕묘(關王廟)는 무묘(武廟)라고도 말한다. 명나라 초기부터 관왕묘를 세우면서 서민에까지 신앙이 전파되었다. 관왕을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우의 신령이 나타나 적을 멸한다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남으로 격퇴시킨 공은 다 관우의 음조에 의한 것이라 하여 명나라의 군대에 의해 관왕묘(숭례문 밖 남관왕묘)가 설립된 것이 그 시초였다.(선조실록 31년 기묘조) 이듬해 명군의 종용으로 동대문 밖에 동관왕묘를 세울 계획을 세우고 3년 뒤(1602) 완성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우를 모신 묘에 여(呂)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 그 영정 앞에 서서 바라보기만 하여도 기절하거나 죽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서울 동대문 밖에 관제묘(일명 동묘)를 지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여러 인부들이 기왓장을 지게에다 제각기 지고 사다리로 그 묘 지붕으로 올라가 내려놓곤 하는데, 그 중에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그 지붕 위에 막 발을 들여 놓으려고 하자 갑자기 눈이 캄캄해지고 정신을 잃어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것은 옛날 중국 삼국시대의 촉나라 장수 관우가 여몽(呂蒙)에게 죽었으므로 관우는 그 원한으로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영이 있는 근처에 오기만 하면 죽이는 것으로서, 그 인부도 그 까닭으로 죽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에도 이러한 것을 모르고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 묘 안으로 들어가다가 갑자기 눈에 피를 흘리며 기절하였다고 하며, 그래서 지금은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은 이 묘 안에는 들어자기 않는다고 한다.

 

  위와 같이 여씨 성을 가진 이는 관우묘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전설은 서울에 있는 관우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 각처에 있는 관우묘에도 이와 거의 같은 전설이 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지방에도 관우묘가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안동에는 선조 31년(1598) 명의 진정영도사 설호신, 성주에는 선조 30년(1957) 명의 장수 예국기, 남원에는 선조 32년(1599) 명의 도독 유정이 각각 세웠다. 이것은 모두 중국 건축 양식을 본떠 지었다.

    관우를 숭배하는 사상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전래되어 우리나라 민간에 새로운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우가 여몽에게 사로 잡혀 죽었으므로 해서 그의 원혼이 원수를 갚기 위해 여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데까지 그 신앙이 진전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최상수, <<한국민족설화의 연구>>, 성문각, 1988.

김용덕, <<한국민족문화대사전>>, 도서출판 청솔, 2004.

<<연려실기술>>

<<서울 육백년사>>

 

출처 : 네이버 오픈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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