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린은 카페 테라스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시선은 지나치는 사람들을 향한 채 잔 속에 빨대를 휘휘저었다. 얼음이 달그락 거렸다.
"벌써 이렇게 더워졌네"
고민에 빠져있는 그녀 앞에는 조그만 노란색 노트와 볼펜이 놓여 있었다. 이런 저런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메모를 하는 버릇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쭉.
그런 그녀를 향해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걸어온다.
남편이었다.
웃으며 인사하는 남편을 보며 따라 수린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노트를 향해 쓴 글들을 덮었다.
"안 더워? 들어가 있지"
"괜찮아. 오늘도 힘들었지?"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을 보며 수린은 주문하라고 고개짓했다.
주문하러 들어간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린의 손가락 사이로 '이혼' 이라고 써진 메모가 보인다.
...
1화
시어머니는 수저를 소리나게 내려놨다.
여전히 시끌벅적하게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그녀의 눈빛은 수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린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자신을 싫어하는 지 눈빛 한 번으로도.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였지만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때가 생각났다. 얼마 전 장마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 데려오기로 한 남편이 오지 않아 기다리다 비에 완전히 젖은 채 집에 돌아온적이 있었다. 서운한 마음에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 왜인지 묻자 시어머니가 같이 있으니 본인이 데려다 주겠다고 걱정하지말라고 전화했다고 했다.
뻔히 거짓말인 장난 전화였다. 우는 수린을 남편은 몰랐다며 미안하다며 달랬지만 그렇게 골탕 먹이고 따돌린 적을 셀 수 없는 수린이었다.
결혼 전에는 착하기 그지 없던 시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린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런 그녀에게 나는 화만 속으로 삭히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인 남편의 동생들과 그 아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깔깔 거렸다.
시어머니의 계략으로 수린은 지금 벌레와 같은 존재였다.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그런 시어머니의 취급에 시동생들과 동서들도 무시하고 그런 그녀의 취급을 당연히 생각했다. 유일한 막내 시누이만이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었지만 그녀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 사람들만 만나면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저 여자는 분명히 나를 증오해'
수린을 속으로 생각했다.
이유는 모른다.
난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도.
젓가락질을 지적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려워 해 세손가락으로 하는 젓가락질이 이상하다고 하셨다.
웃음바다가 된 식사 자리에서 수린은 한순간에 시댁식구들 사이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엄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수린은 금세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참았다.
지는 것 같았다.
기댈 곳 이라고는 옆에 앉은 남편 뿐이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그의 어머니를 따라 웃으며 음식을 입에 넣었다.
수린은 쓸쓸한 만큼 자신이 혼자라고 느꼈다.
주변의 웅성웅성한 소음이 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