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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나라는 바티칸시국

수정 |2009.01.03 03:06
조회 377 |추천 0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나라는 미국이 맞지 않나요? 예전에는 소련이였는데 지금은 분열되어서 미국보다 작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번 확인해봐야 겠네요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이탈리아 로마시 안에 위치한 바티카노 시국입니다. 국제관계에서의 정식명칭은 Sancta Sedes 입니다. 성좌(聖座)라는 뜻이지요.

 

1929년에 세워진 신생국가고 인구는 약 8백명 정도로 대부분이 성직자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바티칸은 기독교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의 로마시대 지명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바티칸 언덕과 평원으로 이루어졌으며 국경은 담장으로 되어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가입니다.

바티칸 대성전과 사도성전, 시스티나 경당, 바티칸 박물관 등 주로 종교 유적과 박물관, 도서관등의 문화시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바티칸 시국은 독보적인 기록물들과 역사 유산을 소유한 나라입니다. 누구도 열람이 불가능한 미공개 기록물들이 쌓여있습니다. 역사학자들도 모르는 기록물들이죠. 그야말로 진중히 보관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시대의 기록들과 기독교가 태동하고 생겨나던 당시의 기록물과 유적들을 온전히 보관하고 있는 그야말로 서구 기독교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천문관측술이 매우 발달한 나라입니다. 종교도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천문관측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인지 미국의 지진아들이 보는 3류 잡지에서 바티칸과 외계인과 교신을 한다는둥 찌라시 공상글들이 생산이 되기도 하죠

 


 

이탈리아 로마시 안에 왜 이렇게 희한한 나라가 생겨났을까요? 바로 교황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먼저 교황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를 해야 바티칸의 존재 이유도 설명이 되는 것이죠.

 

로마는 성베드로가 순교한 장소로 전해지고 일찍이 교회가 생겨나 시련속에서도 번창을 한 곳이죠. 초세기 기독교인들에게는 로마는 기독교의 중심지이야 그야말로 신성한 성지와 같은 곳이였습니다.

교황이라는 존재는 바로 기독교의 중심지인 로마교회의 총대주교로 그 자리에 오른 이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써 일해야 할 교회조직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아드려졌죠

 

그런데 이 교황이라는 존재는 위정자들에게는 아주 골칫거리 같은 존재입니다. 없애버리고는 싶은데 그러지는 차마 못하겠으니 이 종교권력이라는 것이 위정자들에게는 정말 신경쓰이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교황이라는 존재가 첨 생겨났을때부터 권력의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회를 처음으로 세우고 확립해가던 수많은 교황들이 로마제국의 위정자들에 의해 참수를 당했다고 전해지죠. 초대교황이라는 베드로부터 고르넬리오, 루치오 1세, 식스토 2세등 초세기 많은 교황들이 줄줄이 유배되거나 처형당했다고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와 교황을 인정하고 나서도 권력과는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교황과 교회가 권력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죠. 역사적으로 보면 교황과 교회가 세속권력의 손아귀를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쓸때도 있었고 세속적 권력에 잡혀서 놀아난적도 있었죠.
 
아무튼 기독교 공인 이후에도 교회(종교권력)와 위정자들간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의 국교로 격상되어 권한을 확장해가던 교회는 5교구를 중심으로 재치권을 행사했는데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수도를 옮긴후 교회의 중심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동하죠.

기독교 탄생시기부터 변함없이 이어져오는 교회의 수장이자 상징이라는 교황, 즉 로마총대주교에 이어 새롭게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교황 다음으로 두번째 서열로 받아드려지게됩니다.

 

6세기 고트족의 봉기로 결국 서로마제국이 결국 무너지죠. 세속권력이 무너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로마총대주교인 교황은 건재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로마제국 위정자들의 간섭에서 벗어난 좋은 기회였죠. 고트족은 이미 로마제국영토안으로 허락이 되면서 로마인들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들은 후에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해 왕국을 세우고 이들 왕국은 기독교문화의 수호자라고 불리게되죠


6세기말기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게르만족들에게 활발히 포교를 하기 시작해 서유럽 각지에 기독교를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고 세력을 확대해 갑니다. 

서유럽으로 세를 확장하며 로마교회(서방교회)와 교황은 동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획득해나갔죠.

그로인해 유럽인들은 로마 총대주교를 확고하게 교황이라고 받들게 됩니다.


제국이 무너진후 로마의 교황은 하나의 도전을 받게 되는데 바로 거대한 기독교 왕국을 확립한 6세기의 비잔틴제국의 수장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탈리아반도를 제국령으로 선포하고 그의 권위아래 두었기 때문에  교황은 다시 황제의 권한안으로 들어가죠.

하지만 서유럽에 기독교를 정착시킨 그레고리오 1세의 노력으로 동로마황제의 세력에서 점차 벗어나 서방교회만의 독자적인 위상을 세웁니다.

 

서방교회의 수장인 교황과 비잔틴교회와는 대립관계일 수 밖에 없었으며 후에 완전히 돌아서게 됩니다. 그래서 교황을 위시한 서방기독교와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동방교회(정교회)로 나뉜것이죠. 양교회가 서로 화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정통과 보수를 자처하는 러시아정교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죠

 

아무튼 이렇게 기독교와 교황은 서방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당연히 유럽의 위정자들에게는 달가울리 없죠

교황은 또 종교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성이나 땅을 기증을 받게 됩니다. 좋게 말하면 신앙심이 투철한 이들에게 기증을 받아 그것이 재산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교황의 권위를 보호하려는 프랑크제국의 위정자들에 의해 교황령이라는 넓은 땅에 대한 권한을 인정받습니다. 땅은 곧 권력이죠. 군대도 없는 성직자가 세속권력의 비호아래 넓은 땅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세속적인 권력을 갖게 됩니다.


후에 프랑크왕국이 분열하고 교회는 세속적인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면서 성직도 아닌 부적격자들이 교회를 다스리고 성직의 신성함이 무너지죠. 한때 유럽의 지배자 크랑크왕국과 잘지내면서 잘나가던 교황과 교회의 권위가 크게 손상됩니다.
   
그래도 이 교황제라는 것은 영원히 불멸할 것 처럼 지속되죠. 로마제국이 무너져도 이민족들이 쳐들어와도 새로운 정복자들이 들어오고 통치자들이 바뀌어도 교황의 권위와 교황령은 계속 인정이 됩니다.

이것을 최초로 지워버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보나파르 나폴레옹입니다. 시민혁명을 틈타 프랑스의 정권을 잡고 세계정복을 하겠다고 설치던 인물이었죠. 이탈리아를 재편하면서 교황령을 아예 지워버립니다. 자신이 절대권력자이니 교황은 조용히 교회에나 쳐박혀 있거나 없어져버리라고하죠.

교황은 프랑스로 망명중에 숨지게 됩니다. 전유럽이 이를 주시하죠. 유럽연합군은 나폴레옹을 격파시키기위해 힘을 내고 결국 나폴레옹은 패배하고 유배되어 씁쓸한 결말을 맺죠

 

다시 교황령이 회복되었지만 이는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다시 지워집니다. 다시 온유럽이 이를 주목하죠. 통치자들이 이때문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탈리아의 위정자들과 교황간의 대립관계와 불편함은 뿌리 깊은 것으로 신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한 쉽게 결판이 날 문제는 아니였죠.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오던 교황과 이탈리아는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고 사실상 교황은 모든 협상을 거부하고 유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독재자 무솔리니의 통치아래서 교황청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은 극한 불편함과 대립으로 치닫습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바티칸시국의 선포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로마시내의 땅 -성스러운 땅인 바티칸-을 조금 때어서 교황에게 헌납하죠. 대체적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러니까 현 바티칸 시국은 바로 악명높은 독재자 무솔리니와 교황청과의 협정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무솔리니로써는 일단 골칫덩이인 교황을 처리할 수 있었고 교황청도 자치권을 인정받게 되어 한숨 돌린 것이죠. 교황 제거는 전세계로 퍼져버린 십여억의 신자와 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고 긁어부스럼인것이죠.

 

자, 그 이후로 새로운 독립국가인 바티칸 시국이 탄생되어 신생독립국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신생독립국이 탄생한 것이죠. 교황은 이탈리아와는 별개의 신생독립국가의 수장이니 이탈리아정권으로써도 그 권위를 누르지 않아도 되고 교황도 정치를 떠나 종교적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이죠. 

 

2차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이탈리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세계의 시선이 다시한번 이탈리아와 교황에게로 쏠리게 되죠. 카톨릭 신자들은 새로운 이탈리아 정권의 추의를 살펴보면서 저들이 교황을 어떻게 대접을 할 것인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 시국 사이에 다시 협정이 체결됩니다. 바티칸은 교황령이라는 것은 종전과 다름이 없고 바뀐 것은 신생 이탈리아 정부는 카톨릭을 더이상 이탈리아의 국교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에 합의를 하죠.

 

신생 이탈리아 정부는 교황을 외국의 국가원수로 존중하되 분명하게 거리를 둔다는 것이죠. 종교는 정치에 관여를 할 수 없으며 이탈리아내 그 영향력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는 표현입니다. 교황은 엄연히 이탈리아와는 별개인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로써 이탈리아 정부와 외교활동을 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영향력 행사나 내정간섭에 대한 것은 어림없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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