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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이란 말 너무 남용되는 것 같아

생각중 |2022.10.09 23:48
조회 794 |추천 1
안녕. 30살인데 10대 이야기에 글 쓰는 거 먼저 미안해.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이제는 우리가 좀 너무 예민하게 여기저기에 다 "가스라이팅일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생각공유 겸 몇 자 적어보려고 해. 누가 볼까 싶지만.

요즘 환승연애 보는데 너무 재밌는 거 있지. 보는 중에 당연히 SNS나 유튭에서 '규민의 가스라이팅' 이라는 주제를 많이 접하면서 고민하게 됐어. 내가 생각하는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먼저 소개해보려고 해!

먼저 내가 생각하는 가스라이팅의 조건/요소는,

1. 관계적 요소: 상하적 위치, 이익관계에서의 주도권, 정신적인 의존성의 유무

2. 가스라이팅의 내용: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상대방 스스로의 판단력을 상실시키고 동시에 상대방의 상실된 판단을 둘 사이의 관계에서 주도권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게 유도, 암시, 혹은 세뇌하는 경우

크게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해.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주도권이 있는 관계에서, 상대방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무시하고 부정하면서 자기의 생각만을 주입하고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거 같아.

그런데 있잖아. 많은 사람들이 요즘 단순한 의견다툼, 조율, 갈등, 연인 간의 이해 불일치로 인한 설득의 과정 등을 가스라이팅과 연결짓는 경향이 많은 거 같아.

Brenna Holland 라는 사람이 쓴 "For Those Who Experience Gaslighting, the Widespread Misuse of the Word Is Damaging" 이라는 책에서 이런 견해가 있어. (책제목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널리 잘못 사용되는 단어들은 해악이다" 라고 대충 해석할 수 있을 듯).

감정지능을 연구하는 예일 센터의 공동창립자중 한 사람인 로빈 스턴 박사는 "가스라이팅이란 말은 종종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요구 받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할 때, 그것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스라이팅이 아니다" 라고 말해.

많은 심리상담사, 정신의학분야 전문가들이 가스라이팅의 오용/남용을 우려하고 있어.

첫번째로 내가 생각할 때,
사람 관계에서 갈등과 타협, 논의의 단계는 피할 수가 없어. 예를 들어보자.

같은 학원 친구랑 학원 끝나고 저녁을 밖에서 먹으려고해. 메뉴를 선택할 때, 한 친구는 치킨을 먹자고 해. 다른 친구는 자기는 어제 치킨을 먹어서 김밥천국을 가자고 해. 근데 또 다른 이유로 본인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친구가 본인을 이해해주길 바라.

이런 대화가 있었다고 치자. "미안, 솔직히 나 용돈도 안받고 형편 넉넉치 않아서 편의점이나 김밥천국 분식 같은 거 말고는 조금 힘들어. 너희 집은 조금 부유한 편이니까 너가 나한테 맞춰주는게 더 맞지 않아?"

대화방식이나 스타일은 둘째치고, 이거 가스라이팅일까?

친구관계는 보통 복종, 상하적 위치, 정신적인 의존성이 있는 관계는 아니지. 게다가 다른 친구는 여러가지 선택 사항이 있어. 집에가서 밥을 먹는다든지, 오늘은 김밥천국 가고 다음부터 다른친구랑 치킨이나 비싼 것들을 먹으러 다닌다던지, 막말로 저런식으로 대화하는 친구랑 담부터 쌩까버린다든지. 결국 이런 방식의 설득은 일견 가스라이팅인가? 하고 생각이 들지 몰라도 본인에게 정신적으로 의존적이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거지.


다음 예시로 넘어가 볼까.
환승연애에서 규민이 "해은이 너가 술취해서 이러는거 x에 대한 예의가 아닌거 같아. 나는 뭐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불편할 수도 있을 거 같아." 같은 식의 발언을 했지.
사실 둘 사이의 배경이 중요하지만 대략적인 것들만 가지고 말하자면,

1. 둘 사이의 관계에서 해은이가 규민이에게 정신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것 처럼 보이긴 해. 해은이 말처럼 규민이를 아빠 같이 따랐고 규민이 본인을 (취준 때의 힘든 생활, 그리고 가치관이나 성장을) 키워줬다고 했으니까.

2. 규민의 발언이 상대방을 규민 본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종용하는가? 본인의 말만을 진실이나 당위성을 두고 받아들이게 하는가?

2번의 경우에는 그렇지는 않아보여. 규민은 질투심을 보일지언정 지속적으로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 이런 관계에서는 가스라이팅 성립하지 않아.

내가 더 심각하게 생각했던 규민의 발언은 "너가 나연 선택 안 해주면 내가 너를 미워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였는데.

가스라이팅이 '지속적인 관계적 암시' 라는 점을 생각하자면 규민이 '내가 그렇게 까지 말한건 미안, 너 선택 이해해. 너가 후련해보이니까 됐어. 미워하지 않을게' 라고 말 한 부분에서 또 가스라이팅은 아닌거야. 해은이 스스로 규민의 의사에 반대되는 행동이나 생각을 주장하고 고수했음에도 본인의 의견만을 듣도록 본인의 생각에 의존하도록 지속적으로 종용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이나 생각을 존중해줬기 때문에.

그럼 뭐가 가스라이팅의 전형적 표본일까?

"당신 같은 여자 누가 만나줄 것 같아? 나 정도 되니까 만나주는 거지," "여자가 뭘 안다고 나서?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반이나 가" 등의 발언이 그야말로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발언들이자 사고방식들이야.

좀 긴 글이 돼버려서 누가 읽을까 싶지만 내가 긴 글을 쓴 이유를 다시 정리하자면,

본인이 겪는 일이 가스라이팅이 아님에도 가스라이팅이라고 의심하거나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본인이 가스라이팅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본인의 선택 때문은 아닌지 고민해보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주변의 여러 다른 가능성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라서 이고. 실제로 가스라이팅을 겪지만 그게 가스라이팅인지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에겐 조금이나마 "이게 가스라이팅이 맞구나" 하는 확신을 주고 싶어서였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맙고.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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