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흙수저 글을 읽고 제삶과 비슷해 글남깁니다.
찢어지게 가난 했던 시절 겨울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왔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그때 제가 다섯 살이라고 하더군요.
딱 하나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는 아빠는 술먹고 들어오면 엄마를 때렸던 기억은 있어요. 나중에 왜 집을 나왔냐 물어 보니 사대독자에 아들이 엄청 귀한 집이였는데 아들 못낳는다는 할머니의 시도때도 없는 폭언과 아빠의 폭행..
그러던 어느 날 갓난쟁이를 안고 어떤 여자와 집을 들어와 자기 아들이라며 이제 엄마는 필요 없다고 나가라고 했대요
그 길로 짐을 싸고 제 손을 잡고 도망치듯이 집을 나온거 였어요.
그렇게 엄마와 나와서 살던 집은 주택인데 바로옆에 안쓰는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서 살았어요. 너무 힘들었던 건 겨울에 잠바를 껴입고 누워도 살이 에는듯한 추위와 화장실이 밖에 있어 요강을 두고 썼는데 그 요강이 아직까지 기억이 나네요ㅎㅎ 그래도 전 엄마만 있으면 행복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니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 일이든 남의 집 식모살이든 닥치는 대로 다 했어요
정말 감사한 건 주인집 아주머니가 저희 사정을 알고 매번 반찬이며 과일이며 주셔서 매일숭늉에 마른 반찬 올려가며 먹었죠. 그렇게 초등학교 까지는 버텼던거 같아요.
중학교에 가야 되는데 교복 살 돈도 부족해서 건너 건너 아는 집 언니가 입던 교복을 물려 받고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체육복까지 물려받으며 악착같이 살았어요.
옷도 물려받고 버려져 있는 잠바가 있으면은 엄마가 주워다 빨아서 입히고 어린 나이에 뭐가 그렇게 일찍 철이 들었는지 싫은 내색 한번을 안했네요.
중2부터 학교마치면 고기집 횟집에서 당시 최저시급도 못받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저녁은 거기서 주는 밥으로 떼우며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았던 거 같아요 그냥 제가 조금이라도 엄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저한텐 최저시급 따윈 중요하지 않았어요 밥 주는 거와 저를 써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지덕지였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공부도 포기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학원은 고사하고 문제 집 살 돈도 없어 학교 한켠에 폐종이쌓아두는 곳에 문제집도 많이 버려져 있었는데 저학년꺼든 고학년꺼든 가리지 않고 주워다가 풀었어요. 뻔히 답이 적혀져 있는데도 이 문제는 왜 답이 이거지? 하며 혼자 해석 하면서 풀고 또 풀고 그렇게 공부했네요..
그렇게 저희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삶은 여전했어요. 낮엔 학교 저녁엔 알바..
선생님께 제 사정을 말씀 드리니 감사하게 야자는 빼주셔서 평일이고 주말이고 쉬지 않고 매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친구들한테 조롱도 받았죠 그지라고 근데 대꾸못했어요 그지가 맞으니까..
그렇게 한 달에 대략 5-60은 벌었던거 같은데 정말 한푼도 안쓰고 모아서 엄마와 살던 주택을 나와 보증금200에 월세20하던 미투를 구해 이사했죠. 너무 기뻤어요 겨울에 따뜻하고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거든요.
그날 엄마랑 외식을 했는데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었는데 그 맛이 아직 입에 맴돌아요. 우리돈으로 탕수육을 시켜 먹긴 처음 이었거든요ㅎㅎ
그러다 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 하게 되었고 등록금 때문에 포기 할까 싶었는데 엄마가 통장을 내밀더군요
10년 동안 엄마도 쓸 거 안쓰고 나 대학 갈 때 준다고 2000 만원을 모은 통장이였어요 둘이 부둥켜안고 건물 떠나가라 울었죠.
대학교 가서도 매일 알바 공부의 지옥이였지만 이또한 행복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한테 용돈 받아가며 생활
하는게 부러웠지만 나와 엄마의 삶을 원망 해 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저 대학교란걸 다니다니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곳에 취직 해서 매달 엄마한테 용돈드리는 게 소원이였거든요
교수님 눈에 잘 띄어서 조교도하고 과 행사도 도맡아서 하고 학교에서 하는 행사, 프로젝트 뭐든 물불 안가리고 싹다 참여했어요 상도 몇번받고 그 덕택에 이력서 쓸때 많이 도움이 되더라구요.
졸업을 앞둔 2월 초, 이름대면 다들 아는 대기업에 최종합격 통지도 받고 꿈만같았지요
첫 월급 받자마자 백화점에 가서 엄마 신발 부터 사 드렸어요 왜냐면 엄마가 신발 사이즈를 짝짝이로 신고 다녔거든요 왜 신발사이즈를 짝짝이로 신냐하니 시장갔는데 짝이 안 맞는 신발을 완전떨이를 하길래 몇천원에 산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첫 월급 으로 엄마 새신도 사주고 백화점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어린이이마냥 신났었네요ㅎㅎ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 사내연애를 하다 재작년에 결혼을 하고 다음달이면 출산예정이네요
가진 거 하나 없는 저를 다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너무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 악착같이 살다보니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고 딱 저보고 하는 속담같아요
그러니 흔히말하는 흙수저라고 절망하지말고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우리삶에도 볕들날이 있지 않을까요?
주저리주저리 길었네요 저같은 사람도 살아가니 그냥 우리 모두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