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지금부터는 부제목 없이 이어집니다.
방학이 끝나가도록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스런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작업에 빠져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준하와 하은을 잊고 살았다. 물론 가끔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거나, 불쑥 찾아오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뜻밖의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박교수에게 새로 옮긴 내 거처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이른 아침부터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원래, 보물찾기 게임을 즐겼거든. 왜,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면 꼭 보물 찾기
게임을 했었잖아. 그때마다 나는 다른 애들하고는 다르게 서너개쯤은 거뜬하게 찾아내곤
했었지.
그의 말에 나는 어이없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의 선배가 며칠 전부터 전시회를 시작했단다.
거기에 나를 꼭 데리고 가고 싶었다면서 아침부터 나를 불러낸 것이다.
-알아둬서 나쁠 거 없잖아, 도움이 될거야. 당신, 한국에서 활동한 적 없지? 거봐, 나 같은 사람
알아두면 이럴 때 쓸모 있고 좋잖아. 하지만 한 가지만 알아두라구...여긴 한국이야. 대화하다
보면, 당신 생각과 많이 달라서 확 깨는 것두 있을 거야. 다, 그런건 아니지만...우리 나라 사람들
개중에 그림이라면 볼 줄도 모르면서 환장부터 하는 인간들 있거든...무식한 거 들통날까봐
그저 명품이다, 작가가 누구냐..거기에만 관심 갖는 부류들이 좀 있어.
-나두 한국 사람이야. 박교수는 가끔 내가 한국인이라는 거 잊어버리나봐요.
생각보다 이른 아침인데도 갤러리엔 사람이 많이 몰려 있었다. 그림에 대한 보충설명과 이해를
얻기 위한 설명서가 그림 아래에 따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보통 그림의 제목이나
완성된 날짜 등이 표기되어 있는데 사람들의 편리를 위한 노력으로 보이긴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보다 오히려 모델쪽에 가까우리만큼 젊고 화려한 여자가 박교수와
조금은 과장된 포옹을 하며 반긴다. 여자의 시선은 마치 나를 경계하는 듯 했다.
-이쪽 일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그녀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다. 박교수는 둘이서 잘해보라는 식의 제스처만 취하고 다른 무리들
속으로 사라진다.
-네, 유지니라고 합니다.
-우리 구면이죠?
-글쎄요...기억이...
-00대학 나왔죠?
-네...
-혁이....알죠? 나, 혁이 누나에요. 혁이 장래식때 우리 봤잖아요. 그 전에도 몇 번쯤 봤구...
파르르 입술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어진다. 이제서야 겨우 그녀를 알아볼 것도 같다.
**
가르치다 보면 유독 재능도 보이고, 노력도 보이는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학생이었을 땐
어른이 되서 내가 만약 선생이란 직업을 갖게 되면 결코 편애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별수 없는가 보다. 그래도 열 손가락 중에 유난히 내게 이쁜 학생이 하나쯤은
생기는 걸 보면 말이다.
-계십니까.
사무실로 들어와 벽에다 노크를 하며 서 있는 준하를 본다.
-와서 앉어, 나 이거 마저 끝내려면 삼십분쯤 기다려야 돼.
-알겠습니다
책장에 꽂혀진 잡다한 책들을 들춰 보더니 내 앞에 앉으며 진지하듯 말한다.
-나 이번에...하기 싫은 거 맡았어.
-뭔데?
-너두 알거야...강수현이란 여자.
-알지...좀 유명하지 그 여자....너 정말 그렇긴 하겠다.
강수현이란 여자는 국내에서는 아주 잘나가는 화가다. 그 유명세 덕분에 조금은 도도하고
건방지단 소리를 듣긴 한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까탈스러워서 원만한 대인관계
가 힘들다고 들었다.
-싫다구 하지 그럼.
-살면서 어떻게 좋은 것만 하고 사니...싫어두 할 수 없지만...정말 안내킨다 이번엔.
-다른 사람 보내라구 그래. 준하씨 잡지사엔 준하씨 말구는 사람 없냐.
-아무도 나서질 않아. 결국 제비뽑기 했는데 내가 졌어.
-흑기사 부르지 그랬어?...그건 내가 자신 있는데...그래서 기분 많이 안좋니?
-조금...
-내가 어떡하믄 풀어질까. 저녁 먹구 들어갈까?...근사한 데 가서.
-안 내켜.
-그럼 나, 지금 일어날까?....그래, 그게 좋겠다. 낼 아침 일찍 나와서 하지 뭐.
-그러지마...
-아냐, 일어나자. 내 말 들어...
**
강수현과 인터뷰 일정이 내일이다. 시간을 채크한다. 몇번의 캔슬을 놓고 난 다음에서야 겨우 약속을
정할 수 있었다. 유명인들은 항상 이런식이다. 오히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소외된 이들이나
오랫동안 초야에 묻혀 있던 진주 같은 사람들을 찾아 다닐 때가 훨씬 낫다. 이번 건은 정말이지
맡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매스컴으로만 그녀를 보았는데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틀 전부터 지니선배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휴대폰은 꺼져 있고, 집 전화는 응답기로 넘어가버린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휴대폰이 울린다.
-네, 서준합니다.
-.....
-여보세요?
상대는 말없이 끊어버린다. 발신자는 낯선 번호다.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서 준하씨죠?
-네, 그런데요...
낯선 사내의 목소리다.
-저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유지니씨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아, 네...그런데 무슨 일로 저에게...
-이하은씨에게 먼저 전화를 넣었더니 수업 중이시라고 해서...혹시..유교수랑 최근에 연락한 적
있습니까?
-아니요, 무슨 일인지..말씀부터 하시죠.
-오늘부터 수업이었는데 유교수가...연락이 되지 않아서요. 집으로 찾아가 봤는데 없는 것
같더군요. 휴대폰도 꺼져 있고...혹시 아실까 해서.
-지니선배한테.....무슨 일 생긴거죠?....무슨 일입니까.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정말 벅차네요. 사무실에서 눈치 보믄서 이 글을 올리려니까
마니 힘듭니다..ㅋㅋㅋ
오늘 하루도 행복 만땅 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