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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흑인소녀 이야기

해내리 |2022.12.05 08:06
조회 172 |추천 0

나는 죄인입니다 

공연한 자기비하로 하는소리가 아닌 

실제 징역 5년을 살다가 나온 

전과자입니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주절주절 떠드냐고 

힐난하실 여자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구차한 자기변명이 아니라 

제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이 담긴 

성찰의 고백정도로 생각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상 간단한 제 소개부터 해야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갈수 있겠군요 

저는 집안에서 2대독자고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상무이사까지 역임하셨는데 

퇴임후엔 나중에 혼자 남게될 제가 걱정이 되어 

경기도 위성도시에 사다놓으신 

빌라세채와 4층짜리 상가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뒤엔 

아버지가 물려주신 빌라와 상가건물 관리하면서 살아온 

요즘 그 소위 천당아래 뭐라고 불린다는 

건물주입니다. 

 

참고로 상가건물엔 1층엔 편의점에 2층엔 일반 중소업체가 

입주해있고 

3층과 4층엔 교회가 있으며 

빌라는 대개 독거노인이나 젊은 신혼부부 또는 역시 젊거나 중년 

정도의 독신자 혹은 이혼하고 아이들과 함께사는 중년여성 

이렇게 대개 형편은 열악한편에 속한다고 할수있는이들이 

전세나 월세등으로 들어와 사는 

15평 정도의 서민형빌라입니다. 

 

그러다보니 좀 뭐랄까...징크스라면 징크스랄까 

아무래도 개인 사는 사정이 열악한이들이 많아서그런지 

저희 빌라 월세나 전세가격이 그리 비싸다고 할수 없는데오 

반년이나 1년을 못 버티고 떠나거나 그러는 경우가 많은 

그런 빌라입니다. - 사실 근데 이럴 경우 건물주 입장에선 되려 

땡잡은 셈입니다. 여하튼 오래 버티는이보다 자주 들어오고 나가는 

입주민이 많으면 그만큼 전세든 월세든 새로 계약하는일이 

많아지는것이니까요 

 

특히 1동 101호의 경우가 좀 상황이 심했는데 

한...근 5년 이내에...가령 이혼하고 혼자 아이키우는 젊은 아주머니 

또는 아마 자녀가 없는듯한 노부부 

또 한번은 독신인듯한 젊은여성 

그렇게 대략 반년 혹은 1년정도 살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나고 

한 반년이나 몇 달정도 빈집인상태로 있다가 새로 입주민이 들어오고 

그 패턴이 한동안 지속될때였습니다. 

101호에 새로 들어오게된 입주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하고도 면식이 아주 없다고 할수도 없는 

20대 중,후반 정도의 젊은 여성이었는데 

실은 제가 그래도 꼴에 가끔은 회개하고픈 마음이 생겨 

동네 가까운 교회에 몇 번 나간적 있는데 

그때 인사나눈적이 몇 번 있는 그 여성이었습니다 

다만 아마 다른곳으로 1-2년전쯤에 이사를 갔다고 들었는데 

그 뒤로 한동안 못본 그 여성이 

웬 15-16세 정도된 흑인소녀를 데리고 

제 앞에 나타나더이다. 

못본지가 여하튼 그간 1-2년 정도니 

설마 그 사이 아프리카 흑인이라도 사귀어 그만한 딸을 낳았을리는 없을테고 

좀 의아해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일단 결론적으로는 그 수수께끼의 흑인소녀에게 

월세방을 하나만 내달라는게 그 20대 중,후반 자매의 요청이었습니다 

 

사연은 대충 이렇더군요 

실은 그 여성은 원래 아프리카 선교쪽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선교단체에서 동료들과 함께 

아프리카 먼 부르키나파소란 나라에 

선교활동겸 봉사활동을 떠났가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된 남자분이 있는데 

그곳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며 대개 그런 성향의 집필과 언론활동을 하는 

언론인이자 저술가라고 합니다. 

나이든 그 당시 50대 초반정도고 

아들이 셋 있고 막내로 중학생 딸이 있는 

대충 그런 환경의 남자분이었다고 하더군요 

다만 이런저런 반정부 활동으로 상황이 계속 안 좋아져서 

망명을 계획하는중이었고 그래서 

한국인 선교단체 관계자분들이... 

한번 한국으로 망명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권하더라구요 

 

사실 전 그때까지만해도 

가령 무슨 탈북난민이니 이런 이야긴 저도 못들어보지는 않앗어도 

먼 아프리카에서 여기까지 오는 난민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아프리카 난민’ 그것도 망명자가 

이 먼 한국까지 오는일이 있고 

그것도 그렇게 망명해온 사람이 제 소유 빌라의 월세방에 

세들어 살게되는일이 벌어질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근데 망명이란게 원래 말처럼 쉽게 되는게 아니라 

원래 선교단체와 그 언론인 가족이 세운 탈출계획은 이랬다고 하더이다 

일단 현재 상황이 가장 위험한 아버지 즉 언론인 출신의 망명자 

그리고 3남1녀중 가장 나이어린 막내딸 

둘을 먼저 탈출시키고 현재 20대 성인인 아들 셋은 

이후 상황을 봐가며 순차적으로 데려오자는게 

그들의 탈출계획기었나본데 

일단 부르키나파소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한국까지 올 수 있는 

직행 비행기는 그리 많이 없기에 

무엇보다 그 나라 사정이 현재 열악하니만큼 

인근 나이지리아로 탈출한뒤 

거기서 난민판정을 받은뒤 한국으로 들어오자는게 

그들의 계획이었답니다 

나이지리아는 들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실제 

5공때 전두환 대통령이 그 나라를 방문한적도 있고 

그 이후 한국과의 관계가 각별하다면 각별해서 

한국으로의 망명신청이 대체로 순조로울것으로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헌데 막상 부르키나파소를 탈출하려다보니 

처음부터 상황이 안 좋아져서 

어찌어찌하다 사정이 여의치않아 총격전이 벌어지는 

내전지역에 들어섰다고 하더이다. 

헌데 우여곡절 끝에 딸인 어린소녀는 선교단체 관계자들과 

극적으로 위험지대를 무사히 탈출했지만 

아버지...즉 그곳에서 반정부활동을 하던 언론인이었다는 당사자는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오빠 셋은 아직 부르키나파소 현지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어린 소녀인 막내딸만 

그래도 나이지리아에 있는 ‘UN 난민판무관’의 판정을 받아 

본국으로 돌아가면 정치적,종교적 탄압을 받을수 있는 

처지의 소녀임이 인정받아 

일단 나이지리아에선 추방되는 형식으로 

그곳에서 다른 제3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뒤 거기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것이랍니다. 

 

여하튼 그렇게 산전수전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아이고 

일단 한동안은 소녀를 한국으로 데려오게 해준 선교단체나 

해당 단체 여성회원 몇몇이 돌아가면서 소녀를 보호하며 보살피고 있었는데 

언제까지 마냥 자신들이 데리고 있기엔 한계가 있기에 

월세방이라도 하나 싼값에 소녀가 살만한곳을 구할곳 없나 

수소문하다 경기도 위성도시에 위치한 

제 빌라까지 찾아온것이라 하더군요 

사실 제가 그때까지 흑인여성을 

뭐 솔직히 TV에서 활동하는 흑인 혼혈 연예인을 관심있게 지켜본적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기아같은데 시달린다는 어린아이들을 

불쌍하게 본적도 있긴 하지만 

피부가 가무잡잡한 수준도 아니고 완전 새카만 

그런 어린 흑인소녀를 마주대하는 것은 처음인데다 

그것도 제 빌라에 입주를 희망한다니 이런저런 정신적,문화적 충격에 

좀 정신이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월세만 꼬박꼬박 내준다면 마다할일은 아니기에 

흔쾌히 빈방인 101호에서 살도록 배려해준거죠 

대충 소녀가 살 101호를 안내해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통역은 당연히 그녀를 데리고 온 20대 여성이 해주었지만 

소녀도 여하튼 한국에 들어온지가 어느덧 한두달정도 되었고 

또 현지에서도 그렇게 한국인 선교사들과 어울리다 

배운 한국말이 좀 있는지 

그럭저럭 의사소통도 되고 제 말귀도 알아듣는 것 같아서 

작은방 두 개와 거실과 부엌은 딱히 구분되지 않는 그런 공간 

그리고 욕실겸 화장실이 있는 101호 집구조를 대충 설명해주고 

소녀는 그런대로 흡족한 듯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며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면서 정중히 제게 

인사도 건네더이다. 

 

월세는 선교단체 관계자들이 돌아가면서 내주는걸로 

합의를 보고 그렇게 계약을 해 

머나먼 아프리카 브루키나파소에서 왔다는 어린 흑인소녀 망명객이 

제가 관리하는 빌라 1동 101호에 안착을 하게된것입니다 

사실 소녀의 신병처리 문제는 아직 100% 완전히 해결이 된게 아니라 

일단 나이어린 소녀니 학업도 마져 마쳐야하는 문제도 있고해서 

근데 학교공부도 어느정도 한국말이 통해야 무난히 수업을 들을수 있는것이라서 

선교단체 관계자들은 아마 소녀를 ‘주한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걸 

자기네들끼리 대충 의논을 하는듯한 눈치가 보이더라구요 

다만 소녀도 소녀대로 눈치가 있는 성격이라서 

선교단체에서 월세뿐만 아니라 학비까지 충당해 준다는 것은 

너무 무리일것이란 판단을 했는지 게다가 미안한 마음 때문에라도 

자신이 여기서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서 돈을 벌테니 

걱정마시라는 대충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이다 

다만 그 문제는 선교단체 관계자들이 ‘한국에서 살든 어디서 살든 

학교는 정상적으로 다 마치는게 좋다’고 설득해서 

일단 학교는 마저 졸업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는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제 소유의 빌라에서 정착하게 된 흑인소녀 학생 

101호에 살게되고 한 며칠쯤 지난뒤의 일이었을겁니다. 

저는 아침에는 빌라에 버려진 분리수거 쓰레기 처리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침에는 분주할 시간을 보낼때인데 

소녀가 빌라 앞 마당으로 나와서는 한가로이 

밝은 미소를 띠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소녀는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뻘 되는 나이 40이 넘은 제게 

그런 모습을 아침부터 들켰는데도 전혀 당혹스럽거나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제게 밝은 얼굴로 손짓까지 하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선생님 ?’ 하고 인사를 건네더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아직 학교도 졸업하기 전인 

어린 10대 소녀가...그것도 담배라니... 

순간 문화적 충격에 좀 어질어질한 혼돈을 느꼈습니다 

뭐 저를...담배피우는 여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40대 꼰대 아저씨로 봐도 할말은 없습니다 

어차피 저같은 세대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인식이나 가치관이 

대개 그런건데요 뭐 

다만 전 그렇다고 여자를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여성의 사회진출은 지금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이뤄져야하며 

또 여자 운동선수라던가 여군,여경 이런 직업군에서 종사하는 여자들을 

오래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성원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만 담배피우는 여자나 사생활이 조신하지 못한 여자는 

그래도 여전히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이 있을뿐 

뭐...생각해보니 지금와서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들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다만 아침부터 그것도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망명을 온 흑인소녀가 

아침부터 아무런 수치심이나 부끄럼없이 환한 미소지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여전히 제게 쉬이 믿겨지지도 받아들여지기도 힘든 

그런 광경이었다는 소리입니다 

사실 소녀는 그렇게 며칠 지켜보니까 

담배피우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그런대로 성격도 발랄하고 

붙임성도 있는 그런 여학생입니다 

가령 아직 서툰 한국말을 그래도 연습이라도 좀 더 해보려는것인지 

인근에 아침에 학교를 가는 비슷한 또래의 여중생이나 자신보다 어린 

초등학생을 보면 ‘지금 학교가니 ?’ 하면서 인사말을 건네기도 하고 

그 사이 면식이 좀 생겼는지 아는체를 해보기도 하는 

그렇게 초면의 이웃 초등학생이나 여중생과도 붙임성있게 말을 잘 붙이는 

그런 소녀더군요. 

 

하지만 어쨌든 정치적 망명을 위해 제 나라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세명의 오빠도 아직 브루키나파소 현지에 남아있는채로 

이 머나먼 한국땅까지 와서 혼자 살아가야하는 어린 소녀 

많이 힘들고 아플것이라는 것은 

인생 40년을 좀 넘게산 제가 

눈치못챌 사람은 아니지요 

 

그리고 학교문제는 일단 내년 신학기부터 

주한 외국인 학교를 다닐수 있도록 선교단체가 배려해줘서 

그런식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은데 

허나 그렇다면 여기서 외국인학교까지 거리도 꽤 되니 

아침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 들어오곤 하는 피곤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것이란 것 또한 

충분히 예측될수 있는 일이더이다 

 

허나 현재는 아직 국내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는 아직 안 다니고 대체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그녀 

그렇게 한 두어달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침엔 이따금 빌라 앞마당에 나와 혼자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그 사이 면식이 생긴 이웃의 초등학생,중학생을 보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소녀 

인근의 초등학생,중학생도 

그런대로 한국말을 좀 하는 것 같은 흑인 소녀가 그 빌라에 산다는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는지 가끔 구경을 오기도 하더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하루는 한밤중에 갑자게 소녀가 제 집 현관문을 두드리더이더 

여기서 간단하게 제 빌라에 입주해있는 주민들을 소개하자면 

소녀가 들어오게된 101호 옆집엔 

사춘기 중학생 둘을 키우는 중년부부가 살고 

201호와 202호엔 20대 젊은 신혼부부가 살고 

바로 제 옆집인 302호에는 70 넘은 할머니 한분이 

혼자 살고 계십니다 

그런식으로 말하는게 좀 자기변명같아서 그렇긴 하지만 

소녀 입장에선 아무래도 다른 입주민들과는 아직 그리 

친분이 생기지 않아서 그런지 – 소녀가 아침에 인사하는 등굣길 초등학생,중학생은 

저희 빌라에 사는 학생들이 아니라 다른 빌라나 아파트등에 사는 학생들입니다 

제 방문을 무슨 도움이라도 청하려는 듯 두드리고 

한밤중 소녀의 두드림에 무슨 급한일이라도 있나싶어 문을 열어준 저는 

제 집안으로 들어와서는 한바탕 처연하게 우는 

흑인소녀의 대성통곡을 마냥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이 한국말 실력은 제법 늘긴 했지만 

좀 더 길고 장황한 사연을 장시간 주절주절 늘어놓기엔 

한계가 있었는지 한국말과 자가니라말을 반반씩 섞은 말투로 

지금 많이 힘들고 무섭고 외롭다...그런류의 하소연을 

한바탕 늘어놓더군요 

하긴 어쨌든 아버지도 안 계시고 오빠들도 아직 본국에 남아있는 상태 

게다가 선교단체 관계자들도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거리와 시간문제 때문인지 

이전처럼 소녀를 그렇게 자주 챙겨주러 오진 못하는거 같으니 

어린 소녀가 한밤중에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그 생각을 하니 측은지심이 생기더군요 

어찌보면 16세 흑인소녀가 아침부터 그렇게 담배까지 당당하게 피워가며 

지나가는 또래 소녀들에게 밝고 경쾌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어쩌면 자신의 그런 힘든내면을 숨기기 위한 연습은 아니었을까 

그걸 생각해보니 다시금 소녀가 딱해졌습니다 

 

전 일단 인근 편의점으로 가서 

소주와 과자 라면등을 사와서 소녀를 먹이며 달랬습니다 

열여섯살 소녀에게 무슨 술이냐고 화를 내거나 놀라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말씀드렸잖아요. 아침부터 그 이른시간에 그것도 

어른이 – 비단 빌라주인인 제가 아니더라도 가령 저희 호수대에만 해도 70 넘으신 

독거노인 할머니도 계시고 그러니 

어른들이 그런 광경을 쉽게 목격할수도 있는데 

그런거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담배까지 피워대던 

당당하가도 봐야하는지 좀 뻔뻔한 면이 있다고 봐야하는지 

여하튼 이미 담배를 피우는 소녀에게 술을 먹이는게 

큰 문제가 되진 않겠지 하고 

여하튼 전 소녀에게 위로주라도 한잔 따라주고 싶어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이미 담배를 피우는 소녀니 술을 먹이는것도 상관은 없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제 불찰인걸까요 ? 

생각해보면 어쨌든 자기나라를 탈출하기 전까진 아버지도 살아계셨고 

오빠도 셋이나 되었다는 그런 막내딸임을 감안하면 

어린 학생이 술을 마시거나 하기엔 쉽지 않은 환경이었을것이란건 

충분히 예상이 가능할텐데... 

무엇보다 처음 들어보는 한국술일 소주... 

저도 그래서 내심 걱정이 되어서 

쥬스를 좀 타서 알콜농도를 낮춰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린 소녀에겐 부담스러웠는지 

한 두어잔정도 과자 몇조각 주워먹으면서 들다가 

바로 곯아떨어지더군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남아있는 술은 그냥 저 혼자 마시는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쥬스를 탄 소주 두어잔에 이미 곯아떨어진 소녀는 세상모르고 잠들고 말았고 

저도 이미 술에 많이 취한 상태라 

곯아떨어진 소녀를 101호 자기집까지 데려다주는건 무리라 판단 

이불을 대충 덮어주고 그리고 남은 술이며 쥬스 과자따윈 

밖으로 치우고...그리고 

원래 전 제 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이미 많이 취한 상태라 이미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냥 소녀가 잠든 옆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제가 잠에서 깨긴 했습니다. 시간은 아직 한밤중 

취기가 아직 완전히 가신 상태가 아닌데 

그런 상태에서 잠들어있는 흑인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여러 가지 묘하고 야릇한 이상한 상상과 기분이 

다 들더군요 

 

솔직히 나이 40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혼자 산 저 

왜 장가를 못갔는제 굳이 사연을 설명하자면 

웬만한 장편소설이나 일일극 분량한편 

아무렴 못 뽑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길고 복잡한 사연 지금 새삼 주절주절 늘어놓을것없이 

여하튼 나름 불행하고 힘들게 살며 

나이 40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이러고 있는 저 

흑인소녀가 주는 그 묘하고 야릇한 매력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한번 덮쳐보려 했습니다 

저돌적으로 달려들었죠 

 

세상모르고 아직 잠이 든 소녀...그러나 어쨌든 시간이 많이 경과했음인지 

잠결에...아마 소녀도 술기운은 좀 가시던 상태였나보더군요 

제가 한참 소녀의 옷을 풀어헤치고 

저돌적으로 달려들려 할 때 

소녀가 그때 ‘악 !!! 악 !!!’ 놀라며 비명을 지르더군요 

순간 저도 화들짝 놀라서 무엇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돌진을 멈추고 잠시 뒤로 물러서긴 했습니다. 

그러나 놀란 소녀는 

그대로 기겁해서 제 집에서 달아났고 

101호 제 집으로 들어갔을 소녀에게 

무슨 변명을 해명을...어찌해야할지 몰라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복잡해졌습니다 

일단...에라 모르겠다...될대로 되라는듯한 

체념한 심정으로 전 그냥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날이 밝아 오전이 되었습니다 

일단 소녀는 그 시간에 101호 자기집에도 없는듯했고 

저는 여전히 망연자실 모든 것을 체념한 심리상태로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제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술기운은 그래도 그때쯤엔 거의 가셔져 있더군요 

그러다 어느덧 대충 오전시간이 거의다 지났는데 

그래도 아무런 문제나 일이 없자 

어쩌면 이렇게 적당히 넘어갈수도 있겠구나 하는 

묘한 기대감도 들더군요. - 옛날 누구 말마따나 인간의 마음이란게 

진짜 간사한가봅니다. 

 

허나 바보가 아닌이상 그런 엄청난 실수가 

적당히 얼렁뚱땅 넘어갈수 있는일이 아니란건 

모르지 않을터 

오후까지만 해도 그래도 별일이 없었는데 

오후 늦게쯤이되자 저희집 문을 두드리는이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전 경찰이 찾아왔나 지레짐작했는데 

열어보니 비단 경찰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선교단체 관계자들도 함께 와 있더군요 

대충 상황을 보니 일단 흑인소녀는 여전히 한국말이 서툴러서 

경찰서에서 모든걸 사실대로 말하기가 역부족이라 생각했는지 

일단 선교단체 관계자들을 불렀고 

그네들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선교단체 관계자들이 경찰과 함께 저희집으로 

찾아온것입니다 

 

전 바로 입건,구속되었고 

선교단체 관계자들 특히 그중에서도 이전부터 한동네에 면식이 있던 관계로 

그런 인연으로 소녀를 저희 빌라와 계약을 하게한 여성은 

극도의 배신감과 분노,실망감을 느끼며 절 마구 비난하더이다 

저야 뭐...제 잘못이니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처지로 

선교단체 관계자들 특히 그중 맨 처음 소녀를 빌라로 데리고 왔던 여성으로부터 

극한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구속된 저는 5년 실형을 선고받았고 

그렇게 형을 살고 나왔습니다 

형을 다 마치고 나왔을땐 

무엇보다 미성년자를 성추행하려한 범죄자니 

제겐 전자발찌가 채워졌고 

소녀는 – 그러고보면 그 사이 어느덧 20대 성인으로 성장해있기도 했을텐데 

더 이상 그 빌라에 살지 않았고 

대충 선교단체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그 뒤엔 한동안 선교단체 관계자들이 보호하며 살다가 

자신들과 인연이 있는 40대 교회 집사(여성)님이 

소녀를 양녀로 거두는 형식으로 데려가서 

그 뒤로 쭉 함께 같이 살고있다고 하더군요 

외국인 학교도 마침 그 40대 집사님이 사는집에서 

가까운 거리라 소녀에겐 더더욱 안성마춤이었고요 

 

무엇보다 제가 지금 이 판국에 그 소녀에게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이 나쁜아저씨가 죽을죄를 졌고 

그저 어디서든 행복하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잘 살라는 바램만 가져볼뿐 

아...참 그리고 

빌라와 4층짜리 상가건물도 더 이상 

제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비록 흑인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려한 

끔찍한 범죄자인건 맞는데 

허나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멀쩡한 사유재산을 함부로 몰수해가거나 그럴수 있는 나라는 아닐텐데 

그래도 5년동안 집주인이 감옥살이를 하게되는 바람에 

방치상태인 빌라와 상가건물을 입주민들끼리 무슨 상의를 했는지 

소유권도 일단 제가 아닌 다른이들에게 넘어가있는 상태더군요 

지금은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처지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빌라와 상가건물까지 다 빼앗기고 

5년전 미성년자를 성추행해 이제 전자발찌를 차고 평생을 살아야하는 몸을 

거두어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저 5년전 술김에 한 충동적인 실수를 

거듭 후회하고 한탄할 따름입니다. 

차라리 진짜 자살이라도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막상 시도해보려니 쉽지가 않더군요 

따라서 그것마져 결국 단념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몸 

이제 전 어디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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