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안 이야기를 해볼게
너무 긴장타진 마라
사실 이야기가 8.15 해방때로 거슬러올라가긴 하는데
그렇다고 지금 무슨 근현대사 대하사극이라도
쓰겠다는건 아니고
결론부터 간단히 이야기하면
실은 우리 외할머니가 일본 출신이야
어찌된 곡절인지를 우선 간단히 이야기해주지
재한일본인이라고 혹시 들어본적 있는지 모르겠다
글자그대로 일제때 이런저런 이유로 조선에 들어왔다가
8.15 해방이 된 이후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본국인 자기나라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냥 조선땅에 잔류하게 된 사람을
‘재한일본인’이라고 불러
일전에 어떤 역사다큐를 보니 바로 그렇게
해방이후에도 자기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냥 조선땅에 잔류하게된 일본인이
무려 수십만에 달한다고 하더라
일본인이지만 8.15 후에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선땅에 남은이들
전부 제각기의 사연과 곡절이 있는걸로 봐야하겠지 ?
우리 외할머니의 경우엔
20대 초반 나이에
사업을 하시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조선땅에 들어와
살게되셨대. (* 그러니까 우리 외할아버지도 일본사람이란
소리네 결국 ^^;;)
다만 이 사연이 좀 복잡한게
외할아버지의 경우엔 당시 일본 본토에서 하던 사업을
좀 더 확장할 목적으로 조선반도로 들어온거지만
(* 뭐 어쨌든 일제때니까 일본사람들 입장에선
조선반도도 그냥 자기네땅으로 여기던 시절로 봐야하겠지)
실은 외할아버지는 본토(일본)에 본부인은 물론
외할머니보다도 나이많은 아들이 몇몇 더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이곳에서 사업을 더 확장하다
그때 만난 당시 20대 초반이던 우리 외할머니와
정분이 나서 아이가 생겼던거야
헌데...공교롭게도 외할머니가 그렇게 임신중일 때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이 되었다 하더군
헌데...본토에 부인과 자녀들이 따로있는 할아버지는
그런 문제 때문이었을까. 임신한 우리 외할머니를
그냥 팽개쳐두고 혼자 몰래 일본으로 돌아가버렸고
아직 나이 어리고 세상물정 몰랐던 외할머니는
아이 – 즉 우리 엄마 –를 가진채 그냥
조선땅에서 살 수밖에 없게된거지
어쨌든 그렇게 스무살도 채 되기전에 조선으로
건너와 살게되어...정작 이곳에서 만난 자기나라(일본)의
나이많은 사업가와 정분이 나 아이를 가졌지만
남자가 혼자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임신한 몸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외할머니
6.25며 50-60-70년대 그 파란만장한 우리나라 현대사속에서
혼자 그렇게 딸키우며 남편도 없이
힘들게 사셨던건지
다만 그렇게 키운 딸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자랐고
1945년 해방된 그 이듬해에 이땅에 태어난 우리엄마는
1970년대 초반쯤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그리고 다시 한 2-3년쯤 지나 70년대 중반쯤에
태어나게 된게 나야
다만 난 어릴땐
이런 우리 외가의 곡절에 대해 전혀 몰랐어
사실 우리때만 해도 학교에서 일제침략 만행이다 뭐다
대체로 일본에 대해 안 좋게 가르치던 시절이고
그 윗대로 올라가면 바로 일제 강점기를 겪은 분들이거나
또는 그 일제에서 벗어난지 얼마안된시기(50-60년대 정도)에
나고 자란 분들이니
대체로 일본 또는 일본사람에 대해 안 좋게 보던 시절이었지
뿐인가 꼭 일본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외국인과 결혼해 낳은 소위 혼혈에 대한 편견도
가득하던 시절인지라
- 가령 흑인 혼혈가수인 모씨나 모씨 정도가 그나마
방송에서 주목을 받을뿐 그 외 대다수는
주변 손가락질과 멸시 받아가며 쉬쉬하며 살아가던
그런 시절 아닌가.
그래서...아마 모르긴 몰라도 엄마나 외할머니는
특히 외할머니가 일본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손자인 나에게...굳이 숨길필요도 없지만 굳이 알릴 필요도 없는
그 정도의 생각을 하셨던것같아
다시말해 외할머니가 일본출신이란걸 굳이
말해줄필요는 없지만 굳이 쉬쉬하지도 않아서
내가 나이가 들고 철이들면 자연스럽게 알고
이해하게 되길 그걸 바라셨던 것 같아
하지만 나의 경우엔 오히려 그런 외가의 출생내력을
까맣게 모른채
학교에선 여하튼 일본 하면 공산당 다음으로 나쁜X들로
가르치던 시절이니까
그런 교육을 받으며 나도 그 시절 애들과 크게 다를바없이
일제침략만행에 치를떠는 그런 감정으로 자랐고
일본 또는 일본사람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지
뿐만 아니라 한술더떠서 아마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때는 여름방학 숙제로
아마 무슨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같은
독립투사 위인전 읽고 독후감 써오는 그런 숙제가 있어서
제법 열심히 그런 위인전 읽고 독후감 썼던 것 같아
그걸로 나중에 학교에서...무슨 대상이나 금상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수십명정도 공동수상하는 장려상은 받았으니
꽤나 잘쓴 독립투사 위인전 독후감이었던게지
사실 벌써 꽤 오래전이라 그때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가령 뭐...‘일본X들은 천하 죽일X들이고 전부 때려죽여야 한다...’
뭐 이런식으로
쓴건 아닌가 모르겠다
- 방랑시인 김삿갓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고 한다면
너무 주제넘고 시건방진 비교일까 ?
어쨌든 그러던 내가 외할머니는 물론 따지고보면 외할아버지까지
전부 일본사람이란걸 알게된게 내가 한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때야
말했지만 할머닌 그렇게 외할아버지와의 사이에 우리 엄마인
딸 하나만 낳은거고 – 그후 외할아버지는 일본으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만 남은거니까
다른 자녀는 없는거니까...그리고 아빠의 경우엔
엄마가 그냥 해방직후에 태어나 평범한 한국인으로
자라면서 만난 보통 한국사람이니까
물론 아빠야 엄마랑 사귀면서 엄마가 자연스레
자기집안 내력에 대해 이야긴 했겠지만
그렇게 아빠랑 엄마가 결혼하신뒤
외할머닌 동네에서 간단한 허드렛일 같은것이라도
도우면서 자급자족하며 사셨고...
좀 더 나이가 든 뒤엔 아빠가 가금 생활비에나 보태쓰시라도
용돈을 조금씩이나마 지원해드린
그런식으로 사셨던 모양이야
나야 뭐 여느집이나 마찬가지로 외할머니는
명절이나 이럴때나 가끔 만나뵙던 그런분이었고
다만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이 대개 그렇듯
특히 외할머니에겐 손주가 딱 나 하나뿐인거니까
남다르게 예뻐하고 귀여워하시던걸로 기억난다.
그런 외할머니가
뜻밖에도 일본인이란걸 알게된게
대략 내가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추석때 일이야
여느때처럼 명절날 엄마,아빠랑 같이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찾아간날
헌데 엄마는 외할머니와 그해 추석따라
별도로 상의할 이야기라도 많았는지 좀 장시간
모녀의 대화가 이어졌던 것 같아
덕분에 난...어차피 그 외 다른 무슨 사촌이나
이모,외삼촌이 있는건 아니니까
외할머니댁 거실에서 혼자 추석특집 텔레비전 프로나 보며
좀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러다 이것저것 슬슬 다 지루해지고 집에도 가고싶고 하니ᄁᆞ
집에나 가자고 엄마한테 조르거나
아니면 할머니한테 맛있는거나 해달라고 조를까
그렇게 할머니방으로 들어가려 했을때였어
하필 그때 엄마랑 외할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된거지
대충 이야기가...‘동일이(나)도 언젠간 자연스럽게 (외할머니가 일본인이라는걸)
알게되겠지...’ 뭐 그런식의 이야기와
그리고...그러고보니 외할머니 연세도 어느덧 환갑을 넘으신지 꽤 되셔서
이미 연로해진 나이셨는데 그러다보니 고향이 그리워졌는지
자신의 어린시절 살던곳이나 그런 이야기를 좀
입에 담는 듯 했어. 나로선 생소한 일본지명이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외할머니가 일본인이란걸 알게된거지
너무 놀라고 기겁해서 난 불쑥 방문을 열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었어
난 충격에 울며불며 발악하듯 난리를 쳤고
할머니는 물론 엄마까지도 그런 날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이해가 가도록 좋은말로 잘 이야기해보려고 했지만
난 듣기도 싫다는 듯 집을 뛰쳐나왔고...
솔직히 그날...어떻게해서 집으로 돌아왔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난다
어쩄든 아직은 내가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청소년인 이상
그것도 충동적으로 추석날 외할머니집을 뛰쳐나와
혼자 어딜 갈수 있는것도 아니니
엄마랑 할머니가 어쨌든 날 잘 달래서 집으로 데려온 모양이지만
집으로 돌아온 난
자살을 시도했다
혹시 모르는 요즘애들은
‘무슨 겨우 그 정도 일을 가지고 자살시도냐 ?’며
조롱하고 비아냥댈지 모르기잠
그 시절은...그냥 북한 공산당 다음으로 나쁜X이 왜X들인걸로
가르치던 시절이라 생각하면 된다
흔히 그 시절(70-80년대)을 마치
북한사람들을 전부 ‘뿔달린 도깨비’라도 되는양 가르치던 시절로
말하는데...일본에 대해서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나 매스컴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나
다를 것 없었어
한마디로 그 시절 학교교육이나 언론,방송에서 떠드는걸 보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뿔달린 도깨비가 북한 공산당이고
그 다음으로 그 못지않은 괴물같은 X들이 왜X들인양
가르치던 시절이니까
그러니 그런 시절에...
게다가 솔직히 아직은 혼혈이나 재한외국인 2세,3세에 대한
인식도 그리 곱지 않던 시절인데
- 가령 요즘처럼 주한외국인들이 TV에도 나오고 무슨 한힐혼혈 2세니
한중혼혈 2세니 하는 이들으 유튜브 동영상도 찍고 하는 시대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특히 혼혈2세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구와 안드로메다 거리만큼 차이나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물며 그때...그냥 혼혈이나 외국인 2세라도 색안경 끼고볼판에
하필 외할머니가 일본인인 것을 알았던 내 심정은 어땠겠느냔 말이다
그런 더럽고 괴물같은 왜X들의 피가 4분의1도 아닌 사실상
반이나 섞여있던걸 안 그 순간
그야말로...이 땅에서 숨쉬고 밥먹고 하는 이 OOO이란 인간
자체가 싫어지고 그 존재 자체가...
날 이런식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해준 존재들에 대한 원망과 함께
나 자신에 대한 혐오,경멸이 극에 달했던거야
그야말로 세상살기 싫어진거지
그래서 추석연휴 끝난 다음날
학교갔다와서
참고로 그때 우리 엄마,아빠는 맞벌이 부부이던 시절인데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혼자인 나는
방구석에 혼자 머리싸매고 누워 이런고민 저런고민 다 하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던거지
......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 자살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어떤 병원 침대에 내가 누워있더라
그리고
엄마도 엄마지만 외할머니가
날 수도없이 감싸안고 하염없이 우시더라
마치 ‘이 모드게 다 내탓이다’ 하는듯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난 그렇게...사춘기시절 어설픈 자살시도 실패로
살아나긴 했지만
한동안 외할머니는 물론 엄마하고도
말도 안하고 살았어
사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나 굉장히 예뻐해 주셨는데
난 일본인인 외할머니는 물론 그런 사람에게서 낳은
엄마도 보기 싫다는 듯
학교에서 돌아오면 문 걸어 잠그고 말도 제대로 안하고
그런 아이로 변해갔지
다만 어쨌든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레 고등학생 되고 슬슬 대입시험 준비할 나이가 되자
자연스레 그 일은 잊혀져갔어
아니 잊혀져갔다기보단...어쨌든 나도 대학은 가야곘다는
생각은 하고있는 이땅의 보통 사춘기 소년이었으니까
외할머니가 일본사람이든 뭐든 그런 문제와 별개로
일단 대학은 가야겠다는 생각에 공부에 전념했던거니까
그리고
외할머니가 ‘친척을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일본으로 건너가신게
그 무렵이었어
- 그게 꼭 나때문이라고 볼순 없지만 하필 그 무렵에
그런 결단(?)을 하시더라
앞에서도 말했지만 외할머니는 스무살도 되기전 어린나이에
조선땅으로 건너온거고
거기서 같은 일본인이기도 한 나이많은 사업가랑
정분이 나 우리 엄마를 낳은거지만
따라서 여기선 외할머니가 알만한 친척이나 이런건
한사람도 없는거고...당연히 외할머니의 친척이나 어린시절 친구들은
대개 아직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걸로 봐야겠지
하지만 어느덧 80년대 중반도 아니고 후반
8.15를 기준으로도 이미 40여년 세월이 흐른건데
어떻게 그 시절 친척이고 친구들을 찾을수 있겠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닌 일단 일본으로 건너가셨어.
굳이 외할머니 심리를 내가 분석해보자면
어쨌든 나의 그와같은 자살소동도 있었고
또 당시가 어느넛 1980년대 후반으로
가령 83년엔 남한에서 6.25때 헤어진 가족을 찾는다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도 있었고 또
남북교류도 80년대 후반 분위기와 함께 활발해지면서
이산가족,실향민 이런것도 종종 이슈가 되던때니
하지만 외할머니야 어디까지나 일본출신이고 일본에
친척들이 있는것이지 6.25나 남북분단 이런 것이
이산(離散)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니니 그쪽은 해당사항이 아니고
다만 그렇게 이산가족이니 실향민이니 매스컴에서 종종 떠드는 것을 보고
자신도 가족을 뒤늦게나마라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걸수도 있고
또 어느덧 연세도 그만큼 드셨으니 소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처럼
죽기전에 고향의 친척들을 한번은 만나보고 가고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셨을수도 있고
뭐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하겠지
일단 정리를 하자면 외할머니가 찾고자 하는 것은
고향 친척과 친구들이지 외할아버지쪽하곤 관계가 없는 분들이야
일단 외할아버진 어쨌든 외할머니를 만나 아이를 가졌을때쯤
이미 연세가 어느정도 드신분이었다고 하니(대략 당시 40-50대 정도)
그러니 1940년대에 그 정도 나이였다면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있고
또 그 슬하에 (외할머니 말고 다른 부인과의 사이에) 외할머니보다도
나이많은 자녀가 몇몇 있다고만 들었을뿐
외할머니 입장에선 직접 만나본적도 없고 이야기만 들었을뿐이니
지금와서 그 사람들을 굳이 만나거나 할 이유는 없지
그러니 결국 고향의 친척,친구들을 찾아보고싶다는
그 생각이셨어
그렇게 스무살도 채 되기도 전에 떠난 고향에
나이 60을 훨씬 넘긴 노파가 되어 찾은 할머니
(* 무슨 소설 ‘오싱’의 주인공도 아니고...)
일본엔 한 4-5년정도 머무셨던걸로 알고있어
단지 고향 친척,친구들을 찾아보고싶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다만 결과적으로 친척들을 찾는데 실패했는지
그 정도 시간을 일본에서 머물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지
어차피 지금 외할머니가 거기서 더 일본에 머문다 하시더라도
친척이나 친구도 찾지 못한판에 그곳에 의지할데가 있는것도 아니니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시는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거지
다만
그렇게 한국으로 대략 4-5년만에 돌아오셨을 때
뜻밖의 혹(?)을 하나 달고 오셨어
혹...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 나이 또래의 웬 젊은 일본 여자아이와
함께 들어오셨더라구
앞서...
그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고 자살시도를 하다 실패한
이야기까진 이미 했지 ?
하지만 그러고나서...사춘기 그 예민한 나이에
겪은 그 충격이 바로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일단 대학은 붙고나서 그 다음에
뭘 어찌해야할지 결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막상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때부터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한거야. 일단 외할머니 문제는 내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기로 한거지
대학은 재수를 한번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쳐
4년제 대학을 들어갔고
한 4-5년 정도 일본에 머무시던 외할머니가
돌아오신게 그 무렵이야
내가 대학 1학년 거의 끝나가고 2학년 올라갈 무렵이었던거 같은데
헌데 그때 데리고 온 웬 의문투성이의 여성
정체는...실은 외할머니가 그렇게 4-5년 일본에 머무시면서
비록 어릴 때 고향친구는 아니었지만 고맙게도 친척들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동향(同鄕) 출신의 일본인을 몇몇 알게되어
그곳에서 신세를 지며 지내고 계셨다 하시더라구
헌데 그때 그렇게 알게된 동향출신의 손녀딸인데
원래 한국에 관심이 좀 있었고 그래서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게 그녀의 바램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할머니가 그간 동향출신 일본인 집에 머물며 입은 신세 갚을겸 해서
그 소녀를 데리고 오셨다 하더라구
어쨌든 한국에서 공부를 할 생각인데
어차피 한국에 딱히 아는 사람이나 연고는 없는 일본소녀다보니
외할머니 집에 머물게 하며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수 있게 배려할 생각이었다 하더군
누군가 그런말을 하더라
사실 그 시절(대략 1970-80년대)에
미국이나 서유럽의 젊은 여성이 굳이 한국에까지 와서
살 생각을 했다면 둘중 하나일거라고
원래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거나 아니면
자국(自國)에서 지내기가 힘든 어떤 개인적인 상처나 사연이
있을거라구
하긴 내가 생각해봐도 아직 우리나라가 없이살던 그 시절에
그런 잘사는 나라 젊은 여자가 뭐 아쉬울게 있어서
이 먼 타국(他國)땅까지 와 고생하며 살 생각을 하겠나
물론 그녀는 미국이나 서유럽 출신은 아니고
외할머니의 그런 인연으로 알게된 일본여인이지만
마찬가지야. 어쨌든 ‘가깝고도 먼나라’란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닐만큼
우리나라 자라나는 어린이,청소년들이야
일본X들을 북한 공산당 다음으로 나쁜X들이라고 세뇌교육 받던 시절이고
일본 젊은이들은 그네들대로 한국에 별 관심없는
그런 시절이거든. - 상식적으로 우리가 별로 일본과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일본 젊은이들 입장에서도 그런 한국사람과
굳이 잘 지내거나 관심가질 생각을 할 이유는 없겠지
어쨌든 그녀가 일본에서 있을때부터 원래 한국에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무슨 개인적 남다른 사연이 있었는지까진 알수 없지만
그렇게 외할머니 집에 임시로 머물면서
한국에서 공부를 하게된거야
편의상 여자아이 이름을 유미(가명)로 하기로 하지
일단 내겐 할머니가...유미가 아무래도 한국행은 당연히 처음이고
길도 모르고 말도 모르고 하니
유미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또 학교 끝나면 집(외할머니 집
- 유미가 임시 기거)까지 데려오고
또 이따금 유미가 산책을 나가고 싶다거나 할 때 데리고 나가주고
가끔 밥도 사주고...영화도 보여주고
그렇게 유미의 한국에서의 생활 길안내를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그런 임무가 부여된거야
뭐 처음엔 어차피 유미가 나랑 나이도 동갑이고
또 학교에 다니는 처지도 비슷하니 천상 유미의 안내며 보호를
맡아야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점에 수긍했었지
그리고...
뭐 흔히 일본사람은 자기속을 잘 안 드러낸다느니
은혜를 입으면 보답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느니
그런건...일본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에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려 할 때 책으로 배우는 지식들이고
여하튼 나로선 일본출신인 우리 외할머니를 제외하고는
처음 가까이서 대하는 일본여인이 유미가 처음이었으니까
대체로 내가 지켜본 유미는 그런대로 차분하고 조용하고 싹싹한
그런 스타일이었어
그런데...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나 어머니도
유미의 요즘 여자아이들 같지 않은 다소곳하고 차분한 성격이
마음에 드셨는지 가끔씩
농담인지 진담인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너 이다음에 유미같은 여자애랑 결혼하는게 어떠냐 ?’고
그때 외할머니나 아버지,어머니가
왜...거 흔히...동네에 이쁜 여자아이 있으면 어른들이 그 애 부모한테
덕담삼아서
‘아유, 딸이 참 이쁘네요. 이 다음에 미스코리아 시켜도 되겠어요.
탤런트 시켜도 되겠어요’ 하는 수준으로
괜한 농담이나 놀리듯이 한 소린지
아니면 진심으로 유미 그 애가 마음에 들어서 하신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처음 한두번은 나도 그냥 농담이나 덕담으로 받아들였는데
유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차츰 늘어나고 하니까 더 이상
외할머니나 아빠,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로 들리지 않게 된거야
참고로 유미의 경우엔...글세 뭐 일본 여자 천성이 어떤건지는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그렇게 학교에도 매일같이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또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하니까
그 답례라고 생각하는지 이따금
작은 선물같은 것을 해주기도 하더라
다만 내 경우엔 유미에 대해
(솔직히 어쨌든 일본애라는 점에서 꺼려지는 측면도 있었고)
그저...그야말로 외할머니 아는 동료분의 손자
한마디로 할머니 친구의 손녀 그 이상으론 생각해보지 않았어
적어도 그 당시까진 말이지
여하튼 외할머니의 남다른 사연 때문에 그런식으로 엮여진 여자애고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땅에서
공교롭게도 일시적으로나마 외할머니 댁에 의탁하게 된 일본아이니
그저 친절하게 잘 대해줘야겠다는 생각
행여 상처주거나 무례하게 굴면 안되겠다는 생각
그 이상은 생각이 없었지
다만 그렇게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외할머니나 아빠,엄마도 자꾸만 덕담삼아서
‘너 이 다음에 유미같은 애랑 결혼하는거 어떻겠냐 ?’
그러시니까
내 머릿속도 차츰 혼란스러워지더라
‘이게 그냥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닐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사실 난 그때...그러고보니 그때가 90년대 중반
한참 10대-20대들 사이에 pc통신 동호회 열풍이 불던 시절이지
나도 그때 그런 분위기에 이끌려
적당히 내 기호와 취향에 맞는 하이텔 동호회에
한 두어곳 정도 가입해 활동중이었어
무엇보다 하이텔은 – 지금의 인터넷과는 달리 실명을 사용해야 하지만 -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라
오히려 속깊은 고민을 속시원히 털어놓을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라
난 그때 가끔 동호회 게시판에 농반진반 같은 분위기로
그런 고민을 약간의 횡설수설삼아 토로하곤 했었지
여하튼...가까이 지내는 일본여자애가 있고
또 집에서 심지어 그 여자애랑 이 다음에 결혼하는거 어떠냐
이런말까지 나오니 나 어쩌면 좋냐구...
솔직히 내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내 감정을 쓰다보니
상황을 과장시킨면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게 복잡한 집안 사정과 가정사로 인해 엮여진
비슷한 또래의 유미라는 일본여자애료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던것만은 사실이야.
다만 아무레도 하이텔 동호회 게시판은 분위기가 대개 그러다보니까
회원들은 그저 내가 헛소리 하는걸로만 생각할뿐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별로 없더라 솔직히
심지어 당시 내가 그런 고민글을 올리던 동호회 게시판에
그 동호회 부시삽이란 사람은 제법 진지하게 나무라듯 한마디 하더라
‘여보쇼...거 보아하니 당신 유미라는 일본 에*배우 팬이라 혼자
망상글 올리며 대리만족하는 것 같은데...그 배우 얼마전 잡지 보니까
사귀는 사람 있다 하더이다. 그러니 혼자 망상글 올리지말고 정신차리라’
고...
이런 18...
그러고보니 내가 아는 유미랑 동명이인인 유미란 이름의
일본 에*배우가 그 당시 있었나본데
이런...무슨...일본야동 몰래 그동안 많이봤다고
내 앞에서 자랑질하냐 지금 !!!
일단 난 근본적으로 애초부터 일본야동이고 뭐고 그딴데 관심없었고
따라서 일본 에*배우중 그당시 어떤애가 잘나가는지 어떤지
알지도 못했어...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유미랑 동명이인인 일본 에*배우 유미가
있어 그 당시 잘나가는지 결혼설,열애설이 터졌는지까진 모르겠지만
18...아무리 그래도 그것도 동호회 부시삽까지 하는 XX가
날 고작 일본야동 보면서 망상글 올리는 X으로 치부해버리냐 ?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야동 많이본다고 자랑하는거냐 !!!
(* 그것도 아직 한일대중문화 개방전이라 일본 야동이든 비디오든
그런거 구해보는거 불법이던 시절에 !!!)
거듭 말하지만 난 그때 일본야동이고 뭐고 그딴거 관심없었고
솔직히 그런거 어디서 구해볼수 있는지도 모를때고
다만 그렇게 집안 가정사로 엮인 그런 유미란 여자애 때문에
고민하는걸 진지하게 토로한건데
그걸...일본야동 보면서 혼자 헛소리 하는X으로
치부해 버리다니...-.-
하이텔 동호회 오프라인 모임(정모,번개 포함)에
참석한적이 몇 번 있었어
거기서도 내가 자기소개를 하자 게시판에서 내 글을 봤다는
회원 몇 명이 물어보더라
혹자는 신기함에 혹자는 호기심에
또 어떤이들은 내가 게시판에서 뻥,구라나 치는 관종은
혹시 아닌가 하는 궁금함에 탐정수사라도 하듯
유미 어쩌구 하는 일본여자애의 진위여부에 대해 물었지
난 일단 ‘정말로 일본여자랑 사귀는거냐 ?’는 회원들의 물음에
맥주한잔 들이키며
‘일본말도 못하는데 무슨 일본여자랑 결혼이에요 ?’ 하고
가당치도 않다는 듯 한마디로 일축해버렸지
그렇게
외할머니나 아버지,어머니는
‘이 다음에 유미같은애랑 결혼하렴’ 하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소리 계속하시고
유미는 어쨌든 내가 계속 학교 데려다주고 길안내해주고
그런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뜻하지 않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어
그러고보니
하이텔 동호회 정모 참석하고 한 2-3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일인 것 같다
월요일 아침...여느때처럼 난 유미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할머니 집으로 갔고
헌데 그날따라 유미는 보이지않고
외할머니가 진지하게 알려주시더라
‘유미가 떠났다’고
할머니한테만 짧은 쪽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하더군
외할머닌 진지하게 물으셨어.
혹시 유미랑 무슨일 있었던거 아니냐구
분위기상 진짜 그대로 일본으로 돌아가버린 것 같은데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어떤거란걸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라고나 할까
쪽지에는 대충 이런식의 내용이 적혀있었어
‘OO씨(나)도 저한테 별 관심 없는 것 같고
자신이 더 한국땅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는 식의
그리고 그동안 돌봐주신 외할머니께는
일본인 특유의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다는 속성을
새삼 실감케 하듯
제법 진정어린 감사의 인사와 소정의 답례선물
그걸 할머니께 남기고 조용히 잠씨들고 떠났다더군
정말로...
일본으로 가버린거야...
솔직히 지금와서
유미에 대한 내 솔직한 감정이 어땠는지
묻는다면 뭐라 할말이 없다
앞서 언급했지만 처음 한동안은
그저 외할머니 동료분의 손녀딸이고 또 한국 지리에 대해 잘 모르는
또래의 젊은 일본 여자아이
친절하게 잘해줘야겠다는 그 정도 생각뿐이었고
외할머니나 아빠,엄마 모두
‘이 다음에 유미같은애랑 결혼하라’는 식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릴 것 같은 소리가
진짜 사람 혼란스럽게 만들어
그 푸념이나 가끔 하이텔 게시판에 횡설수설 투덜거렸던건데
물론 내가 유미와의 일을
하이텔 게시판에 그런식으로 투덜거리고
심지어 동호회 모임에서조차 가당치도 않다는 듯
‘일본말도 모르는데 무슨...’ 그런식으로 일축헤버렸다는거
나중에라도 유미가 알면 상처받겠지 ?
일본여자는 자기속을 잘 안드러내느니 어쩌느니
그건 여기서 논할 사안은 아니야.
허나 어쨌든 행여 유미가 진짜 나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었더라면
어쩄든 유미가...나랑 사귈마음이 있지
행여 우리 아빠나(...) 엄마나 외할머니랑
사귈 생각이 있는게 아니었다면... (뭔 소리야 ? -.-;;)
최소한 당사자인 나에게 한번쯤은 물어봤어야 하는거 아냐 ?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럼 나도 제법 진지하고 솔직하게
내 감정을 토로할수도 있었을텐데
무슨...‘OO씨도 저한테 별 관심없는거 같고...한국땅에 더
머물러있을 이유가 없다’니...
대체 이게 무슨소리냐구 !!!
요즘의 MZ세대 페미들은
이런 날 뭐라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했지만 유미는 어디까지나 외할머니 동료분의 손녀일뿐이야
내 입장에선 최대한 정중하고 친절하게 대해드려야하는
어렵다면 어려운 상대지
그런 유미에게 매일같이 학교 데려다주고 밥사주고 영화보여주고
그런게 전분데
내가 그때 유미한테 무슨말을 할 수 있었을까 ?
가령 무슨 껄렁대는 건달마냥
‘당신 혹시 나한테 관심있소 ? 우리한번 사귀어볼까요 ?’
이렇게 추근댈수는 없는거잖아.
그런 상황에서 요즘 여자애들 답지않게 어른들한테 예의바른
유미를 두고 우리 부모님은
‘이 다음에 이런 여자애량 결혼하라’느니
헷갈리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그래도 이따금 답례삼아 내게 소정의 선물도 해주고 하는 유미를
그래서 한참 헷갈리고 혼란스러운 푸념을
하이텔 동호회 게시판에나 가끔 올리고
동호회 회원들만나 푸념하는 것 외에
달리 무슨 태도를 더 취할수 있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가 일본으로 떠나면 떠나는거지
하필 그렇게 할머니한테 남긴 쪽지에
‘OO씨도 저한테 관심이 없어서...한국에 머물 이유가 없다’니......
후우...
그러고보니 그것도 벌써 한 25년 이상
아니...25년이 뭐냐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어쨌든 90년대 중반쯤에 있었던일이니
어느덧 27-28년전의 일이군
그렇게 일본으로 돌아간 유미가 정상적인 연령대에
결혼을 했다면 지금쯤
사춘기 자녀가 하나,둘쯤 있는
40대 후반 중년부인이 되어있겠지 ?
지금와서 유미를 다시 만날수는 있을까 ?
솔직히 중년의 유미가 어찌 변했을지 그 얼굴이 상상이 되지 않아
아니 솔직히
어느덧 27-28년전 일이라 그때 얼굴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진짜 길가다보면 알아볼수나 있을지조차 미지수인데...
여하튼 나로선 새삼 그게 궁금할뿐야
그때 그렇게 사람 잔뜩 헷갈리게 만든
일본 여자아이 유미가
나한테 정말 어떤 각별한 감정이 있긴 했었던건지
아마 그녀에게 그때 그녀의 솔직한 감정을
물어볼 기회는 앞으로도 없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