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제 사촌 형 이야기인데 40살이 넘은 형이 나이 먹고 처음으로 제게 인생 이야기를 해줬고
그 이야기가 소설 같아서 감명받아서 이야기를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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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도 2월쯤 모두가 잠들었을법한 새벽에 형과 나는 단둘이 앉아 다큐를 보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걷는 소년'
동상에 발가락이 잘린 아버지를 둔 소년은 가방 대신 어깨에 짐을 올린 체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며 짐꾼을 하는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버거운 짐을 진 소년은 결국 바위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소년을 이렇게 만든 것은 그의 가난이었을까? 그의 아버지였을까?
아니면 다리를 질질 끌며 한참이나 뒤처져 소년을 따라오던 그의 어머니였을까?
이 모습을 보던 형이 조용히 고개를 돌리던 게 생각이 난다.
형은 뜬금없이 내게 질문을 했다.
"내가 중학교 때 제일 싫어하던 게 뭔 줄 알아?"
나는 대충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대답이 궁금했을 뿐
이윽고 형이 대답을 했을 때 나는 왜?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긴 새벽이 지나도록 시작될 작은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도 몰랐다.
집 밖으로 입고 나갈 옷이 한 벌에 불과했던 소년은
친구들 앞에서 매번 같은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이 부끄러워
집안으로 숨어버렸다.
'가난'이놈이 뭐 갈래 그 어린 소년에게 추억을 쌓을 기회조차 뺏은 것일까?
큰아버지는 몸이 아프셨다.
영화 '바람'에 나오는 짱구 아버지처럼 간경화로 황달이 올라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바람의 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닮아서 내가 영화를 보는 마지막에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지독한 병이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십 대의 시절부터 농사일, 나무일 하다못해 품삯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다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에 사우디로 가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저 일만 하던 성실한 집안의 가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간암이
고작 간염 예방주사를 맞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치기엔 너무 과한 운명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아버지는 서서 일을 못하시니 앉아서라도 일을 하시겠다고
2평짜리 복권방을 따로 차려 그길로 매일 출근을 하셨다.
그 집안에서 자란 장남 나의 친척 형은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공부를 잘했다.
반에서 3등을 놓친 적이 없는 영재
학교에서 학원을 다니는지 설문조사를 한날
1등부터 10등까지 학생들 중 학원을 안 다니는 학생은 형이 유일했다.
그랬던 형이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20등을 맞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식으로 영어가 시험과목으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시험에서 나온 첫 번째 문제를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에 'I english ilke'를 썼던 나의 형
이게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몰라
시험지를 보면서 웃던 선생님에게 부끄러워 제대로 질문도 못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영어는 형의 발목을 잡았다.
성적이 곤두박질쳤으니 자칫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할 성적까지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학교에선 아버지를 불렀고 그렇게 아버지와 형 단둘이 학교에 가게 되었다.
반에서 성적은 20등 담임은 형에게 경기 공고, 상고를 추천하며 이쪽으로 진로를 잡을 것을 추천했다.
그 와중 성적과는 별개로 형은 상고나 공고는 가당치도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인문계를 떨어질 것을 상상도 못한 형
"나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아이인데?"
"집안에서 뭐해줄 수도 없으면서 남들은 해외 유학을 가면서 토론식 교육을 하는데 나는 왜?"
라며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때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조용히 말했다고 한다.
"너 경기 공고 갈래?"
형은 이를 물고 복수의 감정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영어를 이해할 수 없으니 통으로 외우는 방법으로
성적은 1개월 만에 반에서 5등 그렇게 형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대원 고등학교는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학생들은 따로 언수외 교육을 시키는 시스템이 있었다고 했다.
교습비는 10만 원
형은 돈이 없으니 교습비를 낼 수 없었고 교육을 안 받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반장 한 명이 조회시간에 할 말이 있으니 매점으로 와달라고 쓰윽 말을 했다고 한다.
근데 이놈이 얼굴이 뭔가 안절부절 말을 못 하길래 느낌이 쌔고 했다고...
알고 보니 선생이 자신을 빼고 친구들에게 돈을 모아 10만 원을 내주자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10만 원 낼 돈이 없어서 교습비를 낼 수 없다고 말하기가 부끄럽고 쪽팔려서 말을 못 했던 것인데
자신의 가난을 속살 벗기듯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10대의 나이에 형은 모든 친구들에게 까발려진 것이다.
그래서 그 교습을 받았냐고? 형은 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10만 원을 학생들에게 돌려줬느냐고? 그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소풍 대신에 수학여행을 간다.
형은 당연하게도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담임에게 말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형을 붙들고 설득하려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형 역시도 학교를 설득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처음엔...
설득이 통하지 않자 호소하듯이 부탁했고 그것도 통하지 않자 눈물을 그리고 나중엔 북받쳐 오르듯 터진 분노로...
형은 교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울고불고 그야말로 난장판
그때가 돼서야 선생들은 형을 포기했다고 했다.
제주도로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형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들은 가방이 싫다면서 커터 칼로 북북 찢고 다닐 때
초등학교 때부터 매고 있던 가방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날 태어나게 했으면 제대로 키워줄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제대로 키워주지 도 못할 거면 왜 낳았지?'
고등학교 때 벌어진 일련의 일들로 인해 형은 속 안에서부터 쏟아지는 분노를 게워내가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형의 지망 학교는 sky 그중에서도 고려대 또는 육군 사관학교
전교 모의고사 최고 성적 4등
수능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3학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집안에 몸이 아픈 사람이 끙끙대고 있으니 하루가 다르게 죽을까 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옆집 누렁이는 다리 떤다고 수업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아픈 사람과 함께 공부라니...
형은 햇볕이 드는 반지하 1평짜리 쪽방에서 책상에 앉아 방문을 닫고 그저 공부 또 공부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능 당일 성적은 6.5%
결국 학교생활 내내 발목을 잡았던 영어가 결국 수능에서도 발목을 잡은 것이다.
학교에서는 한양대 또는 해군사관학교를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니면 재수를 하라고
하지만 형은 자신의 인생 내내 매달린 공부에서까지 실패를 하자
그야말로 모든 걸 포기했다고 한다.
재수는 무슨 입학할 돈도 없는데 형은 고려대가 아니라면 차라리 가지 않겠다고 아프신 아버지 대신 나의 친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갔다고 한다.
형은 돈. 돈. 돈이 필요하지 않는 학교라면 어디든 상관없다며 지원서를 쓰게 되었다.
그렇게 울산 법대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교 생활은 재밌었다고 한다.
대학교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그냥 뭣도 모르고 돈을 줘야 하는 줄만 아시는 부모에게서 돈을 뜯어내며
제 혼자서 살판난 것이다.
하지만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 했다.
몸이 아프던 아버지는 중학생인 동생을 생각해 빨리 군대를 갔다 와 취직하라고
하지만 형은 아프신 아버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저 학교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자신을 투영한 장남에게 자신이 해줄 일을 대신해 주길 내심 바라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3학년 형은 군대를 갈려고 알아보던 와중에
어느 날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친구의 어머니는 홀로 건물을 청소해 주며 돈을 받으시는 자신과 비슷한 환경을 지닌 전교 1등 서울대생
친구는 형에게 뜬금없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너 공군 장교라고 알아?"
육군사관학교에 못 갔지만 장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누구나 시험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얻을 수 있다는 것에 형은 이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시험에 붙고 형은 자신이 그리던 육군사관학교에는 못 갔지만 공군 장교에 들어갔다.
합격자 300명 그중 sky는 200명 나머지 50명은 각지에 흩어진 지방대생들 그리고 나머지 50명은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 소위 아이비리그 또는 외국 명문대 생들
형은 그렇게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김'씨였던 형의 옆자리에는 같은 '김'씨인 하버드생과 생활을 함께했다고 한다.
낯설고 어색한 공간에서 소위 미국물을 먹은 하버드생은 친근하게 형에게 어디 사냐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나는 중곡동 산다 너는 어디 사냐?"
"나는 가회동 산다."
"아 종로 그쪽?"
"종로 뒤쪽에 그냥 낡은 집 살아"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엘리트라고 하기엔 사람 냄새가 너무 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검은 봉지에 들어있던 군수 물품을 꺼내기 위해
"봉다리 좀 줘봐"라고 말을 하던 하버드생
형은 "하버드 생이 봉다리가 뭐냐? 봉다리가" 가라며 장난을 쳤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하버드생과 대화하면서 많은 자격지심을 내려놓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 사는 건 어디에나 같고 환경이 다를 뿐 어디에나 비슷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하루하루 다른 훈련 장교 교육을 받으며 군인으로서 물들어 갈 때쯤
이 군대 내에서는 이상한 소문 하나가 퍼졌다고 한다.
이번 학기에 국방부 장관을 움직일만한 사람이 들어왔다는 소문
그야말로 근거 없는 뜬구름 잡는 소문에 합격생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고 사격장에서 소총 사격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 씨답게 첫 번째 순서로 들어가 5번 사로의 사격을 하는데
갑자기 '중령'한 분이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자신의 옆에서 사격을 구경했더라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바싹 굳어서는 사격을 하는데 그렇게 손이 떨렸다고...
사격이 끝나고 아직 사로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을 때
대대장님은 '툭'하고 신문을 바닥에 던지고는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너 동생 금메달 땄더라"
신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화 그룹 셋째 아들 승마에서 메달 획득!'
4사로에서 사격을 하던 사람
성이 같은 '김'씨여서 같은 자리를 쓰고 있던 하버드생
그 사람이 바로 한화 그룹 회장 김승연의 아들 김동관이었다고 한다.
그제야 사람이 뭔가 달라 보였다고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형은 양말을 손으로 빨고 있었다고 한다.
형이 손빨래를 하고 있었으니 김동관이 옆으로 쓰윽 왔다고
둘이 앉아 처량하게 손빨래를 하고 있으니 뭔가 그 상황이 웃겼다고
그러다 문득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1800억 원이 있는 남자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1800만 원도 없는 남자가
함께 손빨래를 하고 있다는 게 사실 웃겼다고 한다.
그 밤하늘이 너무 생각난다고
형은 군대 시절에 썼던 로션을 아직도 쓰고 있다고 했다.
하버드생이 김동관인지 몰랐을 때 썼던 빌려서 썼던 로션
자신의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라는 그 로션
그 로션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때 이후로 아직도 쓰고 있다고..
이후로 형의 인생은 그때보다 더 고통스럽게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피를 토하고 형이 사법고시 시험을 치르며 단 1년밖에 없는 시험 기회를 잡기 위해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
내가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 내 스스로 눈물이 날 줄 몰랐다.
그것은 그 어떤 감정보다 미묘했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가슴을 찡하게 울렸던 것은 비단 슬픔만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고 2쪽짜리 반지하 방에서 함께 살며 큰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큰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렀던 나의 어린 시절
그렇게 착하기만 했던 나의 큰아버지에 대해 형이 이렇게 거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병을 만든 건 그의 죄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한 명의 인생이 너무 괴롭기 짝이 없었다.
누구 한 명을 죄인으로 만들기에 다른 한쪽의 고의성이 없다.
판결로 치면 무죄 그런데 법원을 떠나는 피해자의 뒷모습이 너무 쓰라리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형에게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 중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하니
"그건 네가 나를 알아서 그런 게 아닐까?"라며 슬쩍 웃음 짓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형의 인생이 비단 고통만 있어서 내 눈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그것을 용서할 수 없는 미움이 함께 혼재되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 상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반드시 형의 이야기를 각본으로 써서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했을 때
형이 "누가 나를 이해해 줘서 고맙네"라고 말하던 게 생각이 난다.
시간은 어느새 동틀 무렵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3줄 요약
1. 기초수급자가 어떻게 공군 장교로 가서 자기 옆에 하버드생을 만났음
2.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한화 회장 김승연의 장남이자 현 부회장 김동관이었음
3. 1800억 있는 남자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1800만 원도 없는 자신의 인생에 허탈해서 눈물이 났음
.독한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