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절강해(막7 24 26,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 및 교제 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DZ2R141eEGY
말씀: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7: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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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2 겸손히 주를 섬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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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짚기:
수로보니게 여인(막7 24 30)
1. 주를 신뢰하는 믿음의 여인
(히11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시37 3 7
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빌4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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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여인
(잠15 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22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마11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빌2 6 11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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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험을 극복한 승리의 여인
(약1 2 4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창2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신8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히10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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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강해:
두로:
Tuvro"(5184, 튀로스)
두로 Tyre (지)
튀로스는 아람어 투르(바퀴)에서 유래했으며, 지중해 연안에 있는 페니키아의 고대 중요한 항구도시이다.
이 도시는 히람 왕의 고국이며 다윗과 솔로몬의 무역 동맹국이었다; 그리고 두로는 건축가이자 숙련공이며 금속 세공사인 히람의 고국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이사야에 의해 "고대에 건설된 희락의 성, ...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사 23:7 이하)였다고 묘사된다.
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산물은 이 지방 특유의 연체 동물(뿔고둥)에서 만들어지는 두로의 자줏빛 염료이다. 분명히 페니키아 어미 도시 시돈에 의해 세워진(사 23:12; 창 10:15), 그 딸 항구―처음에는 본토에 건설되었으나 후에는 포위 공격을 막기 위해 근처의 섬에 건설됨―는 더 오래된 시돈보다 더 큰 지중해 무역의 강력한 중심지로 발전하였는데, 방탕하고, 이기적이며, 처세에 능한 바다의 중심이며, 이러한 이 도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자의 선언의 서문인 겔 27 장의 유명한 절수들에 잘 묘사되어 있다(겔 28:1-19; 참조: 암 1:9; 슥 9:2).
두로는 성경의 역사에서 수 19:29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그 곳에서 두로는 아셀 지파의 경계에 놓여 있는 "견고한 성읍"으로 나타난다. 그곳이 이스라엘인들의 소유권 내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다윗과 솔로몬은 히람 왕과 친밀한 동맹 관계에 있었으며,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 다른 히람을 고용하였다(왕상 9:10-14; 대하 2:3, 16). B.C. 922년 왕국의 분열 후의 관계는 결코 다시는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아모스로부터(암 1:9) 계속 선지자들의 대부분은 두로를 그곳의 물질주의와 노예 매매 때문에 통렬히 비난하였다(욜 3:5 이하). 두로의 힘은 결코 군사적인 특성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원양 어선과 선원들, 확실한 상업적 감각, 유망한 상업 지역에 대한 식민 정책, 높이 평가되는 상품들―염료들, 유리 제품, 금속 제품의 제조에 기초한다. 그곳의 부요 때문에 두로는 모든 정복자들이 높이 평가하여 탐내는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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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9세기에 두로는 앗시리아의 앗슈르나신발(Assyrian Asshurnasipal)에게 공물을 바쳤지만 손상당하지는 않았다. 살만에셀 Ⅲ세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으나(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그와 자주 적이 되곤 하는다메섹의 벤하닷을 포함하여), 나중에는 그에게도 공물을 바쳤다. 옛 두로(본토 대륙에 있는)는 살만에셀 V세에게 점령당했으나 섬에 있는 그 성읍은 일 이년 후 앗수르 왕이 사망할 때(B.C. 722)까지 정복당하지 않았다. 두로는 사르곤에게 평화적인 조건으로 굴복했다. 그리고 산헤립에 의한 일반적인 연안 도시의 약탈을 피했으나 시돈을 파괴한 에살핫돈의 군대에 의해 공격당했다. 그러나 그 앗수르의 대 정복자의 마지막 때에 애굽에 대한 정복으로 분주한 동안 저항을 계속 할 수 있었고 그 후 곧 그는 사망했다. 그 이후 한 세기 동안 두로는 번창했고, 그 때 느부갓네살이 섬 도시의 점령에 끝나지 않고 바벨론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한 12년 간의 포위 공격을 시작했다. 아마도 두로에 대한 가장 유명한 포위 공격은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공격이다. 알렉산더는 본토에서 섬까지대략 1/2마일 폭의 방파제 혹은 둑길을 만들어 군사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떠내려오는 모래의 퇴적으로 넓어지긴 했지만 그 방파제는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두로는 결코 다시는 알렉산더의 제국의 뒤를 잇는 제국들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는 몇세기 동안 이전의 번영의 일부를 향유했다.
나중에 로마의 최고의 적수가 된 카르타고(Carthage)는 B.C. 9세기에 두로의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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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가드(Melkarth)의 두로 제사장들은 그 도시에 은신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헬라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가 그곳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는 그 도시의 건설은 이 지도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헬라 신전이 남쪽 또는 그 도시의 애굽 사람들의 항구를 아름답게 하였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그들의 신전 중 하나는 아마도 북쪽 또는 두로의 시돈 사람들의 항구에서 뛰어났다.
예수님께서는 두로 부근의 지역을 방문하셨고(막 7:24-막 7:31) 환영받으셨다(눅 10:13). 바울은 한때 두로에 상륙하여 칠일간 머물렀다. 그가 항해를 떠나려 할 때 그의 제자들이 배까지 전송하고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행 21:3-행 21:7).
두로는 초기 기독교 감독 관할의 영지가 되었다. 오리겐(Origen)은 3세기에 그곳에 매장되었다. 제롬(Jerome)은 4세기에 그 도시를 방문하여 그곳의 아름다움에 감명받은 내용을 기록했다. 십자군은 A.D. 638년에 그곳을 점령한 사라센에게서 두로를 빼앗았다. 건축가인 동시에 군인인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A.D. 1124년 아름다운 해안에 성 요한의 기사들의 교회를 세웠다(of the Knights of St. John). 그후 회교도들이 1291년 폭력적인 파괴로 두로를 다시 탈환하였다; 그 교회는 지금 자미 케빌(Jami-Kebir) 회교 사원이다.
(참조: HBD;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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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보니게:
Surofoivnissa(4949, 쉬로포이닛사)
수로보니게 족속 Syrophoenician
쉬로포이닛사는 신약성경에서 막 7:26에 한번 나온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쉬로포이닛사는 예수님께서 "이방" 지역에 계실 때에 그녀의 딸을 치료해 주시기를 간청한 두로와 시돈의 고대 페니키아 도시들 근처에서 살던 이방 여자에게 적용된 이름이다(막 7:26, 참조: 마 15:22). R.S.V.에서 마가복음의 그 구절에서 그녀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불리운다; 마태복음 기사에는 "그 지경에서 나온 한 가나안 여자"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그 사건 현장의 위치는 여러 번 시리아의 완전한 또는 부분적인 지배 아래 있었던 그림처럼 아름다운 페니키아 연안 지방이라고 본다(지금의 레바논).
(참조: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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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하나 숨길 수 없더라
-> 예수님께서 솔로몬의 친구 히람 왕이 세운 두로 지역으로 가서 구원의 빛이 되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두로 지역은 이스라엘의 아셀지파의 경계 지역으로서 한번도 이스라엘 구역이 되본 적이 없는 이방인의 땅입니다. 이전의 본문에서는 율법으로 부정하였다는 음식을 정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길의 뉘앙스를 풍기는 구절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구절은 이방의 땅도 하나님께서 믿음의 법으로 정하게 하실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법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정하게 하고 깨끗케 하시고 자유롭게 하는 행복의 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이 한국에 세워져 요즘에 매우 시끄러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동네 주민은 돼지 고기로 잔치를 한다고 하죠 구약에 한번도 역사적으로 한번도 일치 하지 않는 마호매트는 자기가 마치 메시야인양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이후 정하게 한 돼지고기 오징어등을 먹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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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과 이만희등이 자기를 메시야라고 하여 이것이 매우 커지면 제2의 이슬람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류 3/1인 매우 세력이 커진 구약에만 매여 있는 사이비 이슬람에 미혹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 구절을 보면 자신을 알리려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두로 지역의 지중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는 합니다. 아름다운 갈릴리에 오래 머므르시둣 주님은 잠시 휴양하러 온 것은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새로운 사역지 이방지역이 생기둣 잠시 탐색하러 간것이라 여겨집니다. 이후 제자들과 디아스포라는 강력한 전도 활동을 펼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유대교와 복음과 멀어져 있는 이방인에게 전해지는 복음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으려 살며시 다가가시려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은 저만의 추측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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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 과거에는 왜그리 악령들린 자들이 많았는지요 아담이후 하나님과 멀어진 인류는 언제나 마귀들과 가까이 상종하고 그들의 오랜 노예로 살았을 것입니다. 조선의 옛문헌에도 악령이 많이 나와 사람을 괴롭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당시는 귀신이라 하나 귀신은 구천을 떠도는 인간 영으로 성경은 인간의 영은 천국과 지옥을 바로 가지 구천을 떠돌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귀의 졸개 천사들 악령들이 게릴라와 같이 활동을 하는 겁니다.
지금은 교회가 없는 곳이 없고 인류 3/1이 믿음을 가져 악령들의 활동은 많이 잦아져서 저런 악령들린 사람을 보기는 매우 힘듭니다. 동방교회의 표받으러 나오고 행사에만 나오는 위선자 거짓 믿음자 푸틴은 구원파적인 믿음을 가지고 동방교회는 악기 연주라는 것이 없는 사이비적 요소가 있는 곳입니다. 신구약 그렇게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을 하라 하지만 동방정교회는 목으로만 찬양을 합니다. 초대교회가 그랬다고 해서 안하는데 핍박을 피해 몰래하다보니 악기를 연주 못한거지 안한 것이 아니며 무반주를 권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은 주발에 엎드림은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복종이요 의지를 의미합니다. 그녀의 하나님 앞에서의 지극한 믿음과 지극한 겸손을 보게 됩니다. 최종 시험도 그녀는 이기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악기의 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복종이요 겸손이인 것입니다. 악기 없이 예배드리며 믿는다 하는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불복종과 교만과 무모한 도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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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 헬라인이라 하면 유대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자기 히브리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헬라인이라 통칭하였습니다. 또 수로보니게 여인이라 함은 예수님 당시의 행정구역상 수리아의 베니게에 사는 여인을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하였습니다. 행정구역상 그녀는 수리아의 베니게 지역의 여인인 것이죠 또한, 과거 역사적으로 시리아의 부분적 통치하에 있던 두로와 시돈 지역에 사는 여인이요 현대 지금의 국경 구분상 레바논 지역의 여인인 것입니다.
그녀는 간절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신의 딸이 낫기를 위하여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을 봅니다. 언제나 도덕은 하나님과 먼 것이 아닙니다. 자기 딸을 위한 숭고하고 거룩한 사랑은 하나님을 감동 시키고 주님을 알고 주님의 길을 가고 주님의 영생 구원의 도를 아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모르는 부모님을 7년간 대소변을 갈고 집에서 모실 때 부모님도 주님을 영접하시고 천사의 빛을 보는 영광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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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미국과 서방 선교사들이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애양원등으로 문둥병 자를 자신의 동료 선교사들보다 더 섬긴 것은 양심과 도덕과 거룩함 속에 하나님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사이비 구원파 위선자 푸틴은 임산부와 아이들 대학살 강간하며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비도덕성은 하나도 하나님 보시기에 명분이 없는 것입니다. 탈냉전으로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사라지고 이제 나토도 사라질 쯤 러시아은 옛소련을 재건한다는 망령으로 체첸, 시리아, 조지아, 우크라이나를 대학살하며 커지려 합니다.
그러기에 나토의 커짐과 동진은 오직 푸틴의 명분없는 탐욕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이 옛영국의 위상을 되 살린다고 다시 인도와 아시아, 아프리카와 호주, 캐나다, 미국을 공격한다면 그것이 명분 있는 도덕 전쟁이겠습니까 푸틴의 야욕이 이제야 발각된 것은 체첸 전쟁부터 그들의 참상을 언론 장악으로 서방의 눈을 가리웠기 때문이며 이 한나라만 얻겠다라는 속임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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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가 1870개의 핵무기를 포기한 것은 미국 영국 러시아가 우크라 공격 안하고 우크라를 보호한다라는 부다패스트 조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이 조약을 무시하고 우크라를 공격하고 미영은 조약대로 우크라는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조약 파기로 핵무기까지 우크라에 다시 돌려줘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영의 현재 무기 공급은 본래의 조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며 오히려 핵무기를 제공 안해 부족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곧 핵무기 제공으로 인한 보호가 조약의 원천의미인 것입니다. 이는 우크라의 나토가입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크라는 나토가입과 eu 가입은 독립 자유 국가로서 누구도 훼방 할 수 없고 계속되는 러시아의 학살 침입을 방어 할 수 있는 처움이자 마지막 경계선의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러시아인의 푸틴의 핵무기 위협으로 마귀들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일찍 핵으로 푸틴을 지옥으로 우리는 천국의 천사와 주님과 같이 사는 것이 더 큰 행복인 것입니다. 핵보다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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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신뢰함과 겸손이 우리 하나님을 기쁘게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의 겸손의 여인과 같이 우리 삶의 모든 연약한 부분을 하나님 아버지께 다 맡기는 신뢰를 가지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매 순간마다 주님께 의뢰하여 힘을 얻고 물댄 동산 같은 창대함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신 거룩함 속에 주님과 동행하며 그 거룩함을 구원파적 사고로 함부로 포기하지 않도록 세상의 많은 정치자에게도 거룩의 지혜를 주시옵소서 어리석은 자의 핵전쟁을 막아 주시오며 끝내 약속을 지키는 정직한 자의 승리로 결론을 맺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