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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피곤 |2023.02.27 16:54
조회 740 |추천 4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챙기게 된다는 네 말을 믿었고 믿고 싶었고 믿어버렸다. 


여자의 마음이 다 이런 걸까. 너는 정말 나에게 잘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시간을 내서 와주었고, 잠깐 얼굴만 보고 가더라도 그렇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 보이면 사와서 내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어줬다.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책을 선물했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었다. 

이렇게만 보면 우린 정말 잘 지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나는 이상하게도 너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이런 네가 나와 처음으로 부딪힌 날이 있었다. 때는 저녁이었다. 너에게 서운함을 느꼈지만 모르는 척 하는 너에게 화가 났다. 


모르는 척하는 너에게 먼저 말을 하기에는 네가 너무 얄미웠고 너무 많이 쌓였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 전화를 했다. 너의 목소리는 갈아 앉아 있었다. 


너는 1시간 내내 어디가 아픈지 왜 그러는 건지 묻는 내 질문에 알 수 없는 말들만 했다. 30분을 더 통화 후 지친 내가 전화를 끊기 전에 너에게 애교를 부리며 내 기분을 알아내서 풀어달라고 하자 너는 내가 한 번 본인 기분을 맞춰 보라며 정색했다. 


나는 그래도 끝까지 노력해서 너의 기분을 맞혀보려고 했다. 나는 화가 났니? 어디가 아프니? 우울해? 라고 다시 추측했지만 끝내 대답이 없는 너에게 원망스러움만 커져갔다. 


그럼에도 바보 같은 나는 통화를 끊기 직전까지도 너와 통화를 좋게 끝내기 위해 화를 내지도 서운함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너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기분을 환기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 때는 몰랐다. 그리고 지금은 화가난다. 너에게 맞추려 했던 내 자신한테 너무너무 화가난다.


항상 내가 잘못한 거라 생각했다. 나는 감정적이라 너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생각에 매번 사과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부족한 나지만 그래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인 너에게 조금의 배려를 바라는 것도 사치였다. 네 기분을 맞춰야만 했다. 네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회피성 잠수를 타는 너 때문에 더 괴로워야 했기에 네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너는 내가 수용하고 사과해야 했다.


나를 항상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너라고 생각했지만 만날수록 우리 사이가 맞는 걸까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싸우기 바빴고 점점 사이가 나빠졌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위하는 건 들어주었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만 원하는 만큼만 해 주었다.


너는 따뜻했지만 차가웠다. 내 인간관계에 대해 하소연하면 너는 듣고 생각을 말 해 주었지만 우리의 문제가 대두되면 너는 회피하기 바빴다. 


우리가 싸울 때도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거라 표현했고, 본인의 기분을 물으면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애교를 부리면 좋은지 안아주면 좋은지에 대해 물어보면 너는 잘 모르겠다고 아마도 좋을 거라고 대답했다. 


나를 좋아한다고 사랑을 표현해 달라고 하면 너는 그렇게 매번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너였다. 네가 바라는 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였다. 좋은 말과 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대화만 해야 했고 조금의 서운함도 기분 나쁨도 표현해서는 안 됐다. 


감정을 통제 당하는 기분이었다. 매일같이 대화를 이어가는 노력 없이 단답을 하는 너에게 화는 점점 쌓여갔고 내 마음도 정신도 육신도 병들어 갔다. 나에게 토라지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하라는 너에게 내가 원하는 걸 네가 차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풀어 말했지만 그마저도 본인이 내키는 만큼만 했다. 


아무리 길게 설명해도 돌아오는 말은 “미안해” 한 단어였다. 지독하게 답답하고 경멸스러웠다.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시켜야만 했다. 미안하다고 해줘 보고 싶다고 말 해줘 내가 좋다고 말 해줘 그러면 너는 기계처럼 “미안해”, “보고 싶어”, “좋아” 라는 말 외에 더 이상의 노력도 배려도 없었다.


내가 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추천수4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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