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 이야기를 해볼까 해. 우선 내 소개를 하지, 아니 그보다 우리 아버지 소개부터 하지. 그게 이야기 진행을 원만히 하게 할수 있을 것 같으니. 우리 아버지 이름은 염종수. 재벌급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세손가락안에 꼽히는 해운업체인 ‘대양해운’을 경영하는 분이셔. 그리고 나한테는 세 살 터울인 누나가 한명 있어. 이름은 정아. 여기까진 뭐 특별할 것은 없는 평범한 가족같아 보이지만, 사실 난 친엄마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 그때 내 나이 여섯 살, 누나는 아홉 살이었는데, 따라서 난 친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고 그래도 누난 아홉 살때라서 엄마에 대한 기억은 어느정도 있나봐.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 돌아가셨을 때 누나는 엄청나게 밤새 울었다고 해. 뭐 그땐 누나도 아직 초등학생, 어린나이였을때니까.
그리고 실은 아버지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재혼을 하셨어.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생긴거지. 그때 누나는 중학생이었고, 새어머니는 그때 나이가 스물일곱이셨던걸로 아는데, 이름은 자미... ??? 무슨 이름이 그러냐구 ? 아, 미안. 이건 사실 우리 새엄마 실명은 아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새엄마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셨는데, 어릴때는 잠이 너무 많아서 고아원에서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놀리면서 붙인 별명이 ‘자미’였다고 해. 그러니 당연히 커서는 그런 별명을 이름으로 쓰지 않지. 새어머니 이름은 ‘승희’야. 오승희. 스토리 전개의 편의상 ‘자미’는 여기서 쓰지 않기로 하고 ‘새어머니’ 또는 ‘승희’ 이런식으로 부르기로 하지.
아, 참 그런데 이런말을 하고 있는 난 누구냐구 ? 난, 원래 이름은 그냥 ‘문일’이라고 해. 앞에 우리 아버지가 대양해운이란 업체를 운영하시는 염종수 사장님이란 말은 했고, 따라서 난 염씨니까 당연히 이름은 염문일이지. 이름이 염문일인 이유는 우리집안 내 대(代)의 돌림자가 ‘글월 문(文)’자 인데다가 의외로 우리 아빤 아들인 내가 태어났을 때 이름 짓는 것을 별 고민을 안 하셨는지 그냥 ‘한 일(一)’자를 붙여 ‘문일’이가 된거지. 근데 보통 이러면 이름을 그냥 문일아...문일아...이렇게 부르는게 정상이잖아 ? 헌데...난 어떻게 된건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염문일’이란 내 이름에서 마지막 글자를 빼고 ‘염문아...염문아...’ 이렇게 부르더라. 어쨌든 그래서 내 이름은 염문이야. 알겠지 ?
어...아버지 회사 이야기도 간략하게 설명을 좀 해야겠군. ‘대양해운’이란 명칭에서 이미 해운업체라는 것을 알겠지만, 글자그대로 우리 아버지는 서남해안지역에서 주로 여객선과 화물선을 운항하는 그런 ‘해운업’을 하셔. 그리고 ‘대양해운’의 창업주는 우리 아버지는 아니고 그 윗대인 할아버지 ‘염태웅’ 사장님이셔. 할아버지는 원래 일제가 끝날 무렵 왜놈들이 버리고 간 선박 몇 개를 모아 수리해서 그것으로 처음에는 서남해안지역에서 어선과 화물선을 조달하는 그런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그러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번창해져서 오늘날엔 주로 서남해안은 물론 때로는 중국과 일본까지 오가는 그런 화물선과 여객선을 주로 운항,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 세손가락안에 손꼽히는 그런 해운업체 사장님이 되신거지. 그러니까 할아버지 대를 이어 우리 아버지가 ‘대양해운’ 2대 경영주라고.
아무래도 새엄마 이야기를 좀 더 해야할 것 같군. 앞서 말했듯이 새엄마의 고아원시절 부르던 별명은 ‘자미’. 커서 사용한 실명은 ‘승희’. 그리고 새엄마가 우리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누나(정아)가 중학교 2학년 그리고 새엄마 나이가 스물일곱일떄였는데. 일단 초등학교 5학년인 내 눈에 보인 새엄마의 첫 인상은 ‘무섭다’라고 할까. 사실 그저 단순한 ‘무섭다’라는 의미보다는...화장이 다소 짙었던 새엄마의 첫 인상이 좀 그렇게 보였던 것 같음. 그리고 초등학교 5-6학년 나이때 20대 후반 정도의 여인이면 이미 ‘누나’라기 보단 그냥 ‘아줌마’ 같은 생각이 더 드는 그런 나이임. 그렇게 새엄마는 ‘화장끼 짙은 무서운 아줌마’ 그게 초등학교 5학년때 새엄마 자미를 처음본 느낌이었지.
하지만 이후 새엄마와 나 사이는 대체로 좋은편이었어. 글쎄...사실 이것도 단순히 ‘좋다’고만 말하긴 난감하긴 한데, 일단 새엄마는 대체로 내가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던 그런 사람이었음. 적어도 어릴때는. 먹고싶은 것 있다고 하면 다 해주고, 갖고 싶은게 있다고 하면 다 사주고 하던...뭐 아버지한테 잘 보이려고 그래서 나한테 잘해준것일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만...여하튼 어린시절 새엄마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그랬다는것임.
하지만 누나의 경우엔 약간 달랐어. 일단 너무 어릴 때 친엄마가 돌아가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와 달리 그래도 누나는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고, 또 난 새엄마가 들어왔을 때 초등학교 5학년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누나는 한참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그런 누나의 새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은 뭐랄까...‘슬픈 눈빛’이라고나 할까. 새엄마에게 딱히 반항하거나 싫다는 기색을 내비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엄마를 대하는 태도하며 자세 자체가 뭔가 슬퍼보이는 그런 분위기...좀 그런...새엄마와 사이가 딱히 좋았다고도 나빴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뭔가 애매모호한 관계였음.
그리고...이건 내가 시간이 훨씬 지난뒤에...어른이 다 된 뒤에 알게된 사실이지만...스토리의 납득이 갈만한 진행을 위해 먼저 이야기하는게 좋겠군. 아니 그보다 난 새엄마가 들어오고나서 한동안...뭔가 이상한 광경을 하나 봤어. 새엄마의 이상한 비명소리 같은 것을 들어본적이 있지. 한밤중에 가끔 이상한 비명소리랄까 신음소리 같은게 안방에서 나는걸 본게 있는데...처음엔 밤중에 내가 뭘 잘못 들은것이던가...아니면 귀신이라도 나타났나 좀 무서워하기도 했는데...역시 나중에 알게된것이지만 그건 새엄마의 비명소리였고...그 비명소리가 난 뒤엔 아빠가 새엄마한테 뭔가 달래거나 위로하는듯한 그런 소리가 안방에서 새어나오는것도...엿들을수가 있었지.
그리고 또 하나 새엄마의 이상한 광경을 본 것은...가끔 새엄마가 밤중에 혼자 나와 우는 것을 본적이 있어. 거실 한가운데서 혼자 불도 안켜고 흐느끼는 모습. 좀 이상하고 의아하기도 했는데...일단 내 방은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고 건너편에 누나방이 있어서 새엄마가 거실에서 혼자 흐느끼는 모습을 난 엿볼수가 있었지만 새엄만 내가 그 모습을 엿보는 것을 알수는 없었지. (그리고 안방은 누나와 내가 쓰는 방 건너편...다시말해 거실 반대쪽 방향에 위치해 있었고)
새엄마의 그 이상한 울음소리와 비명소리의 실체는 시간이 한참 지난뒤 어른이 된 뒤에 알게된건데...실은 새엄마는 성폭행 피해자였어. 그러니까 중학교때쯤 고아원에서 자랄 때 하루는 혼자 어디를 돌아다니다 그만 몹쓸 남자들한테 봉변을 당했던거였어. 그 악몽에서 새엄마는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는데...새엄마가 아빠를 처음 만난게 새엄마가 고등학교롤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겠기에...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아빠가 사장으로 있는 ‘대양해운’까지 들어와 그곳에서 일용직 알바로 일하게 된건데...여하튼 그때까지도 새엄마는 사춘기시절 성폭행의 악몽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런 새엄마의 과거를 알고 거두어준게 우리 아빠이기도 해.
새엄마의 한밤중의 의문의 비명소리...그리고 한밤중에 혼자 나와 흐느끼는 것은...바로 그 어린시절 성폭행의 악몽이 떠오를때마다 하던 행동이야. 그래서 그럴 때 아빠가 늘 달래주고 위로했던거지.
우리집은 그런식으로 새엄마와 누나 나 그리고 아빠까지 네식구가 한 몇 년 살다가...내가 고등학교때쯤 집에 엄청난 우환이 하나 생겼어. 어느날 갑자기 아빠가 쓰러지신거야. 아마 뇌졸중이라던가...반년쯤 앓으시다 돌아가셨는데. 여하튼 그때 내가 고등학생, 누나가 대학생이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나서 우리집에 작은 변화가 좀 생겼어.
- 아, 참 그보다 앞서 누나는 대학은 원래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며 불어불문학과에 진학을 했어. 헌데 그게 새엄마와 뜻이 좀 안 맞았나봐. 누나가 대학 갈때쯤 새엄마와 말다툼 하는 소리가 좀 났어. 새엄마와 누나 사이에 말다툼 소리가 그렇게까지 크게 났던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군. 여하튼 그렇게 누나는 한참 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를 다니고 난 아직 고등학생일 때, 그때 아빠가 돌아가신거지.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집안에 일어난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다름아니라 새엄마가 아빠의 뒤를 이어 ‘대양해운’ 새 대표가 된거야. - 다만 경영권 승계나 주식배분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너무 복잡하고 길어질 것 같으니 넘어가자. 아빠의 뒤를 이어 대양해운 사장이 된 새엄마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한테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가르치려 했었어. 그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온 나이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 후반에 이를 때, 그리고 새엄마는 어느덧 40을 넘긴 중년부인이 되어있을때의 일이군.
근데 난 솔직히 애초부터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다던가 그런데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중고등학교때부터 주로 인문학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쪽으로 나가길 바랬거든. 가령 기자라든가 학자라든가, 그래서...생각해보면 누나도 장래문제를 놓고 새엄마와 많이 다투었지만 나도 그점에선 다르지 않았지. - 헌데 새엄마가 친아들도 아닌 나한테 왜 경영수업을 가르치려 했는지, 그건 좀 이해해줘야해. 앞서 말했다시피 새엄마는 어린시절 성폭행을 당한 피해가 있는 여성이었고, 그 상처 때문에 비록 사별남인 아버지와 결혼은 했지만 아버지와 성관계는 갖지 않길 원했거든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래서 아버진 새엄마와 별개로 밖에서 따로 성적 파트너를 만나기도 했다고 하더라. 새엄마는 그대신 일종에 우리집에서 그간 살림과 나와 누나를 돌봐주는 그 역할을 맡은...뭐 그런셈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선 할아버지-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양해운 3대 기업주가 되고 그리고 나를 후계자로 키우려한...뭐 그런식으로 살았던거지.
다만 나중에 새엄마의 고백을 들으니 새엄마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고 해. 다른건 몰라도 새엄마는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나봐. 그리고 아빠는 어린시절 성폭행의 상처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던 새엄마를 진심으로 사랑으로 감싸주고 보듬어준 그런분이고. 그래서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보답으로 누나와 나를 정성껏 키워주고 그리고 가능하면 아들인 나를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영승계를 받아 회사를 이어가게 하고픈 그런 생각이 있으셨던거지.
헌데 그건 어디까지나 새엄마의 생각이고 난 애초부터 아버지 사업 물려받는다든가 그런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그런 문제로 대략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고등학교때부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었지. 따지고보면 누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하는 새엄마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각자 자신의 인생을 구현하고픈 그런 생각이 있었다고 해야하는것일까. - 여하튼 누나는 불문학과를 나온뒤 외국에서 통역사로 일하고 있었고, 난 경영수업을 받길 원하는 새엄마와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내 20대를 보냈던거야.
헌데 진짜 문제는 다른데 있었어. 앞서 말했다시피 아버지 회사인 대양해운은 그 윗대인 할아버지가 창업하신 기업. 허나 알다시피 냉전시대엔 중국은 오갈수가 없었고 따라서 주로 부산과 일본 그리고 남해안과 서해안 지역을 운항하는 여객선과 화물선을 운영하는 사업에만 그쳤어. 중국을 오가는 화물선과 여객선을 운영하기 시작한건 냉전이 끝나고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진 90년대부터로 봐야해. 그러니 중국과의 운항선,운송선을 운영할수 있게된건 사실상 90년대부터의 일로 봐야겠군.
다만 대양해운은 원래 할아버지때부터의 남다른 야심이 있었어. 장보고 장군이 신라시대에 청해진을 세우고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무역 요충지를 만들었던것처럼 할아버지도 그런 비슷한 무역,여객의 요충지를 만들고 싶으셨던거야. 허나 냉전시대엔 일본과 국내만 오갔지 중국을 가는 것은 불가능했고, 중국과의 여객선,화물선 운항은 90년대부터 가능했으니까...그리고 진짜 중요한 문제가 있어. 알다시피 대개 일본을 오가는 여객,화물선은 부산에서 중국을 오가는 여객,화물선은 대개 인천에서 출발해. 현재 우리나라 항구중 중국과 일본을 모두 오가는 항구는 없어. 결국 바로 그런 교통,무역의 해상 요충지를 만들려면 바로 장보고 장군의 청해진처럼 결국 서남해안지역에 그런 해상교통,무역의 요충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지. 그리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 꿈은 모두 이루시지 못한채 돌아가신거고, 다만 그저 국내에서 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여객선을 운항하는 세손가락안에 꼽히는 해운회사를 운영하는것으로만 만족하고 가셔야했고.
하지만 새엄마는 바로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못다이룬 꿈을 마저 이루게 하고 싶으셨던거야. 그리고 그게 어린시절 남다른 상처가 있는 자신을 거두어준 아버지(새엄마에겐 남편이 되지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던것임.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중국과의 화물,여객선 운항은 냉전시대엔 불가능했고 냉전이 끝나고 한중수교가 이루어진뒤에 가능했던 일이고, 냉전이 끝난뒤에도 우리나라 2대 국제항구는 결국 부산과 인천이었고, 일본과 중국을 모두 오갈 수 있는 그런 항구는 없었지. 만약 일본과 중국에 화물,여객이 모두 오갈수 있는 항구를 만들려면 결국 전남지역에 만들어야해. 그리고 이건 기업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결국 정치권의 힘을 빌려야 하는 일이야.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에 항구를 그것도 국제항구를 만들수는 없는일이니까.
또 한가지 새엄마에겐 나름 또다른 욕심이 있었는데 해운업뿐만 아니라 조선업에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싶었던거야. - 설마 해운업과 조선업을 구분 못하는 사람은 없겠지 –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무리하게 사업확장도 하고 또 정치권에도 줄울 대개 되면서 갈수록 무리수를 쓰게 되었어. 그리고 나의 경우엔 애초에 경영승계 같은데 관심이 없고 인문학쪽으로 나가고 싶은게 내 꿈이었으니까, 하는수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제대하고 나서는 ‘대양해운’ 3대 대표로 있는 새엄마의 수행비서 비슷한 노릇을 하긴 했지만 대체로 난 해운업이 되었든 조선업이 되었든 그런쪽에 관심없었어. 그래서 새엄마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정치권에까지 줄을 대려는 모습, 그리고 애초부터 경영승계 같은데 관심없는 나 때문에 크고작은 갈등들이 계속되었지.
한편 유럽에서 통역사 일을 하던 정아누나도 이때쯤 귀국해서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만 새엄마와는 다소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 때문에 역시 갈등기류가 약간 형성되었어. 한마디로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새엄마와 정아누나의 입장은 반대편에 서게된거지. 새엄마의 무리한 사업확장을 별로 못마땅하게 여기는데다 경영승계 자체에 관심없는 나, 정치적으로 새엄마의 반대편에 서게된 누나. 글렇게 나나 누나나 두 사람 다 자연스럽게 새엄마와는 대립구도가 만들어진거야. - 성폭행 피해여성의 몸으로 어린나이에 애딸린 나이많은 남자에게 시집와 아이 둘 거두어 키운 보람도 없이 말이지....
다만 나나 누나나 둘 다 새엄마와는 불편한 관계가 된건 맞지만 세세하게는 성격이 다소 달랐어. 뭐가 다르냐면 누나는 어쨌든 정치권 주변에서 일하면서 사실상 새엄마와는 정적이나 다름없는 완전한 대립구도였던 반면, 난 어쨌든 여전히 새엄마 밑에서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기업경영 그 자체엔 별 관심이 없는데다가 새엄마 하는 일도 점점 탐탁찮게 여기는 그래서 간간이 미묘한 갈등기류가 발생하는 그런 관계였거든. - 다만 밖에서 볼 때 사람들은 여전히 날 새엄마의 충실한 최측근 정도로 여기더라. - 그리고 누나의 경우에도 새엄마를 바라보는 슬픈 눈빛만큼은 사춘기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어. - 그리고 새엄마를 바라보는 누나의 슬픈 눈빛의 실체와 의미는 아직도 잘 이해를 못하겠다...
여하튼 새엄마는 사업을 하면서 점차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고 그러다 결국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이 되었고 기업도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늘어난 부채 때문에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지. 새엄마는 구속되었고 부도가 난 기업도 회생불능의 상태가 된거야. 망한거지 뭐. 한마디로. 집도 있는 재산도 빚을 갚는 과정에서 다 빨간딱지가 붙고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된거고...다만 누나야 오래전부터 새엄마와는 별개로 따로 살면서 혼자 자립해 돈을 벌었으니 별 영향은 없었지만 난 새엄마가 구속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과 재산도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 버렸으니 혼자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지. 집까지 다른사람에게 넘어가게된 마당에 난 서울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지방의 소도시에 그나마 작은 빌라방 하나를 마련해 거기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어. - 그리고 새엄마가 구속된 과정에서 나 역시 기업경영이나 비리문제에 관해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했기 때문에 검찰에는 계속 출두할 수밖에 없었지. 덕분에 지방에서 지하빌라방에서 생활하면서도 일주일의 반은 검찰에서 조사받느라 계속 서울에 올라와 있어야했기 때문에 그렇게 서울에서 한 반은 살았었던 것 같다. 일단 난 형은 모면하고 불구속 기소가 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어. 그리고 새엄마는 구속 상태에서 중형을 선고받았지.
재판에서 난 집행유예를 받았고, 지방에 마련한 지하빌라방으로 돌아온 난 그곳에서 어쨌든 뭐라도 다시 시작해보려고 그런 고민을 할때였어. 그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하나 들려왔어.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새엄마가 그만 자살을 했다는거야. 성폭행 피해여성으로 20대 초반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거의 못하다까 스무살 가까운 나이차이가 많은 그리고 애 둘이 딸린 사별남인 우리 아빠와 결혼 그리고나서 누나와 나 두 사람을 돌보며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뒤엔 대양해운 경영주를 물려받아 나름 이런저런 야심을 키워가다 그만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복역하게 된 그녀는 그렇게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거지. 한두마디 짧은 글로는 이루다 표현하기 힘들듯한 나름 파란만장하게 산 그녀가.
새엄마...아니 승희의 자살소식을 듣고 그녀의 시신을 인계받기위해 그녀가 복역중이던 교도소로 달려갔지. 그녀는 그때 이미 차분한 시신이 되어 누워있더군. 그렇게 누워있는 승희의 시신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더라. 그러고보면 승희가 내 새엄마가 된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때였는데, 지금은 그랬던 내 나이가 어느덧 30대 후반. 어느덧 27-28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군.
새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이 어떤거였냐고 누가 묻는다면 애증...애증(愛憎)이라고 해두자. 솔직히 어릴때는 물론 내 나이 한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애증’이란 단어의 뜻을 잘 몰랐는데...그런데 대충 보면 사람들이 ‘애증’이란 단어를 쓸때는 ‘증(憎)’보다는‘애(愛)’의 감정에 더 무게중심이 실려있는 것 같더라 ? 그걸 나이 3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깨달았군.
그래 내게 승희는 애증의 존재였어. 어릴 때 밥 잘 챙겨주고 사달라는거 다 사주고 해달라는거 다 해주고 할때는 좋았고, 그래도 장래문제로 부딪힐땐 좀 싫었고, 나중에 아버지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가르치려 할땐 난 그냥 내 자유분방한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땐 또 별로였고, 새엄마 밑에서 회사일을 배우면서도 새엄마의 일하는 방향이 뭔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그 밑에서 적당히 돈벌면서 직장생활이라도 할수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았고...정말이지 한두줄 짧은 글로는 다 표현못할...어쩌면 진짜 장편소설이나 50회짜리 장편 드라마 한편 분량 나와야할만큼의 수많은 애증의 감정들이 교차했었네 ?
새엄마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그녀의 시신을 화장장으로 옮기기 위해 차에 탔어. 새엄마의 시신을 안아 화장장으로 이동할 차에 태울때까지 진짜 만감이 교차했지. 새엄마와 함께 했던 27년의 시간이 한편의 영화 하이라이트처럼 스쳐 지나갔으니까.
새엄마를 보내며 그렇게 그녀와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들로 인한 그야말로 수많은 애증의 김정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다만 그 순간까지도 끝끝내 풀지못한 수수께끼가 하나 있어. 바로 누나(정아)가 늘상 새엄마를 바라보던 그 슬픈 눈빛이야. 새엄마의 자살소식을 듣고 누나도 장례를 치르러 와주긴 했는데, 그때까지도 누나의 슬픈눈빛은 여전히 지워져있지 않았지. 난 물어보진 않았어. 그래서 더더욱 궁금하네. 새엄마를 바라보던 누나의 슬픈 눈빛의 실체는 무엇일지. 어쨌거나 자신과는 불편한 관계였던 새엄마였기에 그로인해 알게모르게 쌓였을 나름대로의 한과 사연 같은것으 표출되는 그런 의미의 눈빛이었을까, 아니면 새엄마의 상처를 누나도 알고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같은 여자로서의 어떤 애틋한 동정심의 눈빛이었을까, 아니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앞길을 막는듯한 그녀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상처를 안은채 자신의 야심을 향해 무모하게 달려가던 새엄마에 대한 어떤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의 눈빛이었을까. 여하튼 누나와 함께 새엄마 시신을 화장장으로 옮길때까지도 누나의 그 슬픈 눈빛은 쉬이 지워지지가 않았어.
새엄마...아니 승희는 그렇게 떠나보냈지만, 난 만약 새엄마에 대한 감정을 단 한단어로 정리하라면 ‘애증’이라고 답할수 있지만, 정아누나의 승희를 바라보는 그 슬픈 눈빛의 실체는...나에겐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