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
-사랑이 나를 누르다
연왕모
부엌이었던가봅니다
열 명 쯤 앉을 만한 타원형의 식탁이 있고 그 위에 냄비가 놓여 있었죠
하지만 의자는 단 두 개 뿐이었어요
타원의 좁은 곡면에 주인의 것인 듯한 의자가
그 바로 옆에는 아주 낡은 의자가 놓여 있었죠
찬장이 있고, 벽이 있고, 천장이 있고, 낡은 백열등이 있었죠
그때는 창문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들어온 문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 계세요?
오래도록 기다렸어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죠
낯선 집이라 불을 켜는 것도 망설여졌어요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그렇게 기다렸어요
천장의 백열 전등과 찬장에 놓인 그릇들을 보며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바닥에 옷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발을 덮은 긴 잠옷을 입고 얼굴의 화장을 지우며 여주인이 나왔죠
그녀의 눈길은 바닥을 향해 있었어요
눈길이 차츰 위로 올라오면서 식탁과 그 위의 냄비를 쳐다보았죠
그리고, 낡은 의자를,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죠
화장을 지우는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깊숙히 들어간 눈은 그 얼굴보다 더 어두웠지요
- 너무 어두운가요?
- 네, 불을 켜는 게 좋겠네요.
그녀는 찬장 선반에서 성냥갑을 꺼내 들었죠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이더니
갑자기 벽을 향해 몸을 돌리는 것이었어요
쥐고 있던 성냥의 불은 힘없이 꺼져버렸죠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녀의 뒷모습만으론 표정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문득 오래된 벽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언제부턴지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답답해졌습니다
주위를 보니 아무 것도 여유로와 보이지 않았죠
냄비는 달그락거리는 것 같았어요
찌그러진 뚜껑의 검은 손잡이는 불에 눌어 일그러져 있었죠
냄비에 묻은 그을음 밖으로, 간신히 빛나고 있는 누런 색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뒤돌아보니 창문이 있었어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창가로 다가가려 할 때,
그녀의 차가운 손이 무게도 없이 내 어깨에 놓여졌습니다
-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네요.
꺼진 성냥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데, 집안에는 겨우 노을빛 뿐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