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현장] 우리가 바랐던 '학생인권'은 무엇이었나기자명심준수 부산 해운대교육지원청 소속 교사 입력 2022.06.27 14:08 댓글 7 SNS 기사보내기기사저장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바로가기 본문 글씨 키우기 본문 글씨 줄이기학생 인권과 교권, 그 사이 어딘가로심준수 부산 해운대교육지원청 소속 교사.심준수 부산 해운대교육지원청 소속 교사.[교육플러스] 과거의 학교는 그야말로 스승들의 무법지대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라’, ‘교사와 경찰이 밥을 먹으면 경찰이 밥값을 낸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지난 날 학교에서의 교사란 존재는 불가침이었다.
권력이란 것은 항상 팽창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일까. 과거에 하늘을 찌를 듯이 높던 교권은 교사들의 무분별한 폭행과 아동 학대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나 역시 많이 어린 20대의 새내기 교사이지만, 고등학생때까지 야간자율학습 미참여라는 사소한 이유에도 체벌을 당했고, 그것이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으니 말이다.
이런 불합리한 권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 수년 간 학생인권이라는 개념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많이 당선되면서 ‘학생인권조례’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라는 장소에서 무한하게 배워나가야 할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받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진리이다. 하지만 학생의 인권도 ‘권력’이라는 습성은 버리지 못했던 탓인지 이마저도 그 힘이 하늘을 찌르려 한다. 학생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그들에게 법 준수와 인성을 가르쳐야할 교사들의 권리가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계 뿐만 아니라 전 국민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는 당연 전북 익산의 한 초등학생 이야기이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로 강제전학이 이루어졌는데, 이 학생이 전학 첫 날 교사에게 “선생이라 때리지도 못하면서 기강을 잡고 **이야!”라고 폭언을 한 것이다.
누군가의 담임인 나 역시 소식을 접하고선 참담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학교에서 근무하지 않는 지인들은 나에게 기사를 보내오며 정말 현재의 교사들은 이런 학생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슬프게도 나의 대답은 ‘그렇습니다’였다.
사실 익산의 초등학생 한 명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6년에는 경북에서 6학년 학생이 담임선생님을 가위로 찌르는 일도 있었다. 보다 가까운 올해 5월에는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50대 담임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 5년간 학생, 학부모에 의한 교사 상해·폭행은 무려 888건에 달한다. 이렇게 늘어만 가는 교권침해 속에서도 교사들은 혹여나 학생 인권침해 교사라는 누명을 쓸까 싶어 손발이 묶인 채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학교 상황이다.
학생이 폭행을 해도 물리적 저항을 할 수 없고, 학생이 폭언을 해도 같이 폭언을 할 수 없다. 만약 학생이 무단으로 학교를 나가서 사고가 나면 방치한 교사의 책임이 되고, 붙잡아서 학습을 시키지 않은 교육방임에 해당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기도하며 다수의 교사들은 학교로 출근한다. 나 역시 며칠 전 학생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런 교사 중 한 명이었다.
6월의 어느 금요일, 2교시 수업을 마친 후 쉬는 시간. 복도에서 담임교사와 실랑이를 하는 한 학생을 보았다. 담임교사는 학생을 말리고 있었고, 학생은 무엇에 화가 났는지 교실로 가서 친구들을 때리겠다고 온갖 힘을 쓰고 있었다.
과거 두 차례 그 반으로 가 학생을 저지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도 나의 힘으로 그 학생을 교무실에 앉혔다. 학생은 그때부터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담임교사와 나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였다. 부장교사와 학교의 관리자까지 동원돼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교사들은 입에도 담기 힘든 욕설을 30분 가량 듣고 있어야 했고, 그나마 힘이 센 나만이 그 학생을 붙잡고 있었다. 힘을 조금이라도 빼면 어김없이 나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였다.
이런 와중에 나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나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사들은 모두 이 순간에 ‘내가 잡고 있는 이 팔에 멍이 들면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지는 않을까?’, ‘저지하는 과정에서 큰소리를 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학생의 인권이 너무나 중요하고, 학생이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사소한 행동들도 아동학대로 간주될 수 있기에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하는 중에도 저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교사들은 ‘잘 가르치는 것’에 대한 사명감이 아닌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조바심으로 학교를 지킨다.
우리가 바라던 학생의 인권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테다. 배움에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교사의 편협한 시각 때문에 꿈이 짓밟히지 아니하고, 체벌을 권력 삼는 교사들로부터 신체와 자아를 지키고, 지덕체를 함께 겸비할 수 있도록 준비된 교사들에게 가르침 받을 권리. 이것이야말로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진정한 ‘학생 인권’ 아닐까.
학생과 교사는 학교에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교육현장에서 동시에 보호받고 존중받아야할 구성원이다.
학생인권을 외면하던 시절에 생겨난 문제점들로 인해 학생인권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제 교권을 외면하는 시절이 왔고 다시 한 번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학생이 배움에 있어 권리를 침해받지 않아야 하듯 교사도 올바른 일들을 가르침에 있어 침해를 안 받아야 하지 않을까? 교육현장은 현재의 높이 치솟은 학생 인권과 과거의 불가침 영역이던 교권 사이 그 어딘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심준수 부산 해운대교육지원청 소속 교사 edpl@edpl.co.kr 기자의 다른기사 키워드#전북학폭 #익산학폭 #학생인권조례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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