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후 오랜 고민 끝에 이혼을 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 그리고 어버이 날..... 이혼한후 가정이라는 말이 생경스럽다. 그리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혼한후. 직장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다 잊어 버리기 위해 시작한거 같다. 무언가 몰두하고 집중하는 삶이 필요 했으니까. 5월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혼후 애엄마와 아들은 해외에 있다. 망각하려 하지만 어린이날과 어버이 날이 되면 생각도 많아지고, 아니 그리움이 많아진다.
난 엄마가 내나이 11살에 나와 아빠를 떠나갔다... 마지막 엄마가 나에게 한말은 미안하다는 말이였다. 11살이였어도 그말은 생생히 기억한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그냥 그냥 아빠와 나를 떠나갔다.
그리고 난 원망도 많은 그리고 평생 전처를 만나기 전까지 사춘기였던거 같다.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실 졸업식에 난 언제나 혼자 였고, 그 혼자가 너무 싫었고그리고 엄마 없이 컸다는 말을 들을까봐 난 항상 위축되어 있었고, 누군가를 만나기 두려워했다.
지금은 서로 헤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없었던 나를 보듬어 주고 사랑했던 사람이그리고 여자 였던 사람이 전처 였던거 같다. 결혼하고 아들이 태어났고. 안정된 삶을 살았지만난 전처에게 아내가 아닌 엄마를 기대했었을 수도 있었던거 같다.
전처와 혜어지고 홀로 산지가 몇해 지났다.. 저녁시간은 의식적으로 거래처 식사 자리를 만들고음주후에 집에 들어와 홀로 잠자리에 드는것도 익숙할 무렵...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어머니가 찾아 왔다고 11살에 나를 버리고 간 어머니가...술에 취해 믿기지도 않았고. 왜 찾아왔을까 3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후에 나를.... 혼란 스러웠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후 경비실에 인터폰으로 올라오시라고 했다초인종이 울리고 어머니가 35년 만에 뵙는 어머니가 들어오셨다그리고 우리는 아무말없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도 몰랐고,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도 몰랐다.나이 46살에 엄마라 불러야 할지 어머니라 불러야 할지.... 난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귀에는 삐~~~ 라는 이명만 들리는거 같았다...
엄마가 말을 시작했다 "아픈데는 없지 11살때랑 얼굴이 그래도 똑같군아"
난 공허하게 엄마를 쳐다 봤다.. 무슨말을 해야 할지.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왜 나를 떠나 갔냐고" "엄마가 엄마 맞냐고""그렇게 나를 쉽게 두고 갈수 있냐고" 원망을 해야 할지 증오의 말을 해야 할지너무 너무 머리안에 떠도는 말이 많았다....
그래도 그래도정말 말을 하고 싶었다.....
"보고 싶었어요 한번 안아 주세요"눈도 못 마주치고 덤덤하게 엄마에게 말을 했던거 같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미안하다고 흐느끼며 말씀 하셨다.
그리고 난 잠에서 깨어났다.엄마는 11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난 엄마 마지막 모습을...아직도 기억한다....그날 오랜만에 혼자 엄마를 보러 갔다.조용히 엄마 묘의 잡초를 뽑으며... 내가 기억 하는 엄마 내 11살때를 기억하며...
내나이 40대중반... 본가에 아버지를 보러 갔을때...예전 앨범을... 건너방 박스에 보관된... 꺼내봤다..엄마를 보고 싶어서... 내가 3살때 내 두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켜주던 엄마의 환한 미소를보았다....
전처와 갈라선지 이제 5년이 넘어 간다. 예전 우리가 찬란했던 그 시절을 생각해 본다.전처도 나와 그떄는 행복을 꿈꾸었겠지... 혼자 엄마 없이 외톨이였던 나를 .. 그리고 나는 아마도 아내가 아니고 엄마를 찾았던것 같다 전처에게서..
아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