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결혼할 여자친구 있는 30대 중반 남자입니다. 직업은 의사입니다.
요새 세태가 워낙 다들 결혼을 안 하는데 안타까워서 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의사 일을 하다 보면 어르신들 중에 가끔 '무연고자'들이 있습니다. 결혼 안하고 자녀 안 낳았으면 직계가족인 본인의 법적인 보호자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연고자가 됩니다. 무연고자들은 간병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보통 50-60대 정도만 되어도 부모님은 돌아가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살아계셔도 나이가 많아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힘듭니다.
형제들은 있을 수 있는데, 평소에 우애가 아주 좋았던 거 아니면 아픈 형 동생 돌봐준다고 하는 사람 많이 없습니다. 환자가 혼자 거동이 안되면 간병인을 붙여야 하는데 24시간 간병인 쓰려면 월 300만원은 줘야 되고 병원비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죠. 연락만 받아도 다행입니다.
중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그나마 암이나 심근경색같이 본인의 인지능력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괜찮습니다. 본인이 알아서 모아뒀던 돈으로 병원비도 내고 보험금도 청구하고 간병인도 부르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 문제인 건 뇌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뇌출혈, 뇌경색, 저산소성 뇌손상, 뇌염 등) 입니다. 무연고자에게 뇌손상이 오면 본인이 인지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말 그대로 24시간 기저귀차고 누워만 있게 됩니다. 병원 측에서 개인 간병인을 붙여주고 싶어도 간병비를 줄 사람이 없으니 못 부릅니다.돈이 많은 사람이어도 병원 측에서 이 사람의 재산을 함부로 집행할 수 없으니 그냥 눕혀만 둡니다. 정부 제도가 있지만 금액이 적어서 24시간 못 붙이구요. 요새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도 있는데, 간호사가 간병까지 해준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간호사들도 바쁘고 다른 환자들도 봐야하니 그 분은 그냥 눕혀만 놓고 기저귀 정도만 갈아주는게 한계입니다. 간병비 보험 이런 거 들어놨어도 소용없습니다. 그 보험금을 청구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공무원들이 청구해서 장례비에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뇌졸중이 오신 분들은 재활치료가 중요합니다. 적절한 재활이 이루어졌을 때와 아닐 때는 상태가 확연히 다릅니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있는 경우에는 옆에서 계속 주물러주고 관절 굳지 않게 운동시키고 욕창 안생기게 돌려줍니다. 말 걸어주면서 인지 기능 회복에도 도움을 주고요. 하나 무연고자들을 보면, 이상하게 계속 안 좋아지기만 합니다. 무연고자 분들도 정해진 치료시간에는 1-2시간정도 재활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외의 시간은 그냥 방치됩니다. 보호자가 붙어서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 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대부분 여자 분들이라, 여자가 쓰러지면 간병 안 한다 하실 수 있겠습니다. 저도 그 자료 본 적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병원에서 일하면서 입원 환자들을 보면, 법적 남편과 자식이 있는데 무연고자처럼 방치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적어도 간병인이라도 씁니다. 그들은 법적인 관계로 묶여 있고, 부양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나몰라라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친 보호자 아니면 간병인들도 어차피 방치한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 간병인들은 나름 교육 이수하고 오시고, 돈 받고 일하는 만큼 열심히 합니다. 만약에 열심히 안하면 병원 측에서도 회사에 피드백 줘서 그 간병인 다시 못 오게끔 하기도 하거든요.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문제입니다. 물론 간단한 수술이나 시술, 내시경정도는 괜찮습니다. 근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술 같은 경우는 보호자가 없으면 동의서 쓸 사람이 없습니다.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치매 등으로 인지가 떨어지는 경우라면, 의사로서도 수술 동의서를 아무에게도 못받고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사 입장에서 동의를 못 받은 수술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국립중앙의료원 신경외과 의사가 의식이 없는 무연고자의 지문을 동의서에 찍게 한 후 수술을 하고 SNS에 올렸다 논란이 되어 감봉 1개월에 처해진 바 있습니다. 면허 정지까지도 될 뻔했습니다... 물론 의식 없는 무연고자 동의서 안 받고 수술했다고 해서 불법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그런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아마 그 분은 병원 내에서의 입지가 많이 좁아졌겠죠.
내 법적 보호자가 없다는 게 이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내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뇌졸중이 생겼을 때, 심근경색이 와서 빨리 관상동맥우회술(적어도 6시간 이상 걸리는 대수술)이 필요할 때. 내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나를 대신해서 오직 나만을 위한 결정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의식이 없고 인공호흡기에만 연명하고 있을 때. 이만 생을 마감하고 싶어도 그걸 결정해줄 보호자가 없습니다. 수술이 필요할 때 의사들 동의서 없이 수술하기 찜찜합니다. 의사들, 간호사들, 병원 직원들 모두 무연고자 받기 싫어합니다.
지금은 여러분들 부모님 살아계시고 친구들도 있고 하니 부족할 것이 없지만.. 부모님... 언젠간 돌아가십니다. 나이 들어서도 친구들이야 있겠지만 그들이 제 수술 여부를 결정하고 간병비 대줄 순 없습니다.
요새 결혼에 대한 단점이 부각되어 결혼률 출산률 많이 낮아졌죠. 육아는 너무 힘들어 보이고 커리어 포기해야하고, 시월드 문제.. 한남은 어떻다 한녀는 어떻다 참 말들이 많습니다.
20-30대엔 괜찮습니다. 친구들도 많고 부모님도 계시죠. 40-50대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혼자서 외롭다는 얘기도 있는데 결혼해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도 있으니 어느 길이 맞는지는 모르죠.
60대가 넘어가고 혼자 사는데 어디 아프다고 생각해보세요. 암에 걸려도 병원에 혼자 가야합니다. 집에 있다가 심근경색이 왔다? 욕실에서 넘어져서 뇌출혈이 왔다? 발견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나중에 시체 썩는 냄새에 발견될 수도 있겠죠. 발견 되더라도 수술해줄 의사는요?
현재 60대 이상 분들 중에는 무연고자가 많지 않지만, 지금 세대가 그 나이가 되면 사회가 골머리를 앓을 겁니다.
비혼이라는 결심을 하실 때는 쓸쓸한 죽음까지 염두에 두고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