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왔다!” 큰 목소리 만큼이나 큰 덩치를 자랑하던 성원이가 문을 다소 과격하게 열며 들어왔다.
“아니, 형! 왜 이제 와! 우리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듣기에는 다소 화난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주선이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걸 보니 성원이가 퍽 반가운 모양이다.
“다 사정이 있었지. 펜션 올라오는 길에 차가 얼음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늦어졌네. 그래도 형이 너희 먹으라고 이렇게나 많은 간식을 챙겨왔잖아~”
“술은?” 다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보성이가 대뜸 물었다.
“당연히 술도 샀지! 근데 보성이 넌 싸가지 없게 형이 왔는데 일어나지도 않냐?! 안 되겠다. 간만에 좀 맞자.” “어휴 보성이 나대더니 드디어 처맞는구나. 형! 형! 그냥 아주 죽여버려!”
대화는 다소 거칠게 들렸으나, 때리는 사람의 얼굴에도 맞는 사람의 얼굴에도 웃음이 묻어나는 걸 보면 서로가 그리 밉지는 않은 듯하다. 방안 가득 웃음소리가 채워진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성원이와 주선이, 보성이 그리고 용주는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래서” 한참을 웃던 용주가 입을 열었다. “3년 만에 무슨 일이 있길래 만나자고 연락을 한거야?” “그러게? 형 고등학교 졸업하고 정말 연락 한번 없었잖아.” 주선이가 퉁명스럽게 용주의 말을 거들었다.
“수능 끝나고 내가 조금 바빴어. 그래도 늦게 나마 연락했잖아. 그럼 됐지 뭐? 그리고 내가 이렇게 먹을 거랑 술도 많이 사서 왔잖아?” 성원이는 양손으로 가져온 술을 잡아 들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이렇게 만났으면 그걸로 좋은 거지 뭐. 일단 마시자!”
한겨울 밤, 눈으로 뒤덮인 펜션의 밤은 그렇게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깊어만 갔다. 그 시끄러웠던 펜션의 소음을 잠깐 멈추게 한 것은 주선이의 기침 소리였다. “콜록! 콜록! 뭐야? 목이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콜록!” “야 이 병신아 그러니깐 조절해서 작작 처먹었어야지! 응? 콜록! 콜록!” 주선이를 핀잔주던 용주도 이내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은 쇳소리가 섞인 듯한 기침을 토해내더니 이윽고 검붉은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어? 이거 뭐야. 왜 이래...” 라는 말을 끝으로 주선이가 옆으로 쓰러졌고, 이내 용주도 피를 토하며 머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내 펜션 안은 무서울 정도로 적막한 침묵에 잠겼다.
“어? 뭐야. 보성이 넌 왜 멀쩡해?” 침묵을 깨며 성원이가 의문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보성이에게 물었다. “뭐..뭐가? 형? 이 새끼들 왜 이래? 죽은 거 아냐?” “응, 뒤진 것 같은데? 그나저나 넌 내가 사 온 양주 안 먹었냐? 이 새끼가 왜 형이 사 온 걸 왜 안 먹어?!” 갑작스럽게 소리치며 양주병을 들고 보성이에게 성원이가 돌진하는 순간 보성이는 이를 피해 보려 노력했으나 좁디좁았던 펜션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성원이에게 잡힌 보성이는 자의와 상관없이 양주병을 입에 물고 있었다. 양주를 끝내 삼키지 않고 버티고 있는 보성이의 모습을 본 성원이는 보성이의 코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숨이 차오르는 걸 견디다 못한 보성이는 이내 양주를 삼키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콜록! 콜록! 형! 대체 이게 뭐야? 우리한테 왜 그래!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보성이는 울부짖으며 울컥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이내 주선이와 용주처럼 머리를 땅에 처박고는 돌처럼 굳어 버렸다.
“이유는 무슨 이유? 난 그냥 니새끼들이 잘살고 있는 모습이 빡쳐서 그런 거야. 음... 이번에는 어떻게 처리하지? 독을 먹였으니 장기는 못 팔겠지? 아 그냥 묻어야 하나? 아 신발, 피가 왜 여기까지 튀어있어?” 자신의 팔에 묻은 피를 차갑게 식어가는 보성이의 상의에 닦아내며 성원이는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누구를 불러볼까?~ 오! 이 새끼도 있었네! 킥킥 이번에는 어떻게 죽여볼까나.”
‘준환샘~ 잘 지내셨어요? 저 성원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 제가 펜션 잡아놨는데, 다음주에 수빈샘이랑 같이 놀러가요.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성원이는 카톡을 전송한 후, 행복해 보이는 자신의 과거 학원 선생님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이내 씩 웃는다.
어떤 목적성도 동기도 찾을 수 없는 성원이의 비릿한 미소는 눈 내리는 겨울밤에 조용히 묻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