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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못한 걸까요?

쓰니 |2023.09.12 22:09
조회 96 |추천 0
안녕하세요. 이십대 후반 여자입니다.
어디가서 가정사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익명으로 글 남겨봅니다. 어제 엄마랑 밥 먹다가 크게 싸운 뒤로 말 한마디 안하고 있어서 제가 이상한 건지, 제 문제도 있는 건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언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그때 상황을 얘기할려면 다른 설명이 조금 길겠네요.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볼게요.

저희 부모님은 가부장적인 옛날 분들이라 맞벌이여도 저희 엄마가 집안일 전부 다 하셨어요. 아버지 입버릇이 남자는 손에 물 묻히는 거 아니라고 항상 말하시고요. 1남 1녀이고 저랑 오빠는 8살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전 오빠랑 이렇다 저렇다 할 추억도 없고, 제가 어리다고 챙겨준 적, 놀아준 적, 지금까지 용돈 받은 적도 없어요. 아버지 사상으로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부터 설거지를 했는데 오빠는 집안일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기억하던 오빠는 항상 자기 방에서 게임 하던 사람. 그러다보니 1년에 연락 한두 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친하지 않습니다. 오빠랑 저랑 성격도 정반대이구요.
저보다 불행한 사람, 수두룩 하겠지만 제 유년시절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엄마 아빠는 서로 동갑에 19살 때 사고쳐서 오빠를 낳았어요.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에 한두 번 빼고는 거의 맨날 싸웠습니다. 싸움의 끝은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조용해지면 끝이 났어요.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을 무렵이 제가 중학교 들어갈 쯤이였는데요, 두 분 싸울 때마다 제가 엄마 앞을 막아서고 대신 맞았습니다. 오빠는 방에서 나온 적 단 한 번도 없고요. 때리는 강도가 더 심해졌을 땐 오빠는 집에 있기 싫다며 군대 갔습니다. 그 뒤로 제가 좀 많이 엇나갔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게 죽도록 싫어서요. 점점 우중충해지는 저를 누가 좋아할까요. 학교 생활도 적응 못했습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회피 뿐이였습니다. 그래서 집도 학교도 안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제가 엇나가니까 엄마 아빠는 서로 싸우는 날 보다 저를 혼내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오빠도 엇나가는 저를 바로 잡을려고 많이 때렸구요. 저도 그때 그랬으면 안됐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오빠를 좋아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어제 엄마랑 싸운 원인이 오빠 얘기가 나와서 인데요. 했던 대화 있는 그대로 쓸게요. 경상도 입니다.

엄마: 너희 오빠 주말에 온다는데 밥 좀 챙겨주라. 니 잘하는 파스타 좀 해주든지.
나: 오빠 나이가 이제 마흔 가까인데 혼자 밥도 못 먹나.
엄마: 니는 왜 그렇게 ㅇㅇ(오빠이름)를 싫어하는데?
나: 싫어하는 게 아니라 밥은 알아서 먹을 수 있는 거를 왜 내를 왜 시키냐는 거지.
엄마: 오랜만에 집에 오는데 동생이 되가지고 오빠 밥 좀 해줄 수 있는거지! (억양 높아짐)
나: 오빠도 오빠 나름이지.
(평소에 오빠한테 단답하는 거 엄마가 많이 뭐라했었음. 그때마다 싸우기 싫어서 대꾸 안했는데 이 날따라 발작 버튼 눌림.)
엄마: 닌 다른 집 오빠 였어봐라. 어릴때 맞아 죽었다. 느그 오빠니까 그 정도밖에 안한거고.
나: 난 내가 잘못한 일 뭐라했다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잘해준 적이 없어서 안 좋아하는 거다.
엄마: 지랄하네. 잘해준 적이 왜 없어.
나: (진심으로 짜증나기 시작함) 뭐 있는데? 어릴때 맨날 게임한다고 자기 먹은 설거지를 하나, 청소를 하나? 어릴때 내 숙제 한 번 봐준 적 있나? 아님 뭐 용돈을 주길 하나? 내한테 해준 게 없는데 나는 왜 해줘야 하는데?
엄마: 아니, 느그 오빠는 요리 할 줄 모르니까 해주라는데 눈까리를 부라리고. 아씨. 입맛 다 떨어지네. (숟가락 던짐)
나: 이제부터 내한테 오빠한테 뭐 해주라는 그런 말 하지마라. 진짜 싫으니까.
엄마: 니는 뭐 잘했는데? 니가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니지.
나: 내가 뭐 잘했대? 좋은 기억도 아니라서 말 안 할려고 했는데 엄마, 아빠한테 맞을 때 오빠가 한 번이라도 말린 적 있나? 내가 엄마 대신 맞고 있을 때도 가만히 서서 보고 있던 오빠 표정 내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중1이였는데. 그걸 보고 내가 오빠한테 뭘 바라겠노? 그니까 내한테도 뭐 바라지 마라. 해주란 소릴 하지마라. 그냥.
엄마: 느그 오빠는 간이 작으니까 그런거고. 닌 간이 크니까.
나: 말 진짜 이상하게 하네. 간 크면 맞아도 된대? 안 아프대? 안 억울하고?
엄마: 아니, 엄마가 맞고 있으면 대신 맞아줄 수도 있는 거지. 그게 그렇게 억울하나? 그게 그리 생색낼 일이가?
나: 생색? 대신 맞는 게 당연한 거라고?
엄마: 맞을 수도 있지. 내는 옛날에 느그 할아버지한테..
나: (흥분해서 말 끊음)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둘이 맨날 싸우는데 집에 들어오고 싶겠냐고! 그 나이에 나라고 안 무서웠겠냐고! 내가 왜 맞아야 하는데! 다음 날 엄만 내한테 미안하다든지 괜찮냐고 한 번이라도 물은 적 있나?
엄마: 괜찮으니까 멀쩡히 학교 갔잖아. 그걸 굳이 물어봐야 아나. (특유의 비꼬는 투로 얘기함)
나: (할말을 잃음. 진심으로 상처 받아서 그냥 쳐다보기만 함)
엄마: 웃기지도 않네. 대신 맞는 게 그리 억울하면 내랑은 뭐한다고 말을 섞노?
나: 낸 진짜 엄마가 조금이라도 내한테 미안할 줄 알았다.
엄마: 아니? 왜 낳았을까 싶다. 내야말로 니가 그리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밥 다 먹지도 않았는데 반찬 치우기 시작함)

중간 중간 똑같은 말로 싸운 건 생략 했습니다. 저 말을 끝으로 할말을 잃은 저는 방으로 왔고, 엄마는 저 들으라는 식으로 오빠랑 저랑 비교하며, 제 태도에 대한 욕을 하다가 다음 날 미안 했던 건지 습관인지 평소처럼 밥 차려주고 일하러 가셨습니다.
전 아직도 어제 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거 같아서 물 한잔도 넘기기가 힘듭니다. 원래 저희 집이 싸우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해하지만 어제 일 이후로는 도저히 엄마를 웃으면서 볼 자신이 없어요.

저도 어릴때 많이 잘못했던 거 인정합니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학교 안가고, 엄마, 아빠, 오빠한테 매일 대들고, 담배 피우고. 그렇다고 경찰서를 가거나 뭘 훔쳤다거나 나쁜 애들이랑 어울려 다녔다거나 누굴 폭행을 했다거나 괴롭혔다던가 그 정도는 아니였지만 뭐 그런 짓을 안했다고 해서 제가 했던 일이 잘못이 아니란 생각은 하지 않고,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과해야 할까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다 잊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엄마도 아빠랑 오빠 저까지 케어하느라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세명 다 챙기느라 자기 인생 하루도 못 누려본 사람이라서..

그런데도 왜 배신감이 드는지. 말마따나 저도 잘한 거 없는데..
그냥 다 부질 없고 죽고 싶다는 생각 뿐이네요.
전 아직도 불우했던 그 시절에 멈춰 있나 봐요. 갇혀 있는 건가.

말 주변이 없고 짧게 쓸려다 보니 뒤죽박죽 무슨 말을 쓰는 지도 잘 모르겠지만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행복했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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