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톡이 됬네요.
다른 분 글 중에서 저도 좀 동감하는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동감하지만 좀 마음 아픈..
솔직히 그 15분의 북한 분들이 김일성뱃지를 달고 계셨고
북한에서는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분들 같았습니다.
다른 분께서 아래 댓글 달아놓으신것 처럼 완전히 브레인워쉬가 된
..
그리고 그분들께서 버신돈..분명히 북한정부로 고스란히 들어갈것 안봐도 뻔합니다.
그런데 한가지만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제가 그분들을 보며 너무 가슴 아팠던 이유는,
당장 통일이 될수 없는 현실도,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수 없는
깊은 정치적인 골도, 저로썬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공산주의에 미친분들이라서보다도
더 제 마음을 아프게 한 이유는요.
사실 중동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여기서 일하시는 건설 업계 분들
거의 남동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쉬 분들인데
그분들 여름에 50도까지 올라가는 불화로 에서 물한방울 없이 땡볓에서 일하고
또 일하고 그런답니다.
그런데 월급은 25만원 가량 받지요.
여름에 택시타면서 길가를 돌아다니면 빨간 벽돌을 베개로 삼아 잠을 자는
노동자들을 볼수 있고요,
그리고 한방에 수백명씩 몰아 넣어 잠을 재운답니다.
유엔에서 인권문제로 거론이 되어서 기온이 50도까지 뻗치는 오후 2시 부터 4시까지는
잠을 , 또는 휴식을 취하게끔 되어있는데 결국 그 노동자들이 잠을 잘곳은 바깥이라는거죠.
거기서 벽돌을 머리에 배고 잠을 잡니다.
샤워할곳이요? 그런곳은 말도 안되고요
손톱들은 다 깨지고 중동 물가도 만만치 않아서 물한병 사먹지 못하는게
건설업계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그 북한 승객들에게 넌지시 여쭤봤습니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어디 사람들이십니까?'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쉬가 주요입니다'
아뿔싸..마음속에 스치는건, 건설노동자로 가시는거였죠. 최악의 중동 건설 노동자로..
우리 아버지, 삼촌들이 다녀오셨던 곳. 하지만 그분들과 여건이 완전히 다른
정말 말그대로 월급 25만원으로 한국 물가와 비슷한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것이고
....
저렇게 작은 수첩 하나 들고 다니시면서 과연 의사소통이 되실까도 걱정이 됬던거였습니다.
솔직히 통일, 그런생각보다, 눈앞에서 그분들이 고생하실게 저는 더 걱정됬습니다.
될수만 있다면 물병도 몇통씩 내리실때 챙겨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해드릴수 있던건
기내에서 빵과 과자, 술등을 챙겨드린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거라도 맘껏 드시고 가게 하려고요.
여러가지 논쟁들이 많았던 이슈를 제가 던진것 같네요.
북한분이건, 그리고 우리 한국 분이건, 어떤 혹독한 날씨에서라도 따듯하고 배부르게
잘 지내셨으면 하는게 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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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맨날 눈팅만 하다가 오늘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날씨 추운데 톡커님들은 다들 건강하신지요 ^^;;
저는 외항사 승무원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베이징 비행이 있었고
저는 이코노미석 승무원들에게 가져다 줄것이 있어서 캐빈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승객께서 조심스럽게 저를 잡으시며
'드.. 헤브.. 어...어...빠아아앙?'
저는 처음에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몰라서 재차 여쭤봤고
'블래?' 라고 하시는데 도저히 알수가 없어서 좌석의 불을 환하게 켜고
그분이 살펴보는 작은 수첩을 같이 보려고 했습니다.
빼곡하게 글자가 쓰여진 수첩에 글쎄..
'가,나,다,라' 순으로 필요한 언어와 영어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손가락으로 가르치신게 '빵' 이었던겁니다!
너무나 반가워 '어머 한국 분이세요?' 라고 하자
'노'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_-
'한국분 아니세요?' 그러자 고개를 마구 젓습니다.
'그럼 한국 말을 어떻게 아세요?'
'북조선 사람입니다' 라고 하십니다.
저와 한국말로 대화하는걸 보자 주위에서 한분 두분 고개를 내밀어 보십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반갑습니다!' 라고 말했죠. 정말 반가왔으니까요!
그러자 그쪽에서도 환하게 웃으시면서 '남조선 아가씨구만, 어이 반갑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총 15분께서 중국의 베이징을 떠나 카타르 도하로 가셔서 5년정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실거라고 했습니다. 그분들 돌아가면서 다 대화를 걸어오시는데 모든분께서
하나같이 ' 아가씨는 이제 나이가 몇살이 되우?'
'네, 이제 서른 됩니다 ^_^;;'
'결혼은 했소?'
'아직 안했습니다 ^^;;'
'결혼안하우?'
'하하하..ㅜ.ㅜ'
똑같은 질문이었지만 그분들의 눈에는 진심으로 노처녀를 걱정하는 근심이
그렁그렁 보였습니다.
그분들에게 제가 퍼드릴수 있는 맥주와 (술 참 잘 드시데요..) 와인을 계속
가져다 드리고, 과자와 빵 , 땅콩등을 준비해드렸습니다. 고맙다는 말씀을
연신하십니다. 그리고 '일 없습니다' 라는 말을 진짜 자주 하셨는데 그게
제가 바로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북한말중 하나였던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일없습니다'
'도너츠--: 가락지빵'
'소형차-: 발바리차' 등등..
'우리 북조선이랑 남조선이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지요' 라고 하시는데
더이상 깊은 이야기는 할수 없다는걸 서로의 눈빛에서 알게되었지요.
분명 카타르의 여름은 굉장히 뜨거울거고, 그곳에서 건설현장에서 너무나 힘들게
일을 하실텐데 제대로 식사는 하시고 잠은 제대로 된곳에서 주무실까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집에 전화는 하실수 있냐고 여쭤뵈니 전화와 편지는 가능하다고 하셨고
다른것은 안된다고 하시는걸 봐서 인터넷 같은것은 이용이 전혀 안된다는게 가늠됬습니다.
나중에 그분들이 누구냐고 눈이 둥그레져서 물어보는 아일랜드와 호주 친구들에게
대강 상황을 설명하니 마음 아파하더군요.
긴 9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도착후, 15분의 북한 승객은 그렇게 한분씩 하차하시기 위해
캐빈을 걸어나오셨습니다.
한분 한분 악수를 꼭꼭 하고 부디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 너무 고맙다며 존댓말해주시는 그 분들을 보며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 승객분들 깨끗한 옷에 멋진 가방, 환한 웃음, 여행에서 돌아올때의 행복한
피곤함의 얼굴을 계속 봐오다가 정말 같은 한민족인데도 거이 알아볼수 없을법한
.. 정말 딱 겉모습만 봐서는 이질감이 느껴졌지만..참 그 언어라는 힘이.. 그분들의
그 목소리와, 같은 한국어 를 쓰는데 그 느껴지는 따듯함.. 마구 전해져오는 그 고마움들..
딸같은 아이에게 존대말 꼬박 꼬박 써주시고..
어딜가시건 부디 건강하시고 따듯하고 좋은 음식 드시고 잘 주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참..마음 한구석이 아린 저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