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잊으신건 아니지요?
한 알입니다
끝내 아빠가 가셨습니다
음..................
아빠 이야기를 해도 눈물이 나지 않을 때쯤이 되어야 글을 쓸려구 마음 먹었는데
일주일이 지난들, 한 달이 지난들, 1년이 지난들, 10년이 지난들.......
아빠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날이 과연 올까요.....
경칩,
100년 만에 한 번 올까말까한 큰 눈이 내리던 날,
그래서 시내에 버스가 안 다니고, 비닐하우스가 다 무너지고, 고속도로 진입이 통제되던 날...
온 가족이 지켜 보는 가운데 아주 편안한 얼굴로 가셨습니다
그냥 주무시는 듯 조용히 가셔서
의사가 "임종하셨습니다" 라고 할 때까지
울 엄마는 아빠가 가신것을 모르셨대요
난 알고 있었는데...........
주말에 아빠 얼굴 보러 내려갔다가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다시 올라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의사가 "오늘이 고비입니다"라고 했던 날보다 6일을 더 사셨네요
아직은......................
아직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빠 방에 있는 영정사진을 보아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2월 28일.
아빠 병원에 가니 엄마가 울고 있습니다
오늘이 고비라구 친척들에게 다 연락하라구 했답니다
친척들에게 전화를 다 하구 병실에 엄마와 앉아 있는데
이미 가끔씩 정신이 혼미하여 환영이 보이고, 우리도 못 알아볼 때가 더 많고,
말 할 기운도 없어 의사소통을 글로 하던 아빠가
갑자기 엄마에게 2만원만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건네 준 2만원을 반으로 고이 접어 환자복 주머니에 넣습니다
2월 29일.
아빠가 여전히 숨을 쉬는 가운데 새벽이 밝았습니다
1차 고비를 넘겼답니다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아빠의 환자복 주머니에 들어있던 2만원을 엄마에게 도로 주었습니다
한 참이 지나고...........
아빠가 주머니를 뒤적입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에서도 그 돈을 찾습니다
엄마는 엉엉 울며 아빠의 옷에 2만원을 도로 넣어 주었습니다
3월 1일.
새벽 3시............
갑자기 아빠가 너무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배 고파 죽겠다....... 에고...... 배가 고파서 아무 것도 못 하겠다
한 알아, 엄마한테 밥 하라구 해
12월 24일부터 물 한 모금 못 먹구 영양제와 링거에 의지해 연명하던 아빠가,
단 한 번도 뭐가 먹고 싶다고 말 한 적이 없던 아빠가,
너무나 또렷한 목소리로 배가 고프다구 합니다
밥 먹으면 안 되는데......... 그럼 몸에 꽂아 놓은 튜브가 막혀서 복막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엄마랑 한 알은 아빠에게 밥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식사가 될테니까요........
전 날 아빠 후배가 끓여 온 미음을 조금 드렸습니다
아빠........ 밥 먹고 나니 배부르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자자
아휴... 답답해 죽겠네... 저게 미음이지 어떻게 밥이냐.....
엄마한테 밥 하라구 하라니까........ 아빠 배고파 죽겠어
엄마가 울면서 그릇에 미역국을 따릅니다
전 날 숙모가 사촌동생 생일이라며 끓여온 미역국입니다
아빠는 엄마가 떠 주는 미역국 한 수저를 받아 드시더니
엄마의 손에서 수저를 빼앗아 밥을 입 안에 막 퍼 넣습니다
그렇게 아빠에게 마지막 식사를 드리고
엄마는 밖으로 나가 통곡을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누구나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간대요
아빠가 달라고 했던 돈은 저승 갈 노자돈이랍니다
3월 2일.
새벽 4시....
한 알 동생과 한 알이 아빠 옆에서 아빠를 지킵니다
갑자기 아빠가......
한 알아... 저기 봐라....... 할머니 오셨네
(할머니? 할머니가 왜 오셔? 설마 아빠 데리러 온거야? 할머니 나중에 오세요... 아빠 아직은 안 돼)
아빠가 누군가와 자꾸 말을 합니다
누가 왔어? 아빠?
응... 하얀 옷 입은 여자 4명이 왔어
안 돼... 아빠 가라구 그래... 나중에 오라구 그래....
응.... 3일 있다가 다시 온대.. 한 알아 엄마한테 저 사람들 밥 주라구 해....
동생이 엄마를 깨웁니다
아빠가 혹시라도 이대로 가시지는 않을까... 세 식구가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습니다
3월 3일~5일 아침
아빠가 너무너무 아픕니다
위는 예전에 절제해서 없구,
장은 기능을 멈춘지 오래되었구,
간도 기능을 하지 않아 황달 수치가 끝 없이 올라갑니다.. 튜브를 꽂아 담즙을 빼 냅니다
신장이 멈췄답니다...... 소변이 배출되지 않아 아빠의 다리에 물이 찹니다
몸 속의 모든 기능이 멈췄는데............
심장은 너무나 튼튼하게 뛰고 있습니다
의사가 의아해합니다......
다른 환자 같으면 벌써 사망하셨을텐데요........
이젠 저희로서도 언제 환자가 가실지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와 한 알과 동생은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못 알아보고, 의식도 없고, 저렇게 고생하실거면. 차라리 빨리 데려가세요
3월 5일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립니다
눈 좋아하는 엄마를 그리도 구박하시더니
아빠는 그 눈 많이 내리던 날 먼 길을 갈 채비를 하십니다
친척들에게 다시 전화를 다 하고,
목사님께 전화를 드리고,
엄마와 동생은 병실 짐을 정리하고,
한 알은 아빠 옆에 앉아 수다를 떱니다
의식은 없어도, 우리 가족을 못 알아봐도, 듣는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오후 2시...........
친척들이 모두 모이고,
목사님의 축도가 끝나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찬송가를 부를 때
아빠는 조용히 가셨습니다
아주 편안한 얼굴로 가셨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여인들이 온다구 했던 3일 후.......바로 그 날입니다
한 알 결혼식장에 손 잡고 들어가야 한다구 운동도 열심히 하시더니.......
혹시나 식구들이 당신에게 미안해서 밥 먹으러 못 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밥 먹을 시간만 되면 밥 먹고 오라구 손을 휘휘 내 저으시더니........
밤이 되면 시간이 너무나 안 간다구, 5분 간격으로 시간을 물으시더니.........
마지막에 미역국 한 그릇 드시고
노자돈 2만원 수의 속에 넣으시고
먼 길을 가셨네요
아빠........................
아직은 잘 모르겠어
아빠가 없다는 것이.........
이번 주말에 병원에 가면 아빠가 침대에 여전히 누워 있을거 같은데.........
우리 세 식구 아빠 옆에 앉아
누가 먼저 밥을 먹고 올지
누가 초저녁에 먼저 자고 새벽에 일어나 아빠를 지킬지
시끄럽게 떠들어 댈 것만 같은데.......
아빠.........................
이젠 안 아프지?
이젠 배 안 고프지?
어제 아빠한테 갔었어
옆 집에 새식구가 벌써 들어왔더라
노자돈으로 챙겨간 2만원으로 아빠 좋아하는 술 한 잔 사서
옆 집 새식구랑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있어야 해
내가 매주 좋은 술 사들고 아빠한테 놀러갈께
그러니까
주중에는 심심해도 옆 집 식구랑 지내고 있어야 해
어차피 우린 주말에 밖에 못 봤었는걸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엄마는..................
시간이 갈 수록 힘들어 하는게 눈에 보이지만.............
그러니 아빠가 엄마를 도와줘요
너무 빨리 아빠를 잊지 않게
그렇다구 너무 오랫동안 아빠 생각에 슬퍼하지 않게
꿈에 자주 와서
난 괜찮다구, 여기서 혼자서두 지낼만 하다구, 그러니 애들하구 씩씩하게 살다가 나중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구............
엄마는 아빠 짝꿍이니까 아빠가 돌봐줘야지
나는........... 동생은...............
엄마 돌보면서 열심히 살께
글구..................
나중에 다시 만나면
지금 다 못 한 효도는 그 때 할께
그리고.................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 때도 아빠 딸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그 때는 나중에 잘 하면 되지......하는 생각 안 하구 정말 효도할께
아빠...................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요.............
너무 보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