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을 싫어하시지 않으신다는 증거는 하나 더 있다.
바로 금욕을 하게 된다면 알게 되는것들이
하느님께서 쾌락을 싫어하시지 않으신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에는 금욕에는
오로지 인내와 고통만이 상상이 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즐거움은 아예 없을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인체의 항상성과 신비로움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인체의 항상성과 인체의 신비로움에 의해서
ㅅㅈ을 하지 않고, 배출하는 쾌락을 참는다면, 쾌락을 참는 우리 인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있는가?
몸의 항상성 때문에 쾌락을 참는 대신에
어떤 걸 변형시켜, 몸의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대체물질이 되었든 어떻게해서든,
금욕 하기전의 몸의 상태와
균형을 이루려고 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성 즉, 항상성이다.”
이 항상성 때문에,
즉, 몸이 굉장한 인내로써 ㅅㅈ 배출의 쾌락을 참는만큼,
성에 대해서는 더욱더 민감해진다.
게다가 몸이 민감해진만큼, 그만큼 더 쉽게 쾌락에 휩싸이는등
쾌락과 멀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진다.
ㅅㅈ이라는 몸이 매우 피로해지는 형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 즉 성에 민감해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ㅈㅇ와 ㅅㅈ을 하지 않았더니,
고통과 인내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쾌락과 더 가까워졌고
새로운 쾌락도출방식으로 몸이 저절로 변화됨과 동시에,
ㅅㅈ을 하지 않는, 그런 건강한 삶을 더 추구하게 변화되었다.
금딸을 많이 해본 사람은 말이다.
정을 가지고 있는게 훨씬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ㅈㅇ횟수와 그에따른 ㅅㅈ도 저절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ㅅㅈ을 하지않음으로써 얻어지는,
더 건강해짐과 젊음의 지속적인 유지는,
하느님께서 쾌락을 싫어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사실이다.
보편적인 거룩하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쾌락과 연관이 더 없어져야 하는데 말이다.
ㅅㅈ을 참았더니, 참을 수 있을만큼이 유지되도록,
고통과 인내만이 아니라 그에따른 견딜 수 있도록
성적 반응에 민감하게 쉽게 반응하는 등
몸의 가벼운 쾌락도 알게 되었고, 또 함께
그것의 즐거움을 알고 느낄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금욕에는 고통과 인내만 있지 않다.
그만큼 “제3의눈”과 다른 종교에서의
다른 세계의 신비로운 현상들을 보아도
우리의 몸은 너무나 신비롭다.
다른 종교이야기도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제3의눈” 등 다른 종교이야기도 배척만할것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몸이 신비로운지 아는 것도
믿는 것이 아니라,
참고만 하는 것은,
신비로운 종교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넓혀줄뿐만 아니라,
"참고"만 하는 선 안에서는
이로울수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