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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는 않지만 신기한 이야기 1 대구

난줌마 |2024.03.15 23:54
조회 731 |추천 2
제가 최근에 우연히 글을 보았어요.!글을 보는데 과거의 저의 힘들고 어려웠던 마음들이 되살아나게 되더라구요.ㅠㅠ
결혼 후 남편이랑, 친정....하.. 말못 할 일들을 겪으며 남들은 행복한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속앓이를 했는데 (그 생각만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도네요) 
이 글 보고 많이 위로 받아서. 같이 보면 좋을거 같아서 추천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네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나서 써볼까 한다.
 친구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9급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말단 공무원이라 돈이 너무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부유한 집 딸로 살다 결혼했는데 남편이 너무 박봉에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용한 점집을 듣게 되어 멀리 대구까지 찾아가 보게 되었다. (우린 수원사람) 
 이혼에 대해 물어봤더니 남편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 될 거라 했고 실제로 투표로 뽑지 않는 갈 수 있는 최고 높은 자리까지 생각보다 일찍 진급해서 올라가셨다. 
 난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를 처음 알았다. 친구 아버지는 높은 공무원이셔서 원래부터 부잣집인 줄 알았었다.
 어머니는 그 후 매년 연례행사로 대구에 점을 보러 가신다 했다. 친구 말에 따르면 그 점집이 대구에 있는데 구정 즈음에는 추운데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집이라고 했다.
친구가 아기 때 어머니가 점을 보러 갔는데 뚱딴지같이 
 [ 평택 미군부대 앞에서 햄버거 장사를 해봐! ]
라고 했다. 
 집 근처도 아니고 당장 돈도 별로 없는데 어머니도 참 대단하신 것 같다. 힘들게 힘들게 알아봐서 아주 조그만 가게 하나를 임대하셨다. 집에서 거리도 멀어 버스를 3번씩 갈아타고 몇 시간씩 왕복하시며 할 줄도 모르는 햄버거 장사를 하시게 됐다 한다. 
그러고는 3년 만에 어머니가 햄버거 가게 하던 작은 상가건물을 사셨다. 
 대박이 터진 것이었다. 친구는 어려서 기억은 안 나지만 장사하는 동안은 집도 평택이었다 한다. 그 후에도 매년 대구를 가는데...
 [ 그 햄버거집은 이제 남에게 많이 비싼 값에 팔아 넘겨. 그리고 상가건물에 돈까스집을 해봐! ]
 어머니는 '이미 잘 되고 있는데 왜?'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한번 말을 듣고 건물이랑 집까지 사게 되어서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햄버거 가게는 팔고 그 건물 2층을 몇개월에 걸쳐 공사해서 경양식집을 오픈 했다.
그런데 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에 스프 나오고 소스 뿌려진 돈까스 나오는 경양식집이 유행이었던 것 같다. 운 좋게 시기가 참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가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자 장사를 접고 건물도 다 팔고 
 [아이들 영어를 가르쳐봐] 
했다고 한다. 
 미군 부대 앞에서 장사를 해서 아예 영어를 안 써보신 건 아니지만 또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머니는 가게와 집을 싹 팔고 수원으로 돌아와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이미 이때 돈 걱정은 크게 없어져서 그냥 새로 지은 아파트 사서 그 아파트 내에서 동네 어린 아이들 영어 가르치셨다.
 나중에 친구 동생이 명문 대학을 들어간 이유가 이것 같다. 친구는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데도 영어는 듣고 말하는데 지장이 없다. 어머니가 아이들 가르치는 걸 집에서 같이 봐와서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았다.
 난 친구가 유학을 다녀오거나 해외에서 살다 온 게 아닌데 외국 영화를 자막 없이 소리로만 들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말이 어린 나이 때는 신기 하게 들렸다.
친구는 '책만 펼치면 잠이 온다' 했다.
 다른 공부는 다 못하는데 영어만 잘한다. 대학도 점수 맞춰서 중국어과를 갔는데 대학 내내 공부를 안 해서 중국어를 거의 모르는 상태였다. 
 난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중국어였고 대학 졸업 후엔 중국으로 파견을 가 1년 6개월 동안 중국에서 살며 중국어를 하루 2시간씩 공부했다. 그 시기 친구는 대학도 계속 휴학하고 엄청 오래 다녔는데.(이것도 신기한 사연이 있다.) 마지막 한 학기 남겨두고 중국으로 놀러와서 6개월 만에 나보다 중국어를 더 잘했다.
 어릴 때 조기교육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보고 듣고 쓰면서 한국말로 이해하고 기억했다가 까먹고를 반복하는 '공부'하는 느낌이었는데 친구 소리를 외우는 느낌이었다. 
 사람들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알면 잘 안 잊고 그대로 성대모사하듯 말을 했다. 오기 전에 말 한마디도 못했던 애가 나보다 말을 더 잘했다. 
난 친구랑 중고등학교 같이 다니고 동반입대 한게 아닌데 군대서도 우연히 1주일간 만났다. 
 이 친구가 대학 생활을 엄청 오래 한 이유가 있는데 제대하고  생긴 여자친구 때문이였다. 어머니가 그 집 가서 점을 보고 난 후 둘 사이를 반대하게 되어 도피처럼 내가 있던 중국으로 온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출처] 믿지는 않지만 신기한 이야기1 대구|작성자 사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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