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 동안 우리는 몇 번을 더 만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히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함부로 시작을 원해서는 안됐고, 그 말을 하는 순간
그 것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연휴가 끝이 났지만 너는 그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나를 보러왔다.
그리고 드디어 머뭇거림을 끝내고 너는 내게 말했다.
기회만 준다면, 앞으로 평생 옆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이 마음은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죄책감도 아니며
현재 나에 대한 사랑 그 뿐이라고.
그동안 버텨줘서 고맙고,
앞으로는 평생 옆에서 사죄하고, 힘든 일은 함께 견뎌내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엉엉 울면서 그 손을 잡았다.
너무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가며,
앞으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연애가 시작됐다.
서로의 직장 때문에 우리는 시작부터 장거리 연애가 되었다.
하지만 격주마다 서로를 찾아가서 주말 가득 우리는 사랑을 했다.
과거의 후회를 씻어내고 싶어서였는지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서로를 아껴주고 배려했다.
사랑하고, 함께하며 평생을 그리는 것이 과거에 우리가 보냈던 두 아이들을 기리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너와 다시 시작한 연애는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너는 내 성격을 바로 이해하고 잘 캐치해주었고,
나는 너가 좋아하는 음식을 바로 찾아서 맛집을 다녔다.
너와 했던 전 연애가 시간이 너무 지나 흐려졌다 생각했고,
따로 살았던 날들이 훨씬 길기 때문에 너의 흔적이 내겐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내 모습에도 너는 너무 많이 녹아있었다.
특이하게 수저를 잡는 버릇은 알고 보니 너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후추를 첨가해서 음식을 먹는게 맛있다고 한 너의 그 언젠가는
나와 함께 있을 때 생긴 습관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서로에게 깊숙하게 스며들어있었단 걸
십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이 되는지 처음 알았다.
나의 어둠, 죄, 슬픔 모두 가면 속에 숨기고 살아오며
나 혼자 있을 때조차 벗지 못했던 나를
너는 금방 가면을 벗겨주었다.
그 속에 있던 못생긴 모습까지 모두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처음 너에게 내 못난 이면까지 보여줘도 된다는 걸 알았을 때,
너에게 안겨서 꽤 오랜 시간을 펑펑 울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사는 것이, 내가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며
지난 시간을 보상받을 만큼 너에게 다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점차 함께 치료되었다.
너의 죄책감으로 인해 불규칙적으로 발현되던 심리적 증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나도 정신과 약을 점차 줄여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였기에, 서로였기에, 서로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도 보통 연인들처럼, 보통의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너가 사는 동네에 가서 주변 시장 구경을 했다.
자다 일어난 상태로 편한 너의 옷을 아무거나 걸치고 나가서 칼국수를 사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십년 넘게 잘 수 없었던 낮잠도 너가 토닥여주니 잘 수 있었고,
밤에 잠이 안와도 너와 밤산책을 하고, 심야영화를 보고 신나서 아무도 없는 길에서 춤도 추니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20살에 우리가 데이트했던 곳에 다시 갔다.
그 때 맛 그대로 맛있는데 가격은 왜 이모양이냐며 깔깔거리며 국밥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호떡집을 다시 가서 사먹었고, 그때 이 장소에서 우리 엄청 격하게 싸운거 기억하냐며 어린 우리들을 회상했다.
어릴 적 우리는 함께 운전면허를 땄는데, 그게 벌써 갱신기간이 돌아왔다며
지금 가지고 있는 운전면허 증명사진도 함께 찍은건데,
새로운 운전면허증에 증명사진도 같이 찍으러가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갱신도 같은 날 함께하자고 다짐했다.
옛날 우리는 생각도 못했을 곳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이전과 다르게 우리는 운전도 잘 했고, 3일의 여행을 위해 큰돈을 쓸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함께였기에 너무너무 행복했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