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분노 그리고 새로운 만남.
수연이가 의식을 잃은 지도 한달 여가 지나가고 있었다.
눈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그녀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는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혁은 갑자기 허기가 짐을 느꼈다.
' 무엇을 먹어야 하나? '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천원짜리 두 장이 만지작거려졌다.
이젠 혁에겐 더 이상 버틸 돈도 없었다.
.
" 혁아, 그만 내려와라. 산사람들도 살아야하지 않겠니? "
어제 걸려온 원장아버지의 전화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 산사람.... 수연인 죽지 않았는데... '
길 건너편에 작은 분식 집이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가 물기가 채 닦이지 않은 탁자에 앉았다.
'무얼 먹을까? '
메뉴판을 유심히 보면서 주머니의 돈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다행히도 선택의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성싶었다.
가격표를 보아하니 라면 아니면 김밥이었다.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워서 인지 입이 깔깔하여 따스한 국물이 있는 라면을 먹기로 했다.
" 아줌마 여기 라면 주세요. "
라면을 주문하고는 TV로 시선을 고정했다.
TV에서는 연예뉴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 리포터가 최근 인기를 올리고 있는 가수소개를 한단다.
" 안녕하십니까, 민아 예요. 저는 오늘 최근 '지상의 이별...천상의 사랑' 이라는 애잔한 노래로 여러분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영원 씨를 단독 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보시죠. "
그리곤 화면이 바뀌고 리포터 옆에 영원이 앉아있고 인사를 한다.
" 정말 인기가 대단하십니다. 음반 나온 지 한달 쯤 됐는데 벌써 난리들이 예요. 본인은 어떻게, 인기를 실감하고 계십니까? "
" 예, 부족한 것이 많은 데 이렇게 많은 관심 주셔서 감사 하구요. 앞으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이 곡은 멜로디도 구슬프지만 가사가 더 애절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 예,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내고 지상에선 이별하지만 천상에서 다시 사랑하자는 내용 이예요. "
" 듣기론 이 내용이 본인의 실제 얘기라는 소문이 있던데요? "
" 네.... "
" 좀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
" 좀 마음이 아프네요. 그냥 노래 가사 대로 예요. 정말 많이 사랑했던 여자친구와 가슴아픈 이별을 했어요. 영원히... 하늘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꼭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어요. "
라면을 먹으며 TV를 보던 혁은 처음엔 무척 놀랐고 그 다음은 목구멍에 라면가닥이 엉겨붙는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뭐라구? 사랑하던 여자가 백혈병으로 죽어... 그래서 수연 이가 저렇게 됐는지도 몰라... 백혈병으로 죽으라고 기원한 꼴이니... 그것도 모르고 수연인 네 걱정만 했었는데... 그래서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고 그렇게 쓰러졌는데... '
입맛이 떨어진 그는 만지작거리던 돈을 탁자위에 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 수연아, 걱정하지마... 네가 그렇게 걱정하던 영원인 지금 너무 잘 되 있어. 최고 인기가수래... 거봐... 내가 뭐 랬어... 잘돼있을 거라고 그랬잖아. 나쁜 일 이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거라고... 좋은 일이니까 우리가 몰랐던 거야... 네가 쓰러지기 전에 이 소식을 들었으면 좋으련만... 지금도 걱정하고 있는 거니? ... "
'나쁜 놈... 수연인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데... '
그는 카지노랜드 제과점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카지노랜드에는 밤낮이 없다.
그래서 제과점도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도 열심히 야간 근무를 했다.
야간에 근무하면 수당도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번은 수연일 만나러 갔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얼굴 같은 표정으로 초점 없이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좋은 얘기, 희망의 얘기, 그녀의 아이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에게 힘찬이 얘기 - 그녀가 낳은 아이 - 들려 줄 때면 그녀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성애 때문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의 눈에도 희망의 웃음이 번져갔다.
오늘은 저녁타임근무를 위해 어스름할 때쯤 집에서 나와 제과점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았다.
이미 오전 중에 만들어 놨던 것들은 다 팔린 상태였다.
이제 그는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방문할 손님들을 위해 빵을 만들고 진열하고 팔고 해야했다.
그는 열심히 빵을 만들었다.
하얀 설탕가루가 잔뜩 묻어나는 빵, 빨간 딸기시럽을 넣은 페스츄리,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통팥을 넣은 팥 빵, 그리고 갓 구워낸 버터 향이 가득 나는 식빵까지...
이 식빵을 내놓을 때면 사방으로 그 구수한 향이 퍼져나가서 사람들의 시장 끼를 자극하곤 했다.
역시나 오늘도 그는 새벽3시가 되어서야 마지막으로 식빵을 구워냈다.
그렇게 베이커리 안으로 달콤한 버터 향과 불에 그을린 밀가루 향이 번져갈 때쯤 한 여자가 들어왔다.
말쑥한 30대 후반의, 부드러움 속에 나름대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부티 나게 잘 가꿔서 인지 몸 전체에서 고급스러움과 윤기가 흘렀다.
" 아. 빵 냄새가 좋아요. 지금 갓 구워낸 빵들인가 봐요? "
" 네," ,
채 털어 내지 못한 밀가루가 묻은 손으로 손님을 맞았다.
" 첫 손님이신대요. "
혁은 밀가루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싱그럽게 웃으며 얘기했다.
" 어머, 그래요. 운이 좋네요. 미소가 참 상큼하네요."
서슴없이 유쾌한 칭찬을 하면서 빵을 고른다.
그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이여서 인지 나이보다 어리고 싱싱하게 보이려고 온갖 투자를 다 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자주 나이가 느껴져서 우울해 하고 있는 중이다.
새벽 이 시간에 이곳을 방문한 여자?...
' 누굴까?... 카지노에 도박을 하러 온 건가.... '
어째 그녀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 카지노 딜러? ... '
그러기에는 그녀의 고급스런 품격과 분위기가 그것이 아닐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했다.
그녀는 슈크림이 들어있는 빵과 하얀 설탕가루가 묻어있는 빵을 고른 후 케잌 진열대로 왔다.
" 어머 너무 예쁘다. 이것 두 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
고개를 들어 혁을 보면서 웃는다.
" 네... "
그가 머쓱해 하며 웃어 보였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긴 웨이브 머리를 한번 쓸어 올리면서
"저거 주세요."
하고는 빨간 시럽이 뿌려져있는 조각 케잌을 가리킨다.
" 그건 산딸기 시럽으로 만든 거예요. "
" 너무 예뻐요. 혹시 작품이름 같은 것이 있나요.?"
" 작품이요? ... 아직 작품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 예요. "
" 왜요. 너무 정열적인 빨간 색에 저 파란 허브 잎이 정말 잘 어울려요. 작품제목은.... 여인의 입술? 어때요... 하하 어째 좀 관능적이네요... 다음에 제가 좋은 걸로 생각해 올 께요. "
하면서 카운터에 그녀가 고른 빵들을 올려놓고는 계산을 한다.
그녀가 나가고 난 자리엔 한동안 은은한 고급향수냄새가 남았다.
&&& 행복한 하루되세요.!
흐억, 벌써 새벽 2시네요.,,,시간이 어정쩡하네요.
새 하루가 시작은 됐는 데... 다들 꿈나라 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