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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너무 지긋지긋하다는 개그맨

ㅇㅇ |2024.07.01 11:07
조회 6,435 |추천 30


79년생 개그맨 황영진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 자취 




 

 



엄마는 지방에서 돈 벌어야 했고

친형은 운동부여서 기숙사 생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짐




 

 

 

 



급식 없던 도시락 싸 다니던 시절..

그것도 어려움




 

 

 



학용품이며 먹을 것이며

모든 것이 부족한....




 

 

 



버스비도 없어서 일찍 일어나

한 시간 반 씩 걸어서 등교




 

 

 

 

 


가난이 너무나 악에 받쳐버린...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 다짐하며 열심히 삶





 

 

 

 

 

 

 

 

 

 

 

 

 

ㅠㅠㅠㅠ




추천수30
반대수1
베플ㅇㅇ|2024.07.02 09:43
ㅠㅠ 요즘 아이들은 진짜 상상도 못할 일.. 저때는 저 정도 가난해도 지원도 못 받았음 나도 가난해서 밥에 쉰김치만 싸가지고 다녔는데 나보다 더 가난한 애들은 도시락 못 싸와서 수돗가에서 물로 배 채운애들도 많았음. 학용품은 당연히 못 사서 선생님한테 준비물 안 챙겨왔다고 맞고. 가난해서 매로 버팀 ㅠㅠ
베플ㅇㅇ|2024.07.02 15:50
어린시절에 겪었던 일 중에 아직도 뼈에 사무치게 기억나는 일 하나가.. 학교에서 매주 월요일은 재활용품 이런걸 제출해야하는 요일이었음. 집에서 신문이나 우유곽이런걸 가져오는거였는데.. 우리집은 가난해서 신문구독도 못했고, 우유도 자주 못마셨다. 내가 살던 동네는 그때만해도 경기도에서 깡시골이었으니까.. 그때 당시 유제품은 비싸고 귀한거였다. 못가져 가는 날은 어김없이 담임이 쇠자로 손톱을 내려쳤다. 손톱에 파랗게 멍이들어서.. 집에가면 엄마는 내 손톱을 부여잡고 인상을 쓰시곤했다. 알고보니 신문, 우유는 핑계였고.. 촌지를 못가져오는 가난한 학생이 그렇게 쇠자로 맞는거였다.. 우리엄마는 동네에 아줌마들에게 돈을 빌려 선생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쇠자로 맞은 일이 없었다. 가난이란건 그런거였다.. 요즘 친구들은 생각도 못하겠지.. 저 개그맨의 마음이 너무도 공감되서 본방송 보면서 나도 참 많이 울었었다 서연숙 선생님 그렇게 애들을 패면서 뜯어간 촌지로 잘먹고 잘살고 계시나요?
베플ㅇㅇ|2024.07.02 15:11
진짜 지금의 가난과 2000년대 이전의 가난은 차원이 틀림. 그당시에는 서울에도 달동네 엄청 많았고 공용으로 화장실 쓰는 반지하 다가구 주택도 엄청 많았음. 85년생인 나도 어릴때 반지하단칸방에서 연탄 떼고 살았던 기억이 있음. 근데 그게 부모님이 열심히 안산게 아니라 맞벌이를 열심히해도 여행은 커녕 그냥 최소한으로 먹고사는게 전부였음. 지금처럼 너도나도 해외여행가고 한다는게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라 어른들이나 70~80년대생들한테는 지금 젊고 어린애들이 배부른 투정하는걸로 보이는것 같음.
베플ㅁㅁ|2024.07.02 14:50
가난해서 겨울에 난방도 못하는 빛 한점안들어오는 지하 단칸방 네식구 사는데 가스 떨어져도 시킬수가 없고 전기밥솥에 라면끓여먹고 사는데 그마저도 얼마후 전기 끊겠다는 통보를 받았던 그당시 내나이 12살... 처음으로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열악한 지하방은 곰팡이와 벌레들 천국이었고 쥐구멍이 어디있는지 라면을 사다놓으면 쥐가 갉아먹었고 가난한 우리는 그마저도 버리지 못하고 쥐가 갉아먹은 부분만 잘라내고 끓여먹고 살았다. 지지리 가난하다 처절하다못해 12살짜리가 유서를 쓰게 만드는 가난한 집 나는 저 사람의 마음을 충분하다못해 절절하게 공감하다못해 한참을 울었다.
베플으유|2024.07.02 10:09
앞으로는 고생했던만큼 잘먹고 잘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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