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ㄷ을 안 볼수 있는 자기최면법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운동으로 육신을 최대한 지치게 하여
잠들기 쉬운 상태까지 몰아세우며,
그렇게까지 운동을 하고
지쳐서 잠이 들 수밖에 없어야 한다.
그렇게 피곤한 상태가 되면,
부대안에 있는 피곤에 쩔어있는 병사처럼
어쩔 수 없이 잠드는 방법을 택하여 성욕을 피하는 것이다.
이 기본 방법이 잘 되고 있다면,
정기적으로도 이 기본방법을 생활에
기본 베이스로 아예 잡아놓고,
모든 일상을 이렇게 시작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일상이 피곤하여 지내거나, 아니면 운동에 지쳐 잠들기는 하나,
그렇지 않은 특수한 날들도 존재한다는 것이
일상에서의 함정이다.
이때, 성욕으로 인해 평소에 자주 달아오른다면,
자기최면방법으로 딴 생각을 하며,
최대한 성욕을 참아보자는이야기다.
바로 자신이
“무슬림의 한 지파에 태어난 무슬림의 아이”라는 최면이다.
“나는 무슬림에서 태어났다. ㅇㄷ을 못보는건 어쩔수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자.
이런 일들을 수 없이 맞이하는 무슬림을 생각하며,
“나는 무슬림의 아이다.” 라는 생각을
일상에서 자주 갖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무슬림도 전세계적으로는 수가 많고,
그들도 어쩔수 없이 참는다는 무슬림 종교의 특성상
그렇게 참는 무지하게 많은 무슬림들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만 기억하자.
“나는 무슬림에서 태어났다.”
“수 많은 무슬림은 이와같은 일을 비일비재로 겪고있으며 이겨낸다.”
이 두가지 생각을 가진다면, 힘이 생길 것이다.
남들도 다 하는데
나는 왜 못하는가 란 생각과 함께 말이다.
만일 자제하려는 강인한 마음만 있다면
이 자기최면을 평소에 자주 생각하고 잊지않는다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무슬림에서 태어났다.”
무슬림의 수많은 이들을 위로 삼아,
같이 견디는 동지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자는 말이다.
무슬림에서 태어나서 어쩔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ㅇㄷ을 안볼 수밖에 없으니,
내가 아예 무슬림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의식을
평소에 자주 생각하는 자기최면방법이다.
전세계 무슬림 전체 수와 같이,
같이 견디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 위로하며,
의외로 그 무지많은 무슬림 군중들 속에
“내가 무슬림의 한 아이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