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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항상 구하라"는 방언은 신자의 차이로 말하고 있다.

까니 |2024.12.01 18:11
조회 50 |추천 0




가톨릭과 방언을 주무기로하는 개신교의 신자의 차이는
약 2배가 되고 있다.

성경말씀대로 한 개신교와 가톨릭의 신자차이가 말한다




“성경대로 하여라”




성경에서는 무엇이 효과적인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
미리부터 말씀하고 있는데, 눈먼 장님처럼 찾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성령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적과 병나음과 구마가 일어나기만 한다면”

그 활동이 주축이 된다면,
사람들이 “십일조”를 기꺼이 안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허망한 대에 돈쓰는 거 같은 정적인 기도문들이
효과가 “방언처럼 제대로, 성령의 활동처럼 제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타나지도 않을 때가 있었다.




“기적과 병나음과 구마가 진짜 사실이고
그 사실이 어떤 장소에서는 꾸준히 일어난다는 보장만 있다”라면,

그 장소인 “성령회관을 사람들이 매니아층만"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성령회관을 널리 알고만 있다면”,


십일조를 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개신교처럼....




정적인 기도문 효과도 나타나지 않던, 미지수가 아니라,
화끈하게 나타나지 않고, 그냥 미지근한게 아니라,

방언은 그와다르게 한번에 효과적으로
한번에 불타올라 나타나기 때문에


“십일조”를 그 때 거두어도
“성령회관이 매우 활성화 되는 그 때” 거두어도,


개신교사람들처럼 별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개신교도 별말을 안하니까 말이다.



단지, 정적인 기도문들은
항상구하라는 방언처럼 효과가 탁월한지 않은 것도 문제다.

그저 믿기만 하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온순하지 않다.
그러면 불교와 다름이 없다.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는 것이
“사람들이라는 정제되지 않은 집합체”인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십일조를 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천주교는 성령의 활동인 성령회관을 아는자가 매니아층 밖에 없다.“



이는 너무 큰 문제가 아닌가.




다만 천주교는 그런 활동을 축소하거나 홍보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
”성령회관“을 아는 자만 아는

아니면, ”성당을 오래다닌자만 아는 숙련자들의 공간”일 뿐이다.




“성령의 활동을 개신교처럼 이용하여,
십일조를 자발적으로 내게하라“




이것도 한 개신교의 모범적인 방안이 될 수도 있겠다.




개신교인들이 왜 성령의 활동에 열광하고,
성모님께서 발현하셔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종교들"에는 없는 즉,

진짜 하느님의 종교가 개신교는 아닌데도,
악신을 한번도 이겨내 본적이 없는 거짓탈을 쓴

진짜 종교가 개신교는 아닌데도
기꺼이 큰 돈을 내는 것을 왜

마다하지 않는지를 안다면, 아니 이제는 알아야만 한다.



원래 천주교가 차지해야 했던 개신교의 자리를
”천주교의 성체와 성혈은 개신교와 다르게 진짜다“라는

역사적 실제사실로인해
더욱더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은

눈에 불 보듯 뻔한게 아닌가.

성체와 성혈이 천주교는
역사적으로 확인된, 아니 더나아가서 증거까지 된

진짜 예수님의 몸과 피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아니, 역사를 바꾸랴?



”성령의 활동을 늘려야 하면 늘려야지,
그렇게된다면 신자수는 지금처럼 정체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다.

보이는대로 믿으며, 보이는대로가 아니면 믿지 않는다.



기존의 가톨릭처럼 기도문을 아무리 열심히 되뇌어도
결과가 만리장성처럼 보이지 않아도

믿으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개신교에서는 신이 있음이 눈에 이미 보이니까 말이다.



”신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믿기만 하세요“ 하던
옛날의 시대가 아니다.




사람은 의외로 보이는대로 믿는 단순한 자가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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