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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세상사 |2025.03.18 17:47
조회 183 |추천 1
어느덧 나이도 40이 다되어가는 3월에 갑자기 보고싶은 사람이 생겨서 이렇게 글로나마 그리워 해보려 한다 .부모님이 내 나이 8살?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2살 아래 여동생과 함께 시골에 계신 조부모님 손에 컸다. 그때 당시 연세가 할아버지 55세 할머니 52세 정도 되셨을 텐데. 할아버지 나이로 47세에 손주를 보신거 인데 엄청빨랐던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 어머니도 갓 20대 성인이 되셨을때 나를 나으셨던 걸로 안다(어머니랑 19살 차이).
임신과 출산은 시골에서 하시고 내가 유치원 들어갈 무렵 서울로 취업을 하고 집을 구해 나랑 동생을 키우셨는데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분이 다투시고 이혼하셨는데 아버지가 양육권을 가졌지만 키울자신이 없어 우리 남매를 조부모 님께 맡겼다고 하셨다(나는 기억이 없음). 그렇게 내 어릴적 기억은 가물가물한 정도인데 시골 집 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셋째고모 막내고모(13살 차이) 나 동생 이렇게 6명이 살다가 고모 두분이 대학교 졸업하며 출가하시어 5학년때 쯤은 할아버지 할머니 나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았는데 초등학교 동안 부모없는 애들이란 소리 안듣게 하려고 뒷바라지 많이 하셨던건 기억이 난다.  6학년 올라갈 때 아버지가 지금의 새 어머니를 만나시면서 다시 우리 남매 키우겠다고 데리고 서울로 전학을 갔다. 새 어머니는(나랑 17살 차이) 사별하시고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나보다는 5살 어렸고 서울로 올라와 전세인지 월세인지는 몰라도 내 방도 있는 집에서 살면서 6학년을 졸업하고 새 어머니가 임신을 하시며 2000년에(밀레니엄 베이비)출산을 하시면서 여섯 가족이 되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당구장 장사를 하셨는데 I.M.F 여파로 가게를 접고 새 어머니와 작은 식당을 운영하셨다.경기가 안 좋아 지면서 집도 정리하고 부천에 방3개 짜리 반지하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중학교를 다닐 동안 집에는 4남매만 있었고 부모님은 서울에서 가게를 하시며 장사가 잘안되고 차비도 아낀다는 이유로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으셨다.여기서 에피소드좀 얘기하자면 전기세 가스비도 못내 한겨울에 물 받아서 버너에 물 끓여서 씻고 밤이면 초 켜고 동생들이랑 지냈다. 내 친동생은 6학년이 막내를 키웠으며 나는 내 나이 중2때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부천으로 통학을 하던중 옛날 친 어머니와 지냈을때 옆집이모 딸(나랑친구였음)을 우연히 만나 드라마처럼 어머니를 다시 만났고 동생과 나는 어머니와 간간히 연락하며 지냈었다(지금도 연락하며 지냄).그러던 중 아버지는 친 어머니를 만나는걸 알자 반대하시고 화내셨고, 내 나이 중학교 3학년 친구와 다퉈 친구가 크게 다쳐 병원비를 무느라 도저히 경제적 여건이 안된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와 동생을 다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께 부탁드렸다.공부도 못하는 꼴통이지만 대학은 가야된다며 인문계를 고집하셨던 할아버지께서는 64세 이제는 연세도 있으신데 손주들 학비를 벌기 위해 부단히 농사며 이것저것 고생하셨다.아버지가 장남이라 이것저것 챙겨주셨는데 이혼 후 맘고생이 심하셔서 장손 이라도 성공하라고 없는 살림에 학원도 보내주셨지만 학원비도 삥땅치고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술, 담배도 하고 여러모로 속을 썩혀 드렸다.그 힘든 농사일 한번 잠깐 도와드리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내고 일좀 도와달라고 하시면 평일에는 야자요 주말에는 보충학습이라는 이유로 싸돌아만 다녔다.그렇게 속만 썩히고 공부도 안했는데 또 남들 다가는 대학은 가겠다고 수시원서 넣어서 돈만내면 들어가는 대학에 합격하고 고3 후반 놀기만 했었다. 첫 대학 등록금을 주시던 할아버지 께서 는 열심히 하면 다 성공 한다 너는 성공해야 한다는  그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대학교 1학기 내내 놀다가 군대로 도망쳤다. 군대 있을때 철원까지 먼길 면회도 오셨었다....군대 있는동안 동생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까지 보내실동안 휴가 한번 들르고 나머지는 친구들과 놀고 농사일 한번 도와드린 적도 없었다.제대 후에 복학하기는 싫어  취직을 했고 1년 일하고 무슨 바람이 불어 수능공부 다시해서 좋은 대학 간다고 하고 1년을 또 놀았다. 정신 차리고 25살 쯔음 공장에 취직해 공돌이 생활 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26살때 결혼식도 없이 첫째를 낳았다. 가진게 없다보니 할아버지께 손을 벌렸고 보증금 1천만원 도와주실때 할아버지께 정신차리고 산다고 울며 말씀드렸는데 애키운다 결혼생활 힘들다 공장일 힘들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아침마다 운전 조심해라 술너무 마시지마라 담배 끊어라 전화 해주셔도 나중엔 잔소리 귀찮다고 전화도 피했다.  그렇게 살다가 이사도 가야되서 또 할아버지께 손을 벌렸고 그때가 마지막 도와주시는 거라고 선산을 정리하신 돈 3천만원 가량을 또 쥐어주셨다 못난 손자에게......일도 하고 둘째도 낳고 나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1년에 명절때만 찾아뵜었다.결혼 생활중에도 지금 와이프랑 이혼하내 마내로 맘고생도 시켜드렸었다. 그렇게 내 나이 30중반 큰애가 11살 둘째가 8살 여유롭진 않아도 이제좀 생활이 피고 직장에서도 자리잡고 있을 무렵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단다..... 코로나도 이겨내시고 담배도 일절 안하시고 술 만좀 드셨었는데 암에 걸리셨단다 23년10월쯤 부터 급격히 안좋아 지시고 24년 1월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 83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병원에 계실때 한번 요양원 계실때 한번 2개월 동안 2번 찾아뵙고 돌아가실 때도 갑자기 돌아가셔서 고모에게 전화통화로 아직 듣고는 계실꺼라고 하고 싶은말 하라고 하셔서 죄송하다는 말뿐이 못했다..... 너무 많이 죄송하다고..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모신지도 1년 2개월이 되간다. 그동안도 이런저런 핑계로 몇번밖에 못갔었다.
그렇게 걱정 하시던 손자는 아직도 철이없어 생전 말씀하셨던 술,담배도 못끊었다.사진만 보면 눈물이 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보고싶은 할아버지 평생 고생만 하다 가신 우리 할아버지 자식 키우기도 힘든데 손주들 까지 보셨던 우리 할아버지 마지막도 아프고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40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도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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