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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살률 때문에 꼭 말해야 하는 신이 있다.

까니 |2025.03.23 18:50
조회 56 |추천 0




자살률 때문에 꼭 말해야 하는 신이 있다.

하느님과 대립되면서, 평화로운 종교인듯하나
게다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접근하였으나,

정작 위험했던 “악신의 지배아래”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안주던
이상한 신이 있다. 부처다.



다수결로 이기려 하지마라.



다수결에 부친다하여도
우리나라에서 악신을 이긴 가장 세신 신은

전세계 1/2의 하느님이시다. 천주교의 하느님이란 말이다.




한국에서만 불교가 1위의 종교이지,
전세계로 나아가면, 1/20의 종교가 불교일 뿐이다.

하느님을 묻는가.
전세계의 1/2이 신자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신들은,

“악신보다 약해서 악신에게 당하기만 했다”라고
할 수 있거나

실제로는 도움을 주러 전혀 우리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허망할뿐들인 나약한 수많은 온갖 신들앞에서와는 달리
하느님께서는 굳은 믿음에 실제라는 콘크리트까지 굳어져서

만들었으니, 믿지않았으면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사후세계를
반드시 감당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지옥이다.
지옥을 말한다.
가장 염려가 된다.





이 부처라는 이상한 신은 우리나라의 1위의 신이라고 하지만,
정작 들여다보면,신인지 아니면,

수행하는 존재인지 애매한 존재가 증거라고는
하나도 안보여주면서 환생 전생을 논한다.




도대체 무엇인지 정체가 궁금하기 짝을 뿐이다.
그렇게 증거를 안보여주고 이야기하면 나도

당장 만들수있다.






그렇다. 부처 자신은 "전생과 후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없었다.




신이라면, 하느님처럼 실제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것 아닌가.
첫단추부터, 불교는 신이 아니었다.


환생 전생 정확한가만 대답을 하여라.



괜히 부푼 헛된 기대와 이상한 희망만 채웠을 뿐이다.
위의 이 모든 사실은 부처가 말하는 생이란 존재가

여러개인지 혹은 전생이 있는게 확실한지
불교의 교리 모든게, 모두 다 부정확하기 때문에

가능한 말들이다.


없을 수도 있다. 다른 말로는 부정확하다.
부정확 그 자체다.



부정확한 부처를 믿으랴.
실제로만 이야기하는 하느님을 믿으랴.





매우 열심인 불자에게조차 무슨 도움을
“실제로” 주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도움을 준 신은 "전세계의 1/2의 하느님"이신데,
전세계의 1/20인 불교는 무얼하고 있었냐는 말로도 풀이된다.



이 전생과 환생을 이야기하는 신이
정작“악신의 지배아래”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그 반응은 무반응 그 자체였다.




아무리 불자가 고통을 당해도 오직 침묵뿐이었다.

이러한 신인지 아니면 환생을 유도하는 존재인지 모르는
“부처”라는 사람은 솔직히 그 존재가 신인지도 모르겠다.



실제가 아니니,실제로는 말한적이 없으니
믿는게 어리석음이다.

분명하게 실제로만 이야기 하시는 하느님을 제쳐두고서
부처를 믿는다면 말이다.






그만큼 불자가 울부짖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전생 환생 때문이라면, 이 도움도 안되는 헛된 기대 때문이라면,
신인지 모르는 의문의 존재로부터, 그 존재를 밝혀라.


부처가 실제로 도와준다는 기적이 있습니까.
부처가 실제로 도와준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불교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오로지
“자살률”이기 때문에 내가 맹비난을 하는 것이다.




전생 환생 역시 확실하다고는 전혀 할수 없고 또 모르면서도,
전생환생을 믿으며 불나방처럼 죽는 것이다.






그렇다.

이 무미맹맹한 신인지 인간인지로부터 내려오는 교리로는
다음 생이라는게 있다는 듯이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증거는 물론 없다.
이게 핵심이다. 키포인트다.



증거가 없다. 하나도..



그러나 실제로만 말하는 하느님처럼,
실제라는 확실한 증거만을 가지고 확실히 믿음이 생기게끔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허황된 기대와 다음생이 있다는 망상을 자극하여,
“상상으로 생이란 것도 다수 있는 것처럼 또는 아는 것처럼”

심지어 다음생이라는게 있다는 듯이
사람들을 가르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아는가.

다음생이라는게 있다?
아는 당신은 신인가?




전생.. 환생..

확실한가만 따져도 수그러드는
허무맹랑한 문제이다.

그런데 다음생은 어차피 불확실할뿐이다는 사실만을 의지하여,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음생이 불확실하다?



반면,
하느님께서는 확실하시다.




불확실. 그건 하느님께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확실한 믿음을 주는

사실과 실제라는 방법으로만 이야기 하신다.




실제로 라는 믿음을 가지기에는, 절대적으로 충분한 조건들로만
말씀하고 계시니까 말이다.



불치병도 실제로 낫는다.
암도 실제로 낫는다.
나병환자가 실제로 낫는다.
마귀 들린 사람이 실제로 낫는다.




그러나 이처럼 오직 실제로만 말씀하시는 하느님처럼
불교는 실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든 실제가 아닌 또는 다음생이라는" 전혀 모르는,
또 사람으로써는 알수도 혹은 아예 없을수도 있는 생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기대에 차게 하여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죽게하는게 실제 사실이자 실제 실태이다.




설사 자신이 죽는다는게,
하느님께는 그 행위가 어떤 말을 하는것인지도 알지 못한채

불교는 이처럼 허무하게도 전생환생의 실체는 없고,
오직 희망만을 가진채 죽게 하니,

이는 바로 “ㅈㅅ”을 너무 쉽게 만들어 버리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모든 신중에서 가장 세신 하느님께서,
불교에 동조를 하셨거나, 또는 비슷하다면 문제가 없을텐데,

우리나라의 악신을 이기신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센 신이라는 증명이 완료된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대하신다.

“ㅈㅅ을 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죽이는 것이다.”라며
불교와는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셨는가.





그렇다. 십계명 중에 “살인하지 말라”가 ㅈㅅ에 적용되는데
이는 ㅈㅅ이 자기자신을 죽이는 명백한 살인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ㅈㅅ했다고 무조건 지옥에 갔다는,
너무 무조건적인 확신은 금물이다.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이시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만약 ㅈㅅ한 자의 영혼이 걱정이 한없이 된다면,
위의 성경구절만을 한없이 되풀이해서 보아라.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어라.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아예 완전히 다르신 분이시다.”

이것이 위의 성경구절의 내용을 줄인 것이 아니겠는가.




절대자와 대립하는 이 신은 불교의 신이며,

이 신인가 인간인가 모르는 존재에게
자신의 삶을 모르면서도 내맡기는 것 자체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가득함에
“모든 짐을 엮어 목숨까지 내던지게 하는 꼴이니”,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은,
마치 불나방이 불을 향해 뛰어드는 것과 같지 않은가.





다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어찌 판단하시는지는
“인간으로서는 항상 모른다가 답”이기 때문에


아니,인간이라면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만 “하느님께서 지극히 자비로우시다”는 사실과

또 “인간의 생각과는 항상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
성경구절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라면 알수없다.
이를 깊이 생각하라.



어떻게 생각하든,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항상 다르다”이며,

살아있다면,
어떻게해서든 ㅈㅅ은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 성경구절을 보아라.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렇다고 마냥 지옥이라고 단죄만 해서도 안된다.
그것을 주관적이라고 한다.

지극히 자비로우실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든것을 알고 계신다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는가 모르는가.
오직 그것에만 답하여라.



모른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간에
인간은 그 사람이 어찌되었는지는 인간이라면 아무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는 안된다.



신과 인간.
같다고 생각하지마라. 같지 않다.




자비하신 하느님께 내다맡기고,

그 죽은 영혼을 위하여, 전대사를 베푸는 방법이
가장 최우선의 그리고 가장 최선의 방법일 뿐이다.

무조건 전대사를 바치는 것뿐이다.




"전대사."






어찌 되었는지 전혀 인간이라면 항상 모르기 때문에
가장 최대한으로 그 영혼을 위하는 오직 한가지 방법이다.

이게 가장 최선일 뿐이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있다면....

다만, 우리는 ㅈㅅ을 하면 안된다는
가장 안전한 지대에만 머물러야 할 뿐이다.


100분의 1이라는 확률일지라도, 확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 하면 안되는 것일뿐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 이유는
“오직 영원한 시간 때문에 그렇다.”




“영원한 시간의 고통이란 아무리 약할지라도 상당할지언데,

연옥이 지옥에 비해 한없이 약할뿐,
연옥의 고통도 현재의 모든 고통을 다 합쳐놓은 것보다
아프다”고 한다.



영원한 시간만 조금 생각해보아도,
ㅈㅅ은 하면 안되는 것이 맞다.



불교의 전생과 환생이 의외로
죽어도 다시 사는 삶이 있다고 여기게하므로

상관이 전혀 없을 것 같아도 의외로 ㅈㅅ을 부추긴다.




이는 사실이다.
이 지표를 보아라.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회원국 중에서 압도적인 1위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불교가 종교들 중에 인기순위 1위인 국가이다.






우리나라의 매우 높은 자살률과
우리나라의 1위의 종교가 불교란 점은 일맥상통한다.


만약, 불교와 우리나라의 악신을 이겨버리신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거나 비슷하다면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실은 그렇지 않고

하느님과 불교는 서로 반대다.



불교는 죽어도 삶이 있다고 하는 반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은 단 한번, 태어난다고 이야기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느님의 사후세계인 지옥이 있다면,
그 어떠한 조건의 일말의 가능성은

절대 절대로 실행으로 올기지 않는게
100% 안전한 사후세계에 준비에 돌입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악신을 이기셨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신들중 어느 누구도 건들지못한 악신을
하느님께서는 꺾어버리셨다.



이게 혼자서만 전세계1/2이나 믿는 신의 진가가 아닌가.
이래도 절대자가 아닌가.




어느 신이 전세계의 1/2의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단 말이냐.





올바르게 살았다고 만약 ㅈㅅ을 실행하여서 우연치않게
지옥이라는 100분의 1의 확률이 얻어 걸리지는 절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지옥이면 절대로 1/100의 확률이라도,
1000분의 1의 확률이라도

절대 걸리지 않아야만 할만큼,
영원한 시간이란 치명타라는 공간을 뚫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선다는 사실은
우리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수 있지 않은가.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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