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고인을 욕보이는 건 누구인가

쓰니 |2025.03.27 16:23
조회 68 |추천 0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세상을 떠난 뒤에도 평화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살아 있는 내내 그가 평화로웠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누군가는 그의 이름 앞에 '배우'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붙이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어떤 말로도 호명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뒤에도,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여전히 뜨겁다. 슬픔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았고, 애도는 채 정리되지 않았는데도 말은 너무 많고, 입은 지나치게 가볍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붙기 시작한 공방전은, 사실상 끝나지 않은 장사였다. 그의 이름 석 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상품처럼 소비되고, 감정은 콘텐츠로 재가공된다. 누군가는 그 곁에 있던 이들의 입을 빌려 더 큰 주목을 끌었고, 누군가는 그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조회수를 얹었다. 그 과정에서 고인의 고통은 과거형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고통, 여전히 팔리는 이야기. 그것은 부관참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잔인하고 서글펐다.

더 참담한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침묵의 공모자라는 사실이다. 기자 역시, 결국 다시 고인을 언급하며 누군가의 마음에 또 하나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이 글은 어떤 변명의 자리도, 면죄부도 아니었으면 한다. 때문에 이름 대신 지칭을 '그'로 대신한다. 한때 같은 삶을 지켜보던 기자로서, 끝내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각 위에 서 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돌을 맞았고, 죽은 뒤에도 여전히 방패 하나 없이 벌거벗은 채 서 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더는 말할 수 없는 그를 대신해 말하는 이들이다. 한때 사랑을 나눴던 연인, 그리고 피를 나눈 이가 가장 크게 입을 열고선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말들은 고인의 인격과 선택, 삶 전체를 전시하는 기제가 되어버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고통의 온전한 해석은 불가능해졌고, 주변은 타인의 고백 속에서 이야깃거리로 재편됐다.

죽음은 개인의 서사이자, 사회의 거울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그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죽음 앞에서, 우리는 참담한 수준의 민낯을 마주하고 있다. 죽음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이 사회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너무 쉽고, 너무 빠르게, 너무 무심하게.

고인의 삶은 누구보다도 복잡하고, 조용히 곪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복잡함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고, 그 조용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사람의 존재가 자극적인 제목 아래 묻히고, 그 슬픔이 논쟁의 불쏘시개가 되는 것. 그것은 단순히 그의 잘못도, 그의 주변 사람들의 죄책감만도 아니다. 이 모든 과열된 방식이, 지금 이 사회의 얼굴이자 한계다.

이 글은 그를 외면했던 기자의 속죄이자, 너무 늦어버린 참회의 기록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겠지만, 최소한 이 자리만큼은 그의 침묵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남는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평안을 빈다.

한수진 기자 (han199131@ize.co.kr)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연예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