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단 한번뿐인 삶을 주신다.
까니
|2025.04.20 07:53
조회 43 |추천 0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을 여러번 반복해서 사는게 가능하다고는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단 한번 뿐입니다.
전세계의 1/2의 신자들을 보유하고 계신 하느님,우리나라 최고의 센 신이신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일어난다"라는 도저히 믿지 않을수가 없는 증거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믿음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생이 한번뿐인 우리들은,
그와중에 또 삶이 지속되어 지기를 간절히 바라고서는, 인간의 보잘것없는 지성으로 대충 보기에도, 인간이라는 한 시선으로만 볼수 있는 낮은 존재가 삶이라는 복잡하고 다양한 작용들을 대강 그려보기에, 가장 그럴듯한 것은 불교이므로, 불교를 믿는 것은 당연지사 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증거가 없다." 입니다.
저는 불교는 증거가 없다는 크나큰 약점으로
억만금을 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동물이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실제라는 증거가 없기에,
불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이번 악신의 대반란에 불교의 종교라는 공식적인 공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생이란 진짜 여러개일까? 아니다를 알려주듯이 아무런 실제라는 현상이나 증거는 없고, 그러나마나 불자가 고통을 받으나마나, 또 현실에서의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들과 다를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불교의 도움은 없었습니다.
불교의 신들은, 불교의 영적존재들은 안나타나고,
또 한번도 안도와줌으로써, 이젠 너무나 확실해졌습니다.
불교의 여러생이라는 교리들은 허공에 뜬 구름을 잡는 실패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만 바라보기에 가능한 시선입니다.
주관적이 되지 마십시오.
멍청해지지 마십시오.
의사는 객관적이고,
전교 꼴찌 무리들은 공통적으로 주관적입니다.
"불교는, 오히려 믿을수가 없는 오리무중 상태이다"라는 것을 설명하듯이 알수 없게 생을 이야기합니다.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증거를 가지고,
그것도 100% 믿을수있는 실제로 일어난다는
실제라는 증거만 채택하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1000만이 우연일까요.
전세계의 1/2도 우연의 일치일까요.
"수많은 실제"가 우연이 될수 있을까요.
불교의 방식은 "믿든지말든지 니들이 그냥 때려 맞추어라. 종교는 여러개다." 를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이야기는....
하느님처럼 실제로 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닌,
신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증거도 없는 생이라는 개념"을 상상으로 만든 다소 모자람을 갖춘 종교라는 근거있는 이야기는 오로지 모든 사실을 객관적으로 다가가야만 볼수 있었으며, 불교는 아닙니다.
불교는,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이기에는 매우 부족한
주관적인 주장이나 교리라는 틈새가 매우 많은
믿기에는 부족한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라는 엄청난 믿음을 주시는 하느님.
한번도 불교는 하느님이시라는 전세계의 1/2의 신이 보여주는 실제라는 도움과
불교의 영적 존재가,단 한번이라도 드러난 존재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생이라는 내가 만든 개념을 믿든지말든지 때려맞추어 보라는 불교."
우리나라 ㅈㅅ 1위로써, 매우 높은 국가라는 불명예의 공로가 직접적으로는 불교가 아닐수는 있어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사실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니라는 의견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불교가 영향을 안주었다?
우리나라 1위의 종교 불교.
OECD회원국 중 ㅈㅅ률 1위.
그런데 불교와는 정반대로, 이 전세계의 1/2이신 하느님께서는, 생은 한번뿐이라고 하십니다.
전세계의 1/20 불교는 영의 다른 존재도 본적도 없어서, 더욱 종교인지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증거가 없어서....
결코 믿음직스럽지는 않다는 이야기가 되며, 이는 저라도 증거없이는 지어낼수 있는, 모른다에만 의지하는 자들이 찬양하는, 증거가 없음으로 막무가내로 난리난, 지어냄의 잔치가 아니겠습니까.
"증거가 없는 생이라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불교의 전생과 후생등, 불교는 오히려 여러개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불교를 믿는다?
저는 증거가 꼭 있어야만 불교를 믿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쾌락도 있어서 더 살고싶다가
사후다음의 세계도 보고 싶은데,
100% 안전한 지속가능한 삶은
실제라는 엄청난 증거와 전세계의 1/2의 신자들이 삶을 사후세계 뒤에서의 계속 이어지는 가장 확실한 답은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삶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가고 싶다면, 하느님만을 믿어라. 사후세계를 지나고 새로 창조된 지구에서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진것처럼 볼수있다고 말씀하신 성경구절들과, 성인이 되신 말라키 주교님의 예언이 100% 일치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음을 가지기에 다소 부족한 면이라도 존재하는 겁니까.
가톨릭은 쾌락의 문제만 해결이 되었으면,
믿는데에는 오히려 아무런 문제없음이 아닌가요?
우리나라의 악신이 "신은 우스운 존재다"라고 가르치던가요.
우리는 하느님의 사후세계 중에 하나인
지옥이 있음으로인해서,
오직 이 영원한 시간을 보내는 지옥이라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후세계가 있다는 오직 이 이유 단 하나만으로도,
신의 선택과정에 굉장한 심혈과 정성을 다해, 피를 쏟아붓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종교의 자유는 사람이 만든것.
사람이라면, 모두가 죽은 다음에 겪어야 하는 사후세계를 사람이 만든 법전이라는 책은, 신이 만든 사후라는 죽음뒤에 일어날 모든 일을 하나도, 단 한가지라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신은 필수적이다. 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유로는 모든 사람들이 죽고, 그로인해 사후세계는 모두가 겪는 시간이다. "
이게 신의 존재입니다.
악신이, 아니 신이 너무나 많은 영향을 안겨 주었습니다. 악신도 신이니까요.
지옥을 감내할 수 있는 자는,
그 어떠한 종류의 인간 중에서도, 오직 하나도 없음으로인해서, 하느님을 선택해야 가장 안전하다는 말입니다.
하느님만이 "가장 믿을만한 실제라는 증거"로만 이야기 하신다면,
생이 한번뿐일 수가 있다는 하느님의 말씀과 이야기도 정말로 그럴듯하게 보이므로,
하느님을 믿는다면 가장 그럴듯한 게 아니라, 하느님의 이야기라는 자체로 이는 곧, 100% 실제가 아닐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입니다.
완전 똑같지 않습니까.
찾아보십시요.
코린토 1서 7장 31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