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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성령을 너무 터부시해 왔다.

까니 |2025.07.13 07:24
조회 63 |추천 0




개신교는 믿음이 있습니다.
천주교는 믿음이 없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왜 생겼을까요?

네,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3절




천주교가 성령에 힘입는 광경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맨날 제사에 성체를 모시고는 끝인가요?


개신교는 성령에 힘입었기에,
항상 "나는 구원받았다"를 외치고 다니는 것 입니다.



종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성체성혈은 아쉽게도 과학적으로
증명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심각한 이벤트용.




이래도 성령회관이라는 장소의 중요성을 모르신다면,
이 성경구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직접적으로 말하면서, 또 알려주고 있는데도
천주교는 모른다는데 말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다른 점이
이 하나뿐인 것입니다.

1000만과 600만의 차이는
이것이었던 것입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3절






성령을 힘입었느냐?아니냐?

이 둘의 차이가,
현실에서의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수가 되겠습니다.





이미 우리는 1000만 개신교인으로,
그들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라고 확실히 외치는 모습을

극명하게 잘 보았습니다.



개신교는 믿습니까? 물으면 곧바로
"네, 믿습니다"하고 힘차게 말하는 반면에,

천주교에게 믿습니까? 물으면 뜸을 들이면서
"으음 아직 그정도는 아닌거같은데.... ""라는 대답을

필히 듣고 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개신교는 불행히도,
성모님의 발현과 말씀중에 "하느님의 종교들" 중에

개신교는 없었고,
그 증거로 개신교는 우리나라 악신에게 진 사실이 있는데도,

우리 천주교가 왜 도대체 믿음이 더 약한가에 대한 이유가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3절.


이라는 이 성경구절의 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천주교는 너무 하느님께 예식과 제사만을
정성껏 지낸다는 이유로,

신자들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정적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천주교도 믿음은 있겠습니다만
그 신자들이 불어나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정체기는

계속 되고 있으며, 성경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천주교는 직접 자신들이

성령을 터부시해 버림으로써,
이를 자신 스스로가 초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성경말씀의 힘으로도,
천주교는 성경에 반하고 또 역행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을 건드리지 못한 천주교, 또 성령회관보다
오직 제사에만 힘을 쓴 결과,

또 그와더불어 또 하나있다면,
매일 또는 늘 구하라는 방언을 우습게만 본 천주교는

수적으로나 믿음의 정도로나
너무 개신교보다 열세에 빠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던 것임이 성경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고,
성경에서도 보여주는 것처럼, 모든 답을 다 이미

성경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방언을 매일 하라고 하는 성경구절"을 무시하는게,
천주교는 방언으로 악의 공격에 방어라는 도움을 받으려면,
수도회 수사님들이나 수도회 수녀님들 밖에는

방언을 할 줄을 모른다는게,
얼마나 우리 가톨릭에서는 방언을 터부시 하였다는 증거가

되겠습니까.



개신교는 매일 방언기도를
남을 위해서 바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수도회에서의 장상들에게서는
방언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흔적을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수도회를 제외한 주교님 계열 산하의 모든 신부님들은
제사 하나에만 의무가 있다고

방언을 하나도 신경도 안쓰고 있습니다.



성경은 남의 책입니까.




마지막 시대인 오늘날에는
성경에서도 쓰여진 방언을 한번도 구경도 못 해본체,

종말을 맞는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된다고
천주교는 실천으로 말을 하네요.





방언을 구경도 못한 가톨릭의 신자들이
전세계에 널려 있는 채,

지구는 종말을 맞게 되는
진귀한 장면의 순간입니다.






천주교는 성령을 건드리지 않고,
믿음이 증대하기를 바랐던 것 입니다.



천주교는 성령회관을 건드리지 않고서,
신자들의 수적 증가를 꾀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성령의 시대"로 불리는 오늘날에도,
제사 준비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제사에만 몰두하는 천주교.
왜 신자들이 천주교만 안 늘어나는지 궁금했는데,
성경에서 또 답을 찾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방언의 세기도,
개신교처럼 방언으로 매일 기도하지 않아,

매일 방언기도하는 개신교보다는 훨씬 파워가 약한 것은
당연지사 일 것입니다.


방언이라는 분야는,
불행히도 개신교보다 훨씬 아래입니다.





천주교보다 개신교의 도움을 받는 게,
방언이라는 분야에서는

개신교가 상상이상으로 더 세다니까요.





성경은 쓰여있었습니다.
방언을 매일 구하기를 힘쓰라고 말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ㅡ 에페소서 6장 18절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늘"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안에서 간청하십시오"가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안에서 기도하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천주교는 성령을 매우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신자수와 신자들의 믿음의 강도가 이를 말해주며,

성경에서도 말씀하십니다.




개신교의 "네, 믿습니다"와
천주교의 "으음...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안되는거 같은데...."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3절






성령은 매우 소홀히 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제사에만
신경을 쓴 천주교의 지금 실적은 어떠합니까.




개신교에 비해 믿음과 신자수가 매우 약한
매우 초라한 실적이 지금의 천주교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령회관과 성령에 신경을 써라."

"성령의 시대다"

"마지막이 되어서도 성령이 한번도 안 부흥하거나,
성령을 아는 천주교신자가 손꼽히는 정도로 적을수도 있다는
사실은 마지막시대인 지금상황이라니 말도 안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라고 말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천주교는 거의 없지 않느냐."

"마지막 시대를 무엇으로 보는지
성령기도인 방언을 하는 자가 없구나"





이 성령의 목소리들이 한 목소리로 통곡하며
천주교를 향하여 크게 들려 오는것 같지 않습니까.




개신교는 성령을 체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반면에 천주교는 성당만을 다니라는

주입식 믿음만 가르침으로서
성령을 단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자들이 수두룩 하며,

그 결과가 냉담자수가
상당한 결과로써도 나왔습니다.





개신교는 믿음이 매우 강하고,
반면에 천주교는 믿음이 흐지부지 희미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성경에 쓰여진대로 해야 하겠습니다.
이대로 5-600만의 신자수에만 만족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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