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디부터 반말해서 미안.
나이 성별 떠나서 그냥 친구한테 하듯 얘기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또 누구한테 할까 싶고 주변 지인들에게는 도저히 못하겠거든.
오늘만 나랑 친구해주라.
나는 엄청나게 지랄맞은 집안에서 태어났어.
아들이 최고. 종갓집. 장손은 하늘.
그런 집안의 맏딸이야.
그렇다고 잘나가는 집안은 아니고.
있는건 개뿔도 없는, 살은 없고 뼈대만 앙상한 가문.
요즘도 그런게 있을까 싶지?
맞아. 난 요즘 사람이 아니다 싶은 집에서 태어났어.
부자ㄴㄴ 그냥 00 0씨 000파 00대손 이게 전부인 집안.
나는 "너 태어났을때 집안 어른들이 서운해 했다" 라는 소리를 벗삼아 자랐고 자라는 내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었지.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우리 집안은 부자가 아니었어.
그저 물려받은 땅덩어리가 약간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내가 살던 지역이 재개발 붐이 일면서 하루아침에 벼락 부자가 될뻔 했었어.
되지 못한 이유는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진 부친때문이지.
30년전에 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음주가무에 정통한 부친께서 다 쓰고 돌아가셨어.
보상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한다거나 이런일 일절 없이 현금이 최고라고 그냥 흥청망청 다 쓰셨대.
아무튼 그랬어.
부친께선 술.여자.도박 3가지에 아주 적극적이셨는데
술만 마시면 그렇게 집에 와서 나와 모친을 두들겨 팼어.
있는돈 없는돈 다 끌어다가 도박에 날리는 부친 덕분에
내가 어릴때 모친께선 백화점에서 쓰는 코팅된 크고 두꺼운 쇼핑백에 손잡이 끈을 넣어 묶는 부업을 했어.
나는 그게 참 재미있었어.
모친은 내가 그걸 못하게 했는데 난 어린나이에도 알고 있었어.
이걸 빨리. 많이~ 해야 엄마가 불 끄고 자는구나..
물론 새벽에 집에 돌아온 부친이 잔뜩 취해서
자고있던 나와 엄마의 머리채를 잡으며 쌍욕을 하긴했지만.
나는 15살때부터 가출을 했어.
라떼는 15살에도 부모 동의 없이 주유소 알바가 가능했던 시기야.
착한 청소년이었다고는 못하겠네.
담배도 배우고 술도 마시면서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
모친이 걱정되고 보고싶으면 집에 들어갔다가
부친이 때리면 다시 집을 나오고
그런 생활이 이어졌어.
성인이 되고 남동생이 군대를 가야하는데
얘가 우울증이 있다네?
쳐 맞은건 난데 지가 마음에 병이 들었대.
동생은 입대한날 집에 가고싶은 사람 손 들라그래서 집에 왔더라고.
어느날부터 동생은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
가진것도 배운것도 없어서 이것저것 알바를 하며 20대를 보내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알게된 참된 어른 한명이..
너 이렇게 살면 나같은 날건달 만나서
평생 ㅈ같이 산다고 조언을 해주더라.
그때 마침 부친이 돌아가셨어.
그래서 집에 들어와서 검정고시도 보고, 지방 하꼬 국립대지만 대학물도 마셔봤다.
내가 생각보다는 머리가 좋더라고.
동생은 천천히.. 느리지만 나날이 시들어갔어.
살자 기도를 여러번 하더니 결국엔 성공하더라.
차 유리창에 박스테이프를 붙여가며 번개탄을 피웠대.
그렇게 덤벙거리던 애가 어찌나 꼼꼼하던지..
태어나서 처음 경찰서를 가봤어.
유품 찾는 절차는 굉장히 간단하더라고.
엄마는 생각보다 잘 버티셨어.
죽지못해 사는 수준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런 저런 흔적이 희미해질때쯤
나는 결혼.출산.이혼을 3년만에 전부 겪었어.
평범해지고 싶었는데 잘사는건 바라지도 않았는데
안되더라.
나는 예전엔 부친이 가끔 그리웠어.
20대에 돌아가셔서 아! 친정아빠.. 라는 상상속의 그리움에 취해있던 시절이 있었거든.
근데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까 용서가 안되네.
나는, 핏줄은 못 속인다 라는 옛말도 틀리다는걸 증명하고 싶었어.
내 아이에게는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보호막이, 끝까지 온전한 아이편이 되어주고 싶었어.
아이가 2살,3살,4살.. 6살..9살..12살..되어갈수록
이렇게 똑같이 작고 약한 어렸었던 나를
부친이란 작자가 어떻게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렸는지 용서가 안돼.
볼에는 애기때 찢겨진 상처가 아직까지 초승달처럼 그늘졌고
종아리에는 불에 지져진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어.
태워죽인다고 난리를 쳤거든.
나도 자식이잖아.
그 어린애가 뭘 잘못했다고 뭘 안다고
나도 애기였다고.
나도 어렸다고.
모친은 내가 맞고 자란 이야기를 안 해.
나도 알거든.
나를 지키려고 얼마나 맞서 싸웠는지.
옷이 피범벅이 되도록 머리채 잡힌 두피가 찢어질때까지
부친을 잡고 매달리며 막는걸 봤거든.
나는 무슨 죄를 지은걸까?
나는 부친께 무슨 잘못을 한걸까?
그래도 부친덕분에 나는
결혼생활에 대한 부부에 대한 로망이 없어서 그런지
이혼한지 10년이 넘어가도록 외롭다는 생각은 안드네.
긴 세월 많이 아팠다 이런 감흥도 없어.
그냥 지랄맞은 세월 잘 견뎠다 싶다.
내가 살아온 인생 절반 가까이 이유없이 맞고 살았거든.
그것도 부친이란 인간한테.
뭣이 그렇게 힘들어서 친 자식을 때려야만 했을까?
나는 내새끼 보기조차 아까워서 밤새 바라만 봐도 미안하고 딱하고 가슴이 미어지는데
나는 긴 시간동안 왜 그렇게 미움을 받았을까?
내 부친이 이런 개차반이라고 나는 맞으면서 살았다고
어느 누구한테 말을 할수 있겠니.
그냥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심정으로
한번은 어디에라도 토해내고 싶었어.
들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