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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아래 작은 집

누렁이 |2006.11.16 16:09
조회 23 |추천 0

처마 아래 작은 집

박판식

이제 비가 오면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도
겨울이면 내달리던 고드름도 없이

문밖만 내다보는 흙 묻은 내 신발코를 가슴 쪽으로 돌려놓으시고
어머니는 철없이 싹이 돋은 감자를 수저로 긁고 계신다

새로 집을 수리하고 어머니는 반이나 쪼그라들었다
안방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없어지고
툇마루가 없어지는 동안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옛이야기를 조르면 어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오히려 내게 귀를 기울이신다

생각나세요
겨울이면 제비들이 날아가 행복하게 산다던 멀고 아름다운 나라
그런데도 봄이면 곧잘 돌아오는 새들을 보며
우리는 처마 아래를 조심스레 뒤져보곤 했어요

해마다 높은 곳에 푸른 잎을 매달던 마당의 오동나무
아침이면 커다란 잎들이 마당 가득 쏟아지곤 했지요

어머니는 동생과 나를 낳고 반이나 쪼그라들었다
우리가 빠져나온 어머니의 몸은
힘겹게 집을 이고 있는 비오는 날의 달팽이 같고

달팽이 같은 어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내게 귀를 기울이신다
어머니 오늘은 옛집에 다녀왔어요
섬돌에 얹힌 낯선 신발들이 어찌나 커다랗게 보이는지
아는 척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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