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외도이야기 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겪는 저에게는 자그마치 1년이라는 긴 시간처럼 다가옵니다.
남편과 저는 올해 햇수로 11년 부부 두 자녀가 있습니다.
둘 다 사회 초년생 어린나이에 뭣도 모르고 결혼해서
아등바등 우여곡절 겪고 10년차 되니 이제 우리 인생에도 곧 꽃이 피겠구나 하며 조금만 더 열심히 살아보자 하고 있었어요.
먼저 저희는 리스부부였습니다.
시험관으로 얻은 아이 둘. 아 아이들을 낳기 위해 했던 모든 숙제들이 버거웠고,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11월 남편의 수상한 낌새를 몸소 느껴버렸습니다.
외도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결국 파헤쳤습니다.
25년 1월 제 생일에 남편은 상간녀와의 관계를 이실직고하며 인정하였고, 삼자통화를 하며 일단락을 시켰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계속되는 의심과 남편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는 충고.
거기서 저는 멈췄어야 더 행복했을까요?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의심은 멈출 수가 없었어요.리스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매일 성관계를 하고 성적 이벤트도 준비하며 노력했지만 뜨뜨미지근한 반응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싸움.
결국 남편은 관계개선을 위해 일주일 동안의 별거를 요청했고, 거절했지만 남편의 계속 되는 설득에 정말 그게 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거 당일까지 이건 아닌 것 같다 집으로 들어와라하였지만
남편은 끝내 제 의견은 들어주지 않고 별거를 강행했어요.
이상한 촉이 들어 남편이 지내는 곳으로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남편은 없었고, 연락은 닿지 않았습니다.
상간녀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했어요.
“점장님 늦은시간에 죄송합니다. 남편이 연락이 닿질 않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점장님 뿐이어서요. 제 연락이 불쾌하신건 알겠지만 남편에게 전화한통 부탁드려도 될까요?”
상간녀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곧바로 다시 제게 전화기 와선 본인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얘길했습니다.
몇 분 후 남편은 ”점장한테도 연락했더라? 우리 관계를 끝낸건 너야. 너의 집착 때문에 우리는 끝난거야.“라고 보내오며 연릭이 두절 되었습니다.
그 후 설날.
아이가 사고를 당해 얼굴이 다 갈리고 크게 다쳤는데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럼에도 매일같이 미안하고 사랑한다며 카톡을 남긴 제게 별거를 끝내는 날 집으로 돌아오며 ”사실 너도 알고 있지? 너의 집착 때문에 우리는 끝난거야. 가정을 지키고 싶었으면 적어도 한발은 빼놨어야지.“라고 하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울며 불며 메달렸어요. 다 제 탓이라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리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제게 경멸의 눈빛을 하며 손도 대지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남편은 집에 두번 들어오며 매일같이 외박을 했고, 아빠를 찾는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일 때문에 바쁘다고 변명을 하며 뒤로는 매일같이 집에는 와서 애들 얼굴이라도 봐달라 사정 했습니다.
남편은 점점 갈수록 도가 지나쳐 집도 차도 다 팔아버리고 유치원 근처로 월세방 얻어 줄 테니 거기서 살아라, 아이들 유치원 못 가는거 별일 아니다. 정 그게 걸리면 그냥 홈스쿨링하고 지내다 살길 찾아서 살아라 합니다.
증거로 남길 생각은 못했습니다. 아이들 생계가 걸리니 그냥 울며불며 원하는대로 해주며 사정할 수 밖에요.
무지했어요. 정말 오롯이 제 의심탓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우연히 남편 차 블랙박스를 보다 증거를 찾았습니다.
별거 하던 날, 그리고 아이가 다쳤던 그 날에도 상간녀와 전주, 대전 여행하며 제 연락에 대해 집착이라고 얘기하는 내용.
모첼 호텔 투숙하는 장면, 헤어지며 입 맞추는 장면.
제게 친정집에 가라고 내쫓고 집에서 같이 자자는 내용.서로 “부도덕한 일은 더 큰 부도덕함으로 덮어 죄책감을 없애야 한다.”라고 하며 하하호호 웃는 대화.
손이 발발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도 오롯이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에 없던 입맛이 돌았어요.
저는 그때 당시 한 달도 안되어 10키로가 빠져있었어요.
남편은 집에 오는 날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 서류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고, 저는 거절했습니다.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던 와중 아이들 생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생일은 챙겨주자 설득해 펜션으로 여행을 다녀 왔어요.
그 날 만큼은 아이들을 위해 놀아주는 모습을 보니 지난 날들이 생각나 눈물이 멈추지 않아 혼자 한 켠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보더니 제게 “니가 망친 이 가정이 서러워?“라고 합니다.
그 후 날이 갈수록 대놓고 하는 외도질에 결국 상간소송을 넣었습니다.
변호사님이 이혼소송도 함께 하라고 권하셨지만, 두려웠어요. 아이들의 마음이 다칠까, 나 하나 참으면 이정도는 그냥 넘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혼소송 넣지 않았습니다.
상간소송 소식을 알고 난 남편의 첫마디는 ”집 팔아서 위자료 내줄테니 너 알아서 살아라“였습니다.
소송을 취하하라는 협박에도 아랑곳 않고 버텼습니다. 남편이 정신 차리길 기대하면서요.
이내 남편은 정신을 차린 듯이 사과를 하며 이혼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일까요? 저는 그 모든 행동들이 소송을 위한 쑈 같다고 느껴졌고, 그래서 “진심이라면 가정을 위한 노력을 먼저 보이고 그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할 것이다. 결정은 그 후에 할 것이다.”라고 했더니 이혼을 하지 않는다는 확답을 해야 노력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고 그게 몇 개월 지속 되었습니다.
제가 확고하니 남편은 양육권을 가지고 협박하고 협의 이혼서를 제시한 저에게 이혼소송 걸라며 비아냥대고 그렇게 수 개월을 보내다 결국 저는 이혼소송을 걸었어요.
이혼소송 제기는 오늘 기준으로 이제 3개월정도 되었습니다.
그 동안은 양육권으로 인한 압박을 주기 위해 온갖 치사한 행동은 다 보여 놓고 제가 이제 포기가 된다며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양육권을 가져가라하니 오늘에서야 미안하다며 사과합니다.
그 동안의 모든 일들을 다 상세히 적을 수 없기에 간결히 적어 본 내용입니다.
두서가 없어 보이거나 다소 가독성이 떨어 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제가 단단해졌다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하다는 진심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과를 받고 나니 매 시간 눈물이 나서 답답하고 아픈 마음에 글 써봤습니다.
양육권에 대한 입장도 정말 함부로 뱉기 싫어서 이제 서야 마음먹고 얘길 한건데, 저 사과를 받아 제가 양육권을 가지고 살아감이 맞을까요?
+ 추가
결혼생활 10년이 넘고 두 아이까지 있으니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나는 바로 이혼해야'지하고 늘 상상하던 것 만큼 결단력있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상간소송을 증거 발견 후 더 모으고 나서 걸게 되었고 곧 첫 기일날이 다가옵니다.지난 시간 동안 남편의 밑바닥을 다 보게 된 저는 이제 이 가정에 희망을 더 이상 품고 있지 않습니다.가진 재산도 크지 않아 합의 이혼으로 끝내려는 마음이 컸고 그래야 제가 덜 괴로울 것 같았습니다.남편과 합의점이 맞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고, 결국 제가 남편의 요구사항에 맞추어 이혼신청서와 같이 내밀으니 태도가 돌변하여 이혼 할 마음이 없다 하여 하고 싶으면 이혼소송을 걸으라기에 곧바로 걸게 된 시점이 3개월 전입니다.
남편과 상간녀는 직장동료 입니다.상간녀는 현재 남편과 근무하고 있는 사업장 운영 책임자 업무를 맡고 있기에 점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며, 대화문으로 두서 없이 썼던 부분에서 이해가 조금 어려우셨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의 제 미련은 양육권이었습니다.남편에게 양육권은 그 무엇보다 강한 무기입니다. 제가 온전히 지키고 싶었던 것은 양육권이었으니까요.소송을 시작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격해오는 모든 행동과 말에 지쳐서 포기를 선언했었던 것이고, 그러고 나니 사과를 하기에 이대로 다시 양육권을 가져오는 것이 맞는 것인지혼자 답답해서 썼던 글 이었습니다.그저 몇몇분 읽어주시다 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밤사이 생각보다 많은 댓글이 달려 놀랍고 조언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자면.. 남편에 대한 미련은 이제 없습니다.하루 빨리 갈라서길 기도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