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랑니에 대한 저의 에피소드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사랑니 때문에 요즘 며칠째 밥을 제대로 먹지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비극의 시작은 제가 독감에 걸려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독감 때문에 가레가 목에 걸려서 기침은 마치 개 짖는 소리같았고 입술은 수분이 부족해서 쩍쩍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아파서인지 도통 입맛도 별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밥을 먹으려고 보니, 구강이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픈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당황스러웠지만 이것도 이번에 유행하는 독감 증세의 하나겠구나 싶어서 넘겼습니다.
아픈 부위가 정확하게 어디인지 설명할 수 없고 구강 모든 부위가 너무나도 아파서 그때부터 밥을 먹지 못했어요.
그 때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독감에 걸렸을 때 끼니를 거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저는 아프거나 말거나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생각을 해서 아프다가도 밥을 먹으면 금방 나았거든요.
독감때문에 입맛이 없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은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정도로 통증이 너무 크고 독감은 다 나았는데 대체 뭐지 싶어서 학원에서 조금 더 일찍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거울 앞에서 손가락으로 일정 부분을 누르며 대체 어디가 정확하게 아픈건지 안간힘을 썼는데
‘아!!!’
찾았습니다.
입 안 가장 뒤쪽, 어금니 뒤 잇몸이였습니다.
근데 잇몸위치인데 이상하게 통증은 이가 썩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문득 스치듯이 떠올랐죠.
‘이거 사랑니다.’
솔직히 제가 사랑니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들었던 말 중에 어금니 뒤에 사랑니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위치상 이건 분명 사랑니가 틀림 없었습니다.
왜, f(x)의 ‘첫사랑니’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그 노래를 들었을 때는 사랑니에 대해 아무런 경험도 없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겪어보니 진짜 죽을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보통 사랑니는 발치할 때가 아프다고 들었는데 저는 사랑니가 자라나는 시작부터 아파 나중의 고통이 상상이 안될 지경입니다.
학원을 빨리 마친 그날은 유독 더 힘들고 몸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마법의 날까지 겹쳐서 저는 일찍 잠자리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밤9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쭉 꿀잠을 자나 싶었는데…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제가 단지 사랑니가 좀 아프다고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자면서 꿈을 꿨는데 그 꿈 내용이 아주 가관이었기 때문에 7시까지 자기는 커녕 새벽2시에 일어나 밤을 꼬박 새워야했습니다.
다시 중간에 자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울어서 눈이 부었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제 첫사랑이 나왔습니다.
사람마다 첫사랑의 기준은 처음 만난 사랑이기도 하고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이기도 하고 각각 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첫사랑의 기준은 처음으로 사랑을 알려준 사람입니다.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에겐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저는 남들보다 사람이란 기준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이해 안되는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화를 낼 때 그저 장난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 사람이 진심을 다해 성질을 내는 것을 보고 아 장난이 아니였구나. 하고 깨달았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화를 내야할 상황인데도 화를 내야할 이유를 모르고, 서운해야 할 상황에도 저는 항상 무던히 상대방을 이해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겠지. 라면서요.
저는 요즘에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원래 다른 동물로 태어났어야 할 운명인데, 사람으로 잘못 태어난 것은 아닐까. 우스갯소리긴 하지만요.
아무튼, 그런 저에게 첫사랑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서툰 저마저도 사랑이란 감정을 얼핏 알 수 있었습니다.
첫사랑은 모두에게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어서 남에게도 딱히 철벽 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게 문제였습니다. 인간은 상호작용할 수 밖에 없는 동물입니다. 첫사랑도 살면서 같은 반 아이들이랑 친해지기도 하고, 큰 틀에서 보면 남녀 다 같이 잘 어울려 노는 게 어느 면에서도 더 좋은게 사실인데 저의 망할 질투가 문제였습니다.
첫사랑에겐 여사친이 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있을때면 저와 있을 때보다 더 즐거워보이고 말도 더 행복해하는 모습이 바로 앞에서 보였습니다.
저와 첫사랑은 비밀연애를 했습니다. 근데 둘 다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어서 비밀연애를 하는 동안 저는 첫사랑과 여사친이 즐거워하는 모습만 지켜볼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더라도 행복한 모습을 빌어주는 게 맞는 것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저 당시엔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함이 들어서 질투의 화신같은 스스로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두사람을 보고 혼자 애타고 가슴 아파하기만 했습니다.
여사친에 대해 이야기도 물론 했죠. 하지만 해결이 안났어요. 첫사랑은 여사친은 친구일 뿐이라고 했고,그게 사실이잖아요.
제가 과하게 질투가 많았고, 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제가 먼저 이별을 말했습니다.
너무 사랑해서 결국에 그 사람을 싫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랑보단 질투였죠.
다 끝난 후에야 저는 바뀌었습니다.
첫사랑의 여사친과도 처음에는 제 쪽에서 그쪽을 정말 저주하고 혐오하고 그랬지만(물론 마음속으로..)
지금은 남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깨달아서 그 여사친과도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첫사랑은 조선시대의 호와 비슷합니다.
호도 죽은 뒤에서야 붙이는 이름이어서 죽기 전까진 알 수가 없는데
제 첫사랑도 진행형일 때는 첫사랑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거든요.
다 끝난 다음에서야 첫사랑이었구나. 그렇게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첫사랑과는 많은 시간동안 함께했습니다. 거의 삼계절은 같이 보낸 것 같습니다. 제게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고 정말 많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헤어진지도 몇달이 지났고 첫사랑을 마주쳐도 더 이상 아무 감정이 들진 않습니다.
그렇게 첫사랑은 끝이 나나 싶었는데, 그런데.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사랑니가 자라난 걸 알고 꿈에 첫사랑이 나왔을까요.
신기하게 요 최근 꿈에 나온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하필 또 사랑니가 자라기 시작한 날 나올 수가 있나요.
꿈에나온 그 친구는 현실이랑 똑같이 자신의 여사친이랑 놀고 계셨습니다.
꿈의 장소는 학교였는데 제 바로 앞자리에서 첫사랑과 여사친이 웃고 떠들는 그 강도가 점점 거세졌습니다.
저는 무의식 중에도 아직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보다보니 더이상 안되겠다 싶었던 저는 꿈속에서 제 앞자리던 첫사랑의 머리채를 잡았습니다.
사실 그냥 뒷머리카락을 조금 움켜 잡았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꿈인데도 머리카락의 촉감이 생생해서 이정도면 진짜 잡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꿈에서는 반 애들 몇명이 더 나왔습니다.
아까 머리를 잡았을 땐 수업하는 것처럼 앉아있었다면 지금은 좀 더 편하게 책상에 누워있었습니다.
책상에 눕는다는 게 좀 이상한데 꿈이라서 별 신경은 쓰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책상에 누웠는데
꿈에서 첫사랑이 지도 미안했는지 팔을 저에게 뻗었습니다. 저에게 닿기 위해서요.
여기서 진짜 열 받는 부분은, 저희가 비밀연애를 해서 꿈속에서도 첫사랑은 남들 시선을 신경 썼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팔이 닿는데 저밖에 모르게 자연스럽게 닿는 듯 안 닿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기 여사친이 보거나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될 것 같이요. 더 무서운 건 저에게 닿은 팔 감촉도 느껴졌습니다.
여사친이랑 그렇게 즐겁게 있었지만 뒤 늦게서야 저한테 오는 모습이 사귀고 있었을때면 화가 났을 텐데, 모든 게 다 끝난 지금은 조금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날 안 잊었구나.’라고요.
꿈 내용은 그게 다입니다. 꿈이 끝나고 깬 새벽 2시에 저는 혼자 울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계속 내려왔습니다. 눈물이 뜨겁게 느껴진 것은 처음입니다.
남들 다 자는 야심한 새벽에 울음소리로 누군가를 깨우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입니다. 그래서 늘 하던 것처럼 입을 틀어막고 울었습니다. 상상해보면 조금 웃기실 것 같은데 서럽게 울었습니다. ㅠㅜ
그래서 꿈을 꾼 새벽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감이 다 교차하고 쓰라린 감정이 느껴져서 이런 신기한 경험을 나만 알고 있기엔 인생 손해보는 느낌이라 이렇게라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사랑니가 왜 사랑니인지 저희 엄마가 알려주셨습니다. 사랑처럼 아파서 사랑니라고. 저는 엄마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평소에 그런 장난을 많이 치시거든요. 근데 ‘진짜야~!’ 이러시길래 대충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두번째로는 아는 언니에게 사랑니에 대해 하소연을 했습니다. 언니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사랑니는 사랑을 할때쯤 난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이 말도 안 믿겼습니다. 왜냐하면 감자탕도 감자가 야채감자가 아니라 돼지 부위 이름이 감자인 것처럼, 붕어빵도 붕어가 없는데 붕어빵인 것처럼. 사랑니도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짜였네요; 하필 초록창에 치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상단에 이런 문구가 뜹니다.
주로 사춘기에 통증을 동반하며 자라기 때문에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는 유래로 사랑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 사랑니. 지금 자라기 시작하면 언제까지 자랄지, 또 언제 뽑아야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뽑긴 하겠죠.
그런데 사랑니를 뽑는다고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좀 아픕니다. 제가 첫사랑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그대로 저에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시간 지나면 너 나 잊을 수 있어.’
그렇게 말해놓고선 막상 사랑니를 뽑아버린다면 그 첫사랑까지 같이 뽑히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벌써 새벽 6시 비슷하게 되었네요.
사랑니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게 너무 짜증이 났는데, 오늘 밤 꿈을 꾸고 나니 조금 아픈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