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의 믿음(Miriam's Faith)
출애굽기 2:4: "그의 누이가 멀리 서서(תִּתְיַצֵּב, 티트야쩨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았다.“
미슈나, 소타 9b: "미리암이 모쉐를 한 시간 동안 기다렸으니, '그의 누이가 멀리 서서'라고 기록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녀를 일주일 동안 기다렸으니, '백성은 미리암이 들어올 때까지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된 바와 같다.“
모쉐가 태어난 후, 그의 어머니 요케벳(Yocheved)는 모든 남자 아기를 죽이려는 이집트인들로부터 그를 3개월 동안 숨겼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그를 숨길 수 없게 되어, 그녀는 그를 바구니에 넣어 나일 강에 띄웠습니다. 토라는 이어서 모쉐의 누이 미리암이 모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려고 나일 강가에 서 있었다고 전합니다.
게마라(Gemara)에 따르면, 그녀는 이 행동으로 인해 수년 후 모쉐를 비방한 죄로 쪼라아트(צרעת, tsoraat: 현재는 사라진 질병)에 걸려 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7일간 격리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행진을 멈추고 그녀를 위해 7일을 기다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는 그녀가 모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본 것에 대한 '보응의 법칙'에 따른 보상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당연히 드는 의문은, 그녀가 모쉐를 기다린 행위가 왜 그렇게 칭송받을 만한 행동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녀는 단순히 모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호기심이나 걱정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그 기다림이 왜 그렇게 위대해서, 그 공로로 온 민족이 광야에서 그녀를 일주일 동안 기다려야 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마라((Gemara)에 묘사된 이 순간의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리암의 아버지 아므람(Amram)은 유대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파라오가 모든 남자 아기를 나일강에 던지라는 칙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죽임을 당할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여 아내 요케벳와 이혼했습니다. 다른 백성들도 그의 예를 따라 각자 아내와 이혼했습니다.
미리암은 아버지에게 그의 결정이 파라오의 칙령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습니다. 파라오의 칙령은 남자 아이들만을 겨냥한 반면, 아므람의 행동은 여자 아이들의 출생마저 막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암람은 딸의 조언을 듣고 공개적인 의식으로 요케베드와 재혼했습니다. 이는 모두가 그를 본받아 이혼했던 아내들과 재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케베드는 곧 임신했고, 모쉐가 태어났을 때 집안이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므람은 미리암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네 예언이 이루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쉐가 바구니에 담겨 나일강에 던져졌을 때, 아므람은 미리암의 이마를 때리며 "자, 이제 네 '위대한 예언'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 근거하여, 랍비 이싸하르 프란드(Yissachar Frand)는 미리암이 나중에 받은 상이 단순히 나일 강가에 서 있었던 것 때문이 아니라, 상황이 완전히 절망적으로 보일 때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אֱמוּנָה, 에무나)을 지키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희망을 유지한 것이 미래의 상을 받는 열쇠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즈비처(Izhbitzer) 레베는 희망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생각을 전합니다. 법에 따르면, 누군가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을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면(יאוש, 예우쉬), 그 물건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소유할 권리가 생깁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발견자는 그것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비처 레베는 사람의 희망이 그 물건과 자신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라고 설명합니다. 소유권을 잃어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오직 희망만이 여전히 그 물건과 자신을 묶어줍니다.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 잃어버린 물건과의 모든 연결이 끊어지므로 발견자가 그것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제비처 레베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이토록 파괴적인 이유라고 덧붙입니다.
프랜드(Frand) 랍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유지하는 한, 위기 속에는 잠재적인 치유나 잠재적인 구원, 잠재적인 구원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구원이 실현되는 것을 볼 기회를 가지려면 희망을 유지해야 합니다. 미리암이 희망을 포기했다면, 유대 민족의 미래 구원에 대한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졌을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녀의 믿음의 행동이 그토록 중요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미리암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완고한 태도가 모쉐의 생존으로 이어진 사건의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파라오의 딸이 강에서 모쉐를 건져 올렸을 때, 그녀는 이방인 여인들에게 모쉐를 젖먹이려 했으나 모쉐는 그들의 젖을 마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Shemos, 2:7, Rashi). 미리암이 계속 지켜보던 중 모쉐가 젖을 마시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는 파라오의 딸에게 다가가 유대인 여인이 모쉐를 젖먹일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동의하자, 미리암은 모쉐의 친어머니인 요케벳를 데려와 모쉐를 돌보게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미리암의 확고한 의지가 모쉐의 생존과 양육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리암의 모범은 우리에게 에무나(אֱמוּנָה, 믿음)를 굳건히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이는 일반적인 의미와 개인적인 차원 모두에 적용됩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구원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이는 단순히 칭찬받을 만한 태도가 아닙니다. 람밤(마이모니데스)이 이를 열세 가지 신앙 원칙 중 하나로 포함시킨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게마라(Gemara)는 내세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받을 질문 중 하나가 '찌피타 레예슈아(צִפִּיתָ לִישׁוּעָה )' 즉, '구원을 기대했는가?'라고 말합니다. 스막(Smak)은 구원을 기대하라는 명시적 계명이 없는데도 왜 이것이 중요한지 묻습니다. 그는 이것이 에무나(אֱמוּנָה, 믿음) 계명의 일부라고 설명합니다. 그 계명에는 세상이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그 목적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적용됩니다. 사람이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미리암과 모쉐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가장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By Rabbi Yehonasan Ge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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