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의 시험
이스라엘 백성은 마지막 재앙으로 파라오가 굴복하자 이집트를 떠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자 파라오는 마음을 바꾸어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추격하기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갈대 바다에 이르지만, 하나님께서 물을 갈라지게 하셔서 마른 땅으로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물이 다시 모여 추격하던 이집트 군대를 덮쳐 버렸습니다. 모쉐는 "바다의 노래"를 부르고, 미리암은 여인들을 이끌고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광야의 환경에 불만을 품고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와 물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파라샤의 끝부분에는 아말렉(Amalek)민족과의 극적인 전투가 펼쳐집니다.
하나님이 모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하늘에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매일 먹을 양을 거두리라. 그리하여 내가 그들을 시험하여 내 율법을 따를지, 따르지 않을지 보리라” (출애굽기 16:5).
히브리 민족은 광야로 탈출하여 자유를 얻었지만, 광야에는 식량도 물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불평하며 심지어 이집트 노예 시절에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난을 모쉐 탓으로 돌리지만, 모쉐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낸 것은 하나님이셨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양식, 즉 "만나"를 각 사람의 필요만큼 공급해 주시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금요일에는 두 배로 주시어 사람들이 안식일에 모일 필요가 없도록 하셨습니다. 만나는 매일 내릴 것이며, 남은 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므로 사람들은 매일 자기 몫을 받고, 그것을 쌓아두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5세기 세파르딕(Sephardic) 유대인 토라 주석가인 랍비 이쯔하크 아바르바넬(Yitzhak Abarvanel) 은 이 구절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누군가를 "시험받고 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려운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토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는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쯔학을 제물로 데려오라고 "시험"하신 경우입니다.
하지만 아바르바넬이 지적했듯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을 제공하신 것은 어려운 과제라기보다는 자비로운 사랑의 표현처럼 보입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간단히 구할 수 있는 음식과 물을 누군가에게 제공하는 것이 무슨 시험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의 표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종의 시험이나 도전을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라시(Rashi)는 "내 율법을 따르라"는 구절이 만나에 관한 지시에 특별히 적용된다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라시(Rashi)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시험은 만나를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계명과 안식일에 만나를 줍지 말라는 계명을 지킬 것인지 여부입니다. (출애굽기 16:19-27 참조)
다른 주석가들은 이 시험을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합니다. 이븐 에즈라(Ibn Ezra, 11세기 스페인)는 이 시험을 본문 앞부분, 즉 만나를 매일 모아야 한다는 말씀에 비추어 이해합니다. 이븐 에즈라는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통해 “그들이 매일 나를 의지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람반 (나흐마니데스, Nachmanides)은 이 구절에 대한 긴 주석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광야, 즉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광야"에 있었는데, 낯선 조상신에 의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그곳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신은 매일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본 적 없는 이상한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백성들은 이 보이지 않는 신이 정말로 매일 음식을 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하루씩만 음식을 받았습니다. 람반(Ramban)은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하루치 식량밖에 없더라도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가 시험대라고 썼습니다.
철학적으로 볼 때, 라시(Rashi)는 이 시험을 순종의 시험으로 보는 반면, 람반(Ramban)은 믿음의 시험으로 봅니다. 그러나 어느 쪽 해석이든 아바르바넬(Abarvanel)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같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식을 제공하는 것은 자비로운 행위이지만, 이것 또한 시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한 것은 인내나 희생의 시험이 아니라, 풍족한 환경 속에서 그들의 인격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먹고 살기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난 그들은 영적으로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나태해질 것인가?
이 도전에 대한 다양한 측면은 여러 주석가들의 해석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븐 에즈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시험은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실천하고, 우리가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경이로움에 깨어 있는 연습을 하는 도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가진 것에 감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의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고 모든 생명의 근원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람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때 영적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회로와 낯선 지형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성한 길을 따를 것인가? 우리는 절대적인 예측 가능성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믿음에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 다른 주석가인 히즈쿠니(Hizkuni, 프랑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가 시간을 갖게 된 만큼 그 시간을 토라 공부에 활용할지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을 인용합니다.
마지막으로 라시의 해석으로 돌아가면, 선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만나(manna)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경외와 존중으로 대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받은 선물에 경외심을 가지고 감사하며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가? 만나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생계의 상징이었다면, 우리는 자선과 연민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것의 일부를 돌려드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경이로움을 키우고, 감사하는 마음을 실천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매일매일의 시험입니다.
By Rabbi Neal J. Loevinger
Provided by KOLEL–The Adult Centre for Liberal Jewish Learning, which is affiliated with Canada’s Reform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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