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직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기록.
저는 지방에 거주하는 36살 현장직 노동자입니다.
전기 분야를 중심으로 여러 현장을 다니며 일하고 있습니다.
25살에 전기 특례병 복무를 마친 뒤, 8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어머니 집에서 무기력하게 지냈고, 삶의 방향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2023년, 어머니가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제 삶의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자.”
워크넷에서 외국인·고령자 우대라고 적힌 음식물 처리기 회사 전기 파트에 취직했습니다.
기본 시급을 받으며 일했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쉬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려고 물도 잘 마시지 않았고,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나도 계속 일했습니다.
시운전 중 고전압 스파크가 눈앞에서 터진 적도 있습니다.
차단기를 내리지 않은 채 메인선을 풀다가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살아 있지만, 그날 이후 저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현장은 늘 목숨 가까이에 있는 곳이라는 걸.
그럼에도 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러 현장에서 들은 말이 있습니다.
“성실하다.”
“인성이 좋다.”
저는 그 말이 자랑스럽습니다.
‘노가다’라는 말
사람들은 현장직을 쉽게 “노가다”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일본어 *도카타(土方)*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지금은 단순히 힘쓰는 사람, 무식한 사람, 막일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처럼 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단순히 삽질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은 도시의 뼈대가 됩니다.
고속도로, 빌딩, 공장, 발전소, 케이블, 송전탑, 변전소.
사람들이 당연하게 쓰는 모든 기반 시설이 우리의 손을 거칩니다.
밤이 되면 지구는 어둡습니다.
우주에서 보면 불빛이 있는 곳만 인간이 사는 곳입니다.
그 불빛을 켜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무게.
여름에는 땀에 젖어 담배 불도 붙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귀가 떨어질 듯한 추위 속에서 손이 얼어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루를 버티고, 또 다음 날을 나갑니다.
작업을 마치고 공장 문을 나서며
땀으로 젖은 작업복을 털고
차가운 생수 한 병을 들이킬 때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겨울 현장에서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하얀 입김을 불며 동료와 나누는 몇 마디 말 속에
우리는 분명한 행복을 느낍니다.
이건 아무 일이나 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대한민국의 산업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름이 기록된 분들 말고도, 이름 없이 희생된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휴게소 위령비 앞에서 묵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들이 흘린 피와 땀 위를 우리가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함부로 이 일을 가볍게 여기지 못합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는 외쳤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지금 현재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노가다가 아니다.”
우리는 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밝히는 불빛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름 없는 부품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기술자이자 노동자입니다.
바라는 단 하나
거창한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 대신
정당한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랍니다.
노가다가 아니라
현장직, 기술자, 노동자.
우리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이 글을 읽은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앞으로 “노가다”라는 표현 대신 다른 말을 써 준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