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사람을 망가뜨린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상처가 반드시 사람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그 상처 덕분에 나는 언어를 선택했고,
설명 대신 기록을 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초등학교 시절,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전교에 이름이 퍼진 아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비둘기 살인마.”
그 소문은
내가 학교에 나오지 못한 사이에 만들어졌다.
코로나에 걸려 약 2주 정도 학교를 쉬었고,
그 짧은 공백 동안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학교에 다시 갔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나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전교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우리 집 베란다에 비둘기가 알을 낳았다.
두 마리의 어린 비둘기가 태어났지만
어미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나는 과자를 조금 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비둘기를 죽인 적이 없다.
오히려 살리려고 애썼다.
날이 추워져서 그대로 둘 수 없었고
그래서 집 안으로 데려와 돌봤다.
가끔 햇볕을 쬐게 하려고
밖에 나간 적은 있지만
그게 소문의 씨앗이 될 줄은 몰랐다.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아이가
비둘기를 집에서 키우는 건 불법이라며
당장 풀어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신고’라는 말은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비둘기를 밖에 내놓았다.
하지만 날은 너무 추웠고
비둘기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결국 나는 생각했다.
신고를 당하더라도
일단 살리고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집 안으로 데려왔다.
그 이후로 비둘기들은 잘 지냈다.
그러다 환기를 하려고
베란다 문을 잠시 열어둔 사이
두 마리가 모두 날아갔다.
며칠 뒤,
아파트 차도에서
어린 비둘기 한 마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비둘기는
내가 돌보던 비둘기들보다
훨씬 더 작은 개체였다.
더 어린 비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차이를 보지 않았다.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었다.
“쟤가 비둘기 죽였대.”
“집에서 키우다가 버렸다던데.”
그 소문은
졸업할 때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같은 학년뿐 아니라
후배들까지도
나를 “비둘기 살인마”라고 불렀다.
그전까지의 나는
조용히 인기 있는 아이였다.
특히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전학 와
잠깐이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3학년 때는 코로나로 학교를 거의 못 갔다.
4학년 때는 그럭저럭 지냈다.
그리고 5학년,
그 소문 하나로
모든 관계가 무너졌다.
나는 전교 왕따가 되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미 정해진 이미지 앞에서는
말이 힘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점점 침묵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나를 괴롭히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몇몇 후배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나를
소문으로 보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
곤충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거미, 사마귀 같은
보통 여자아이들이 꺼려할 만한 것들.
나와 함께 놀아주던 아이들은
모두 남자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려고 했다.
그 작은 관계들이
나를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이 이야기는 훗날
김유정 제6회 푸른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내 소설 〈다시, 나로 서다〉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썼다.
그 침묵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은
나를 작가로 만들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나로 서다》라는 제목처럼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다시 나로 선다.
소문이 아닌 이름으로,
침묵이 아닌 문장으로
나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멈추지 않는 한
나의 ‘작가’라는 꿈 역시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글은 나를 구해 주었다.
이제 나는 그 글로
누군가에게 조용한 손을 내밀고 싶다.
말하지 못해 혼자가 된 아이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주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시, 나로 서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가 다시,
자신으로 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