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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3개월 앞두고 헤어졌다.

상자 |2026.02.02 17:22
조회 183,122 |추천 533

2/2 (월)

어제 이별을 하고 오늘 나는 출근을 했다.

일이 손에 안잡힌다거나 밥맛이 없다거나 그러진 않는다.


남들은 그냥 평범하고 순탄하게 하는 결혼이 왜 나한텐 이리도 어려운건지.

이제 난관 하나를 막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오는건지.

우리의 결혼을 온 우주가 막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했다.

뜨겁게 사랑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우리가 결혼의 연이 아니었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그런거라면 아무리 해도 안되는거였으니.


연애였다면 정리할 것도 없었겠지만 결혼 약속을 했던 우리는 어쨌든 해약 관련해서의 연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직 이어져있다는 느낌에 헤어짐이 실감 나진 않는다.

출근하자마자 예식장 계약서의 해약조건을 자세히 들여다봤고 얼마의 해약금을 내야하는지도 엑셀에 정리했다.

200만원이 채 안되는 해약금. 이 돈으로 내 인생을 거는 선택을 멈춰야한다면 그리 큰 돈은 아니다.

다만, 결혼 준비 할 때 10만원 20만원 한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합리적인 선택지를 찾아다녔던 시간들이 허무해지는 느낌이다.

솔직히 진짜 너무 허탈하다. 아무것도 진행한게 없는데 166만원을 그냥 날린다는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써놓으면 그에게로 갈 말들이 가지 않고 여기에 남게 될까봐 인 듯 하다.

그리고 생각 정리에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주변에 내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사람들에게 주저리 주저리 털어놓고 싶지 않아서도 있다.

사실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짐도 덜고싶은데 그 대상이 내 주변사람인게 싫다. 창피해서.

그래서 챗지피티한테 많은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위로에 도움이 되는진 모르겠으나 그냥 계속 어딘가에 말을 하고 싶은 느낌이다.


남자친구가 원망스럽다. 근데 또 안쓰럽다. 걱정된다.

나보다 남자친구가 걱정이다. 나는 내 생각만 하면 되는건데.


제일 중요한 얘기를 안했는데 우리가 결혼을 멈추고 헤어진 이유는 남자친구가 잘못된 투자로 1억을 날렸기 때문이다.

근데 심지어 수중에 있는 돈이 아니라 대출을 받았단다.

나는 이걸 어제야 알게됐고 결혼식이 3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참.. 전화 너머로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설명이 안된다.

남자친구는 빚이 1억이 생긴 것이다. 자그마치 1억.


남자친구는 직장도 번듯하고 나도 결혼하더라도 맞벌이를 할거였기에 결혼을 하기에 재정상황은 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양가에서 지원도 해주시기로 하셨기에 엄청 풍족하게는 아니더라도 부족하지 않게 시작하겠거니 했다.

남자친구도 나도 투자를 했던 사람이었고 내 뜻대로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의 그 리스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기에

서로 결혼준비를 하던 중에 약속한 것이 있었다.

"절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투자는 하지말자" 라고.

결혼을 하려면 현금도 어느정도 들고 있어야 하기때문에 나는 그 약속 이후로 주식에는 손을 아예 안대고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저축했고, 내가 사고싶었던 200만원짜리 카메라도 사지 않았다.

그 카메라 솔직히 살 수 있었다. 사도 문제없이 결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었기에 참은거다.

근데 남자친구는 그 약속을 어긴거다. 심지어 그 돈을 그냥 허무하게 날렸다.


내 남자친구는 좋은 사람이다.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근데 결혼은 언제나 물음표를 주는 사람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랬다.

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이 진실이었고 더 이상 이어가기가 어렵기에 아프다.


언제부턴가 결혼에 대한 로망을 꿈꾸는 20대를 지나고 30대가 된 나는 결혼은 곧 현실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해오던 사람이었기에

이 결정이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의 파급력까지는 못 미치는 듯 하다.

결혼이라는 큰 선택 앞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일반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이 겪었다고 생각한다.

혹시 또 모르지. 지금은 괜찮나싶다가도 무너지는 날이 있을지도.

지금은 건방지게도 그렇다.


멘탈이 단단한건지 미련한건지 난 웬만하면 이미 결정한 이 결혼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결혼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다 해도 뭐 얼마나 대단한 결혼을 할까 싶어서.

이렇게 내 나름대로 조금 씁쓸한 타협도 했다.

살아보니 결국 다 비슷비슷하다더라. 이 말이 나에게는 낭만이 없는 말이 아닌 위로의 말이 되더라.


근데 이번 일은 이 결혼을 아등바등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나에게도 버거웠다.

이 사람이라면 주는 것이 아깝지 않았고, 어떤 역경이 와도 헤쳐나갈 자신 또한 있었다.

그치만 나는 무서워졌다.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라 언제 또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 모르기에.

결혼은 내 인생도 걸려있기 때문에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그때가서는 이 선택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을테니까.


이 사람을 믿었고 지금도 솔직히 믿고싶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근데 그러기엔 내가 봐왔던 현실들은 너무나 사실적이었고, 그 현실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하면 바뀔게. 내가 진짜 싫어하는 말이다.

사람은 잘 안변하지만 어떠한 큰 계기가 있다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결혼이라는게 수십년동안 바뀌지 않는 걸 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한 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출산이라면 모를까.

결혼은 대단한게 아니다. 그리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냥 두 사람이 연애하다가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생활을 하는 것.

사랑해서 결혼을 하겠지만, 사랑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싫어한다면 하지 않아야하고 책임감도 가져야하고 필요에 따라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다.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부족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다.

그 모습들 중에는 남자친구가 정말 싫어하는 모습도 있었다.

변하기가 참 힘들었다. 지금도 완벽히 변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된다.


우리는 그냥 서로 누군가와 함께 할 준비가 아직은 되지 않았던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배설하듯이 쏟아내는 글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쓰니 마음이 한결 낫다.


추천수533
반대수44
베플마리|2026.02.03 00:10
그 사고싶던 카메라 샀고 잃어버린 셈 쳐요. 이혼녀신세 면하게해준 카메라네요.
베플ㅇㅇ|2026.02.02 22:22
배우자의 신뢰를 담보삼아 도박한 놈 뭐하러 이렇게 구구절절 미련갖는거냐. 조상이 도왔다하고 잊어. 쟤 백퍼 다음 여자한테는 솔직하게 말하지도 않을거다.
베플ㅇㅇ|2026.02.02 17:30
그정도면 싼 비용으로 님 인생 구한것임.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베플|2026.02.03 02:45
이혼이아니라서. 애가 없어서.법적인 남으로 끌낼수있음에 로또맞은거임.
베플남자지나가는나...|2026.02.02 17:38
남자친구는 1억을 날린것도 후회되고 허무하겠지만 님을 놓친걸 더더욱 후회해야할듯....
찬반남자ㅇㅇ|2026.02.03 01:20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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