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남들보다 측은지심이 많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병적으로 많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제대로 칭찬받지 못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감각,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나를 살게 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내 것을 내어주었다.
시간도, 돈도, 감정도.
이제 곧 오십이 된다.
인생의 반환점을 한참 돌아선 나이에 문득 멈춰 서서 돌아보니,
정작 나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려받을 재산도 없다.
든든한 노후 자금도 없다.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오며 번듯했던 직장을 정리했고,
산업단지 내 대기업 계열사 사무직으로 10년을 일했지만 월급은 3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한때는 성과급으로 연봉을 메웠지만, 그것마저 끊긴 지 5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어디에 나를 썼을까.
조카를 사랑했다.
내 아이만큼 예뻤다.
아낌없이 퍼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닫는다.
그 아이는 자라 자신의 인생을 산다.
고모나 이모의 노후를 책임질 의무도, 이유도 없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구조해서 입양을 보냈다.
한 생명을 살린다는 뿌듯함은 컸다.
하지만 이 일에는 끝이 없다.
한 번 시작하면 기다리는 눈빛이 마음을 붙잡는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다.
책임감은 미덕이 아니라 족쇄가 되기도 한다.
나는 조카와 동물구조, 길고양이 돌봄에 수억 원을 썼다.
누군가는 고개를 저을 것이고, 누군가는 대단하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모든 선택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희생은 때로 중독이 된다.
인정받고 싶어 시작했지만,
끝내 나를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타인을 돕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조카는 사랑하되, 당신의 노후 자금까지 내어주지 말라고.
동물을 아끼되, 당신의 삶이 무너질 만큼 끌려들어가지 말라고.
인생은 길고, 책임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이 글은 후회라기보다 고백이다.
그리고 조금 늦은 깨달음이다.
희생은 아름답지만,
그 희생이 나를 텅 비게 만든다면
그건 미덕이 아니라 자기 방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