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번 죄를 지어도 77번 용서하라.
까니
|2026.02.15 07:46
조회 45 |추천 0
77번 죄를 지어도 77번 용서하라.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오 18장 21,22절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무한대의 용서를 하라는 이야기 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일반적인 죄들을 일흔일곱번까지 용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77번까지라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없을까요?
성직자가 일부러 죄를 짓는다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에서도
이야기 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정의와 공정의 하느님이십니다" 라는 성경구절이
이 모두다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한번 이 예외의 경우가 생길 수 있는,
특별한 집단인 종교계에 이를 적용해 볼까요.
그럼, 성직자는 죄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무적이 되기 때문에,
심각하게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수없이 높다는 이 종교계는
이 "77번 죄를 지어도 77번 용서하라."는 성경구절의 해석은,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성직자는 죄에 대하여서는
무적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직자는 그와동시에 죄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천하무적이 됩니다.
이처럼, 이를 곧이곧대로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개신교식 해석인 것입니다.
이는,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악용하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인 경우들에 대한 말씀일 것 입니다.
그러나, 성직자라는 사람들마저 이 성경구절을
자칫하면 악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극소수이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기를,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이기도 한다는게 사실이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에 가본 자들의 경험담에는
절대 없어야하는 주교도 있다는 사실이 이를
크게 반증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77번이나 악용할 수 있는 성직자의 특별한 경우에는,
죄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보다 천하무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또 묻습니다.
이게 하느님의 호칭인,
정의와 공정의 하느님이십니까.
그래서 이는, 성경을 잘 알고 있지 않기에,
심각하게 악용할 소지는 없는
곧, 일반적인 사람들인 경우에 대한
한정된 말씀일 것 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성직자는 죄에 대하여서는 무적이란 말씀입니까.
죄를 일부러 짓고, 고해성사를 보고, 또 죄를 일부러 짓고 또 일부러 고해성사를 보고....
지금 이 행위를 하려 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는 것이,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알고 계시고,
또 보고 있다는 당신이 믿는 하느님은
신이란 존재이시며, 하필 그것도 신중에서 가장 세다고 드러난
하느님의 호칭이 적용되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신 중의 신 곧, 전세계의 1/2이 하느님의 신자수다라는 사실이
하느님은 절대자이시다를 전혀 부끄럽게 하지 않는,
오히려 객관적으로 봐도 신 중의 신이라는 가장 센 신 위치인
절대자의 자리에서 우리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게 정의와 공정의 하느님이시겠습니까.
이게 가능한 사실이라면,
신 중의 신이라는 호칭을 반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무한반복이 먹히겠습니까?
그런데, 개신교식으로 매우 주관적으로 생각하더니,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정의와 공정으로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심판이 되겠습니까?
또, 정의와 공정으로 바라보니, 이번 성경구절도
성경자체의 해석이 또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개신교식으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그 각자의 해석으로인한 각자만의 개성들에,
전세계적으로 47300여개에 교파라는,
개털같은 갈라짐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분열의 개신교,
그 자체를 보시기 좋으실까요.
성직자도 사람이기에, 만약 악용할 여지를 생각하고 있다면
누구든지 어떻게든 실행하지는 마십시오.
자신이 왜 지옥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지금 지옥에 있다는 이상한 결말을 맺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