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개신교는 방언이 두번 적용이 되는, 경험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까니
|2026.02.16 05:42
조회 39 |추천 0
개신교는 천주교 성당에서, 방언이 두번 적용되는 신비를 느껴 보십시요.
무엇으로 방언이 두번 적용이 되는지는 알려면, 어떻게 할지는 개신교에서 (각자?) 골몰히 생각하고 실행하시길 바랍니다.
이게, 예수님의 힘입니다.
이게, 성체의 힘입니다.
성당에서는, 성령에 두번 휩싸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성체는, 방언이 두번 적용되게 하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잘 모르겠습니까?
성당 밖에서 이미 한번을 개신교의 중보기도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으로 바치지 않았습니까. 자, 카운트를 세겠습니다.
방언이 한번.
이 한번은, 개신교의 중보기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성당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성당 안이라고 무조건 성령을 적용이 되는것은 아닙니다.
성당 안에 모든 장소가 성령이 두번 적용이 되는 장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두번 적용이 되는 장소가 궁금하십니까?
그럼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성체가 모셔져 있는 감실이 제단 근처에 있을 것이며, 분명히 한 공간내에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 차단된 벽이나, 차단된 문이 없는 공간이 어떤 완전히 방해되지 않은채 이어져있기에, 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차단된 벽이나 차단된 문이 있다면, 있어서 어떠한 동물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다면, 완전히 차단이 되었기에, 그 공간은 한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분리가 됩니다.
감실이 있고 그 안에 성체가 있어서, 성당 밖의 일반적인 성령과 달리 또 다른 성령이 흐르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방언을 한번 더, 해보십시오.
그게 예수님이 계시다면, 성령기도도 역시 두번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감실안에 성체가 있고, 그 감실이 한 공간으로 다 이어져있다면, 그 장소는 예수님이신 성체로인한 또 다른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성령의 힘 때문에 다시 성령을 두번 적용이 받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성당 안에서 감실이 있는 장소에 가서, 또 그 감실안에 성체가 있다면, 한번 더 방언을 바치십시요.
이제 당신은, 성령이 그리고 방언이, 두번 적용이 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예수님의 성체,
정리해봅니다.
첫번째는 개신교는 예수님이라고 믿고있는 그 흔한 성령이자 세상에 다 존재하는 그 흔한 성령.
두번째는, 그래서 천주교에도 존재하는 감실이 있는 성당안에 성체로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성령.
개신교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성령을 접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아예 없다는 그 하나의 이유.
이유는, 물과 피가 없어서.
그들은 있다고, 개신교는 말하겠지만
그들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것이기에,
이는 아무쓸데없는 가장 힘없는 주장,심하게 말하자면
거짓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증거가 없는 쓸데없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지식층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곧, 증거가 없는 아무데서나 퍼온 정체모를 물과 피이기에,
증거가 없음은 곧 이런 대접을 받게 되는 게
냉정하지만 현실입니다.
신이 세운 종교라면 혹시나 모르더라도
인간이 세운 종교에서 아무 물과피를 예수님으로 내세운들
하더라도, 본질은 되묻습니다.
그것은, 그냥 아무것이나 물과 피로 여기면 다
예수님이 되는것이랑 똑같다.
인간이 세운 종교가 내세운 아무 물과 피라도 예수님이 될수 있는 것입니까?
혹시나 신이 세운 종교라면 그럴수도 있지 하고 여겨도,
인간이 세운 종교인 개신교는 그러한 마지막 희망마저도
개신교는 인간이 세웠기에, 일말의 희망도 아예
박살이 나버린 상태 그대로 입니다.
개신교는 성체가 아니라, 이벤트 빵조각들이기에,
객관적인 천주교에서는 아니라고 할 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성당에서만 오직 만날수 있다는
예수님의 새로운 성령을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새로운 성령, 예수님
성당에서는 흔한 성령이 아닌, 새로운 성령이신
예수님이 흐른다.
그러나, 천주교안의 성당 감실에 있는 예수님으로인해,
곧 감실이 포함된 하나의 공간안에는
예수님도 하느님이시므로, 새로운 성령이 다시 또 한번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개신교는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성당에는 새로운 성령이 또 있다니?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당에서 방언기도 후, 성당 안에서 신앙활동을 하면,
성당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인한 성당안에 계시는 새로운 성령과
또,그 예수님을 찬미드리는 그 모든 신앙생활을 한 그 효과가
곧, 그 힘이 방언기도내용에 전달되서,
성당에서 드린 그 방언기도가
비로서 그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당안에서 기도드린 방언기도의 내용이,
성당 안에서 예수님을 찬미하는 그 모든 행위로인해
그 방언기도의 힘이 되며 또 기도힘이 생기는 동시에,
개신교는 못느낀 새로운 성령님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성령님은
성체로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감실안에 실제로 계시는
성체인 예수님으로인한 것입니다.
밖에서의 개신교가 흔한 성령에 의해, 그 가장 흔한 것들에만
의지해 왔다면, 이 경험은 개신교는 할수 없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일상에서 개신교의 방언기도가 적용이 되는것처럼,
성당에서 다시 예수님의 새로운 성령으로인해
성당안에서는 새롭게 다시 방언이 또 적용이 됩니다.
그 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감실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실에 성체가 있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 조건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당에는 밖에서의 그 흔한 거대한 지구만한 크기의
일명, 개신교의 그 흔한 성령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성령이 예수님으로인해,
성당안에 존재하고 또 흐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방언도 이 공간에서 또 두번 방언기도를 또 하게 되면,
흔한 성령과 예수님으로인해 성령이 또 존재하기에 총 합쳐서
두번 적용이 된다는 신비를 겪으실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개신교는 체험할수 없는, 이 특별한 체험은
개신교는 예수님이 없고, 천주교 성당에서는 감실안에
예수님께서 진짜 성체로 계시기에
비로서 비롯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예수님의 성령은, 불행히도 개신교는
인간이 세웠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개신교는 절대 알수 없습니다.
이 두가지 성령이, 서로가 겹치게 되니,
성당안에 감실이 있는 곳에서는,
새로운 성령이 또 다시 흐르기에
방언도 두번 겹치게 됩니다.
단, 감실안에 성체가 있을때만 나타나는 현상이 되겠습니다.
"그 흔한 성령"과 "예수님의 새로운 성령과의 한 공간"이
성당 안에서는 또 겹치게 되니, 방언도 두번 겹치는 일인데,
이 신비를 개신교는 직접 천주교의 성당에서만 가셔야만 비로서 방언이 두번 겹치는 것이 어떠것을 말하는지 직접 성당에
가 보아야만 겪어보실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개신교의 교회에도 있을까요?
없습니다.
개신교는 예수님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으로 모시는 성체가,
감실안에 있지만, 개신교는 감실도 없고,
실체변화가 일어난 밀가루떡인 성체도 없습니다.
실체변화에 대하여
개신교는 틀렸고, 천주교는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