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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빠는 아빠가 되고 싶었단다

도리 |2026.03.09 09:02
조회 2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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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내가... 아빠?

"오빠? 왜 이렇게 위험하게 운전해? 아빠 된다니까 좋아?"


순간 멈칫했어. 그리곤 생각했지.


'내가... 아빠가 된다고...?'


사실말이야 아빠는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냥 막연하게  네 엄마가 임신을 했고, 얼마 후에

아기가 나온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지.

내가 아빠가 된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사는데

하루 만에 호칭이 바뀌고 내 위치가, 내 무게가 바뀐다?


글쎄...


"이제 오니? 벌써 미진이 애 낳고 회복실 들어갔는데"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너희들 외할머니는, 멀리서 오느라

늦게 도착한 아빠가 맘에 들지 않는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씀하시면서도 서운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어.


"전화받자마자 온 건데..."

"그러니까 같이 살면 좀 좋으니? 앞으로 애는 어떻게들

키우려고 아휴... 내가 니들이 걱정돼서..."


외할머니는 아빠가 엄마랑 연애할 때부터 그런 말씀을 줄곧

하시곤 했어.


'나는 우리 딸 옆에 두고 항상 봐야 되는데?'


두 딸 중 막내라 그런지 엄마를 향한 외할머니의 애착은

너무 강했어. 매일 보고 싶으니 만약 결혼 하더라도

근처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었지.


'네! 결혼하면 옆집으로 이사 오겠습니다!'

'너희들 결혼할 때 맞춰서 옆집에서 집 비워준다디?'


왜 저렇게 얘기했냐고?


... 사실 저렇게 애기 안 하면 연애조차 허락 안 해주실 것 같았어.

게다가 우리 집도 부모님 간섭에 숨 막혀서 안 들어가는 판국에

처갓집 근처로 신혼집을 잡는다? 솔직히 자신 없었거든.


뭐 사기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데. 저 이유 때문에 헤어지면

너무 황당하고 슬프지 않겠니?...


"저... 미진이는..."

"회복실.. 아니 그전에 아기부터 봐야지? 너 오면 보겠다고

나도 아직 못 봤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철이 없을까?"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외할머니에 대해서 말이야.

항상 예뻐해 주시고, 해달라고 하면 그게 뭐가 됐던 다해주시던.

어쩌면 아빠 엄마보다 너희들로 인해 더 울고 웃으시던

외할머니로 기억하고 있니?


맞아. 외할머니는 참 좋으신 분이었어.

하지만 그때 아빠눈에 외할머니는 말야.

마귀할멈 그 자체였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말야. 그 당시 외할머니도 아빠가 참 마음에

안 들었을 거야.


외할머니에게 처음 임신사실을 알리던 날.


그날은 무거운 마음과 다르게 해가 짱짱하고 바람도 적당한

어디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씨였어.


다만,


내차가 향하고 있던 건 외할머니 댁이었지만 말이지.


"도리야... 엄마가 화내면 어떡하지?"

"화내시겠지... 혼전 임신인데..."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중이어서 가족들도 다 알고

왕래도 잦았던 우리였지만, 혼전 임신을 혼수라고 말하며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지금과는 다르게 그 당시 사회의

시선은 썩 좋진 않았거든.


"막 때리진 않겠지? 나 울 것 같은데..."

"에이 설마... 내가 다 말씀드릴게 너무 걱정하지 마"


호기롭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사실 아빠도 두렵고 무서워서

운전대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


외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착잡한 마음에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먼저 차에서 내렸어.


"담배... 지금 피게...?"

"응 이거 하나만 피고 올라가자. 어머니 집에 계시지?"


"몰라? 전화 안 해봤는데?"

"... 그럼 전화도 안 하고 온 거야? 아무도 안 계시면?"


"나한테 뭐라 하지 마! 나 지금 슬프단 말이야..."

"...."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툭치면 떨어질 것 같은 엄마의 눈을 보니

더 이상 뭐라 할 생각이 싹 사라져서 차문을 닫고

담배에 불을 붙였어.


'후우...'


겨울이라 추워진 날씨덕에 담배연기가 더욱 진하게 뿌려지고

이내 한숨까지 쏟아내니 머리가 욱신거리는 게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어.


'하아.. 도망가고 싶다..'


두 번째 연기를 내뿜고는 좀 더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지.


'올라가서 뭐라 하지? 죄송합니다? 믿어주세요?

에휴.. 너라면 너 같은 놈 믿겠냐..'


어느덧 다 타들어간 담배. 바닥에 비벼 끄고는 엄마한테

이제 올라가자고 얘기하려고 차문을 여는데


/치익.. 치이익.../


"악! 뭐야!"

"담배 놉! 엄마가 담배 싫어해!"


아빠가 차문을 열자마자 무슨 총 쏘는 여전사 마냥 아빠에게

방향제를 뿌려대는 엄마였어.


외할머니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그날따라 엘리베이터는 왜 그렇게 빨리 움직이던지.

심호흡 한번 했을 뿐인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있었어.


"도리야... 지금이라도 우리 돌아갈까?"


우리는 차마 벨은 누르지 못한 채 잠시 그대로 멈춰서

현관문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지.


'미진이 말대로 정말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놀러 가버릴까? 날씨도 좋은데... '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도피를 상상했지만. 그럴 순 없었어.

내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비겁한 사람이 되기 싫었고,

헤어지기는 더더욱 싫었거든.


/띵동/


아빠는 결국 심호흡을 하고 벨을 눌렀어.


1초.. 2초.. 3초..


"응? 집에 아무도 없는 거 아냐?"


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아빠는 한편으론 안심이 되더라.

다시 벨을 한번 더 누르려하는 그때였어.


"누구세요? 어머? 니들이 이 시간에 웬일이니?"

"어..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하다. 미진이 웬일이야? 이 시간에?"

"엄마.. 추워..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애기해 우리..."


외할머니는 그때 이미 눈치채셨는지도 몰라.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상태로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엄마의 모습에

외할머니는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는가 싶더니 다시 애써 웃으며 우리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어.


"밥은 먹었니? 시간이 애매하긴 하네? 요 앞에 짬뽕집 맛있는데

생겼는데 가볼까?"

"... 아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외할머니는 소파에 앉으시면서

말씀을 이어가셨지.


낮잠을 자다가 사람들 소리에 깬 건지. 그 당시 가족처럼 키우던

강아지 예삐가 무슨 일인가 싶어 안방에서 슬그머니 나오더니

아빠에게 다가오더라고.


"애는~ 주인한텐 안 가고? 그래도 몇 번 봤다고 네가 반가운가 보다."


그거 알지? 아빠는 어렸을 때 커다란 개한테 물린 적이 있어서

개를 별로 안 좋아해. 근데 그날만큼은 예삐가

너무 반가워서 끌어안고 계속 쓰다듬어 줬어.


왜냐고?


뭐라도 할게 필요했거든.

당장 임신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타이밍 잡기도 어렵고.

두근대는 마음을,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기엔 그만한 게

없더라고.


"네 아빠? 지금 일갔지? 평일 대낮에 불쑥 찾아와서는

아빠는 왜 찾아?"


서있는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없는 엄마,

말없이 강아지만 쓰다듬고 있는 아빠,

그런 우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계시는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시계를 한번 쓱 쳐다보더니 우리에게 물었어.


"그나저나 왜 온 거야? 연락도 없이. 결혼 얘기면 아직 안되는데?

애 언니부터 보내야 되는데?"


외할머니가 엄마를 보며 묻자, 엄마 눈에 고여있던 눈물은

이내 흘러내리기 시작했어.


"엄마.. 미안해.."

"너 우니? 애 니가 말해봐라 애 왜 이러니?"


더 이상 피하거나 미룰 수 없었어.

어떡하지? 뭘 어떡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학습한 대로 일단 무릎부터 꿇었어.


"... 무릎은 왜 꿇고 앉어? 응? 미진아? 애 도리야?"

"엄마... 미안해..."


"아니 이년아 그러니까 뭐가 미안한지 말을... 응? 애 도리야?

얘기들을 해야 알지!"


미안하단 말을 반복하며 울고 있는 엄마와, 외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빠를

계속 번갈아가면서 쳐다보던 외할머니는 갑자기 한숨을 팍 쉬더니


"니들... 사고 쳤니?"


그것만은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 듯,

조용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에 엄마는 조금 더 소리 내 울기

시작했어.


"엄마 미안해.. 흐앙... 나 임신했어..."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것들이... 미쳤나..."


죄송하다고 말하며 외할머니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아빠는 본 것 같아. 외할머니의 얼굴은 화난 표정이 아니었어.


뭔가 이어져있던 끈이 탁 하고 끊긴 듯 할말을 잃어버린,

눈빛은 멍하면서도 앙다문 입술과 살짝살짝 떨리는 손은

외할머니가 느끼고 있는 배신감, 허탈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고스란히 다 느껴질 정도였지.


"그래서 오자마자 아빠를 찾았구나."

"엄마... 미.."


"미안하단 소리 하지 마!"

"... 흐아앙..."


답답한 마음에서였겠지... 미안하단 말만 반복하는 엄마에게

날카롭고 큰 목소리로 소리 지르는 외할머니의 모습에

아빠는 더 주눅이 들어버렸어.


"어휴.. 애는 어떻게 키우려고. 도리 너 아직 학생 아니니?"

"네.. 하지만 바로 취업 알아보겠습니다."


"아휴 내가 진짜 이것들을! 알았어. 일단 알았으니까 돌아들가."

"네?"


화를 억누르며 외할머니는 우리 보고 돌아가라고 말씀하시고

계셨어.


"내가 지금 이 기분으로 너희들 데리고 짬뽕 먹으러 가게 생겼니?

낳아야지 어떡해? 이미 생긴 애를"


"어머니..."

"아휴 속상해... 얼른가! 니들아버지 오면 난리 난다.

내가 상황 봐서 잘 얘기 할 테니까 일단들 돌아가.

미진이는 오늘부터 몸 조심하고... 아유 진짜 울화가..."


다른 말은 하지 못했어. 누구보다 멋지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호언장담하기에 그 당시 아빠는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학생이었을 뿐이었고, 무엇보다 그 당시 그 상황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외할아버지가 오기 전에

빨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거든.


생각해 봐.


애지중지 키운 자기 딸을 임신시켜서 데리고 왔는데

가만있을 아빠가 어디 있겠니? 두들겨 패서 내쫓지 않으면

다행이지...


병원로비에서 신생아실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이동하는데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사이가 서먹했었다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빠는 외할머니를 무서워했거든.


학생인 주제에 자기 딸을 억지로 임신시켜 결혼까지 했으면서

책임도 지지 못하는 파렴치한으로 생각하고 계실 거란 생각에

말야.


"박미진 산모 아기 보러 왔는데요?"

"아~ 아버님이시구나? 잠시만요 안에다 전달할게요."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신생아실 안에는 많은

아기들이 누워있었어.

그중에 한 곳에 걸려있는 팻말 같은 표가 눈에 띄었지.


[박미진 산모]


'저 아인가...? 되게 조그맣네..'


아니나 다를까 유리벽 너머에 있던 간호사가 그 아이를

조심스레 않는데.


"아이고! 살살! 조심히 좀!"


누가 봐도 아무 문제 없이 그냥 안기만 했는데도. 너희 외할머니는

마치 간호사가 실수라도 한것마냥 안절부절하며 간호사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어. 얼굴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지.


"아주 그냥 지애비를 빼다 박았네? 도서방? 어떤가?

아빠 된 기분이?"

"아빠.. 제가요..?"


"애 보게? 그럼 니가 아빠지 내가 아빠니?"


'아빠... 아빠라고... 내가...?'


감격? 감동? 설레임? ... 아빠가 정말 미안한데.

첫 만남에 아빠에게 그런 건 없었어.


그저 아빠라는 단어에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돈 때문에 허덕이고, 아직 세상이 뭔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아빠가 된다?

그리고 유리벽 넘어 곤히 자고 있는 저 아이가

내 아이다? 전혀 실감이 안 되는 상태로 그냥

외할머니 따라 얼굴만 웃고 있었던 거지.


아빠에게 퉁명스럽게 한마디 휙 던지신 외할머니는

간호사에게로 다가서는 다짜고짜


"그래서 애는 언제 안아볼 수 있데요?"

"조금 있다가 병실로 전화드릴 거예요 할머니"


"할머니는? 아... 내가 할머니구나"


아빠처럼 갑자기 바뀌어버린 호칭에 당황하면서 말야.


"저기..."

"네 아버님?"


외할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다시 신생아실로 들어가려는

간호사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물었어.


"박미진 산모는 회복실에서 나왔나요?"

"아. 병실로 이동했어요. 올라가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간호사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아빠는 엄마가 있는 병실로

향했지.

그곳엔 온몸이 퉁퉁 부어서 링겔을 꽂고 힘없이 누워있는

엄마가 보였어.


"미진아 괜찮아? 고생했어..."

"도리.. 이씨.. 왜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아빠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면서 할 수 있는 건 손을 꽉 잡아주는 거밖에

없었지.


"아저씨.. 잠깐만 비켜봐 나 이거 눌러야 돼"

"응? 그게 뭔데?"


자세히 보니 링겔에 뭔가 버튼 같은 게 연결되어 있었고

엄마는 필사적으로 그걸 몇 번을 반복해서 누르고 있었어.


"몰핀.. 진통제? 으아.. 아프다요.."


얼마나 아픈지 계속 누르는 엄마가 안쓰럽다가도


'저거 계속 눌러서 약 금방 달면 돈 많이 나오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아빠 자신이 참 미워지더라.


"근데 그거 계속 눌러도 돼? 의사나 간호사가 그래도 된데?"

"아야야... 괜찮아.. 어차피 여러 번 눌러도 한 번만 들어가거든.."


"에? 근데 왜 자꾸 눌러? 한 번만 들어간다며?"

"나도 알아! 안다고.. 그런데 너무 아파.. 이거 누르면서

최면이라도 거는 거야.

미진아.. 괜찮다.. 몰핀 들어갔다.. 이제 안 아프다.."


"그래서.. 효과는...?"

"아파.. 최면 좀 걸어줘 도리아저씨.."


어떻게 보면 아이 같은 엄마의 모습. 아빠가 사랑하는 모습 중

하나인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상황에서도 어찌나 웃기던지.

지금까지 있었던, 지금까지 했었던 고민과 걱정들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었지.


"참 미진아. 그거 알아?"

"흐잉.. 아파.. 뭐?"


"너 오늘.. 엄마 됐다? 아줌마 됐다고~"

".... 아니야 니가 엄마해.. 니가 이거 해.. 나 아빠 할래. 안 아플래."


"그리고... 나도 오늘 아빠 됐데...

 다들 그렇게 말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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