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גלגול, 길굴, Reincarnation)과 유대교 전통
유대교는 환생을 믿나요?
종말론(eschatology)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세계사의 최종적 사건들을 다루는 신학(theology)의 한 분야로 정의됩니다. 사실 종말론은 종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세속적 종말론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마르크스주의(Marxism)일 것입니다: 계급 전쟁의 격변과 고통, 그 악이 계급 없는 사회로 해소되는 과정, 국가의 소멸, 그리고 영원한 행복의 존재.
유대교의 종말론은 세 가지 기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메시아의 시대."
"저승."
"부활의 세계.“
전통적인 유대교 사료에 따르면, 메시아는 혈육을 가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인간일 것입니다. (Maimonides, Melachim 11:3) 이는 그를 원죄 없이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기독교 사상과는 다릅니다. 실제로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메시아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죽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Commentary to the Mishnah, Sanhedrin 10:1; cf. Sanhedrin 99a.)
그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역사의 고통을 끝내고 인류 전체에게 새로운 행복의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Maimonides, Melachim 11:3; 12:5) 그가 나타나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시기를 메시아 시대라고 합니다. 탈무드의 한 견해에 따르면, 이 시대는 자연의 법칙이 뒤집히는 명백한 기적의 시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 새롭게 도입될 유일한 요소는 민족 간의 평화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박해와 반유대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주권 아래 자신의 땅에서 살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게 자신의 영적 목표를 추구할 것입니다. (Sanhedrin 91b, 99a; Berachos 34b; Pesachim 68a; Shabbos 63a; cf. Maimonides, Teshuva 9:2,)
내세는 전통 문헌에서 올람 하바(olam habah) 또는 다가올 세상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같은 용어인 "올람 하바"는 미래의 새롭게 된 유토피아적 세계, 즉 부활의 세계, 올람 하찌야(עוֹלָם הַתְּחִיָּה, olam hat'chiah)를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Raavad, Hilchos Teshuva 8:8; Kesef Mishnah, Teshuva 8:2;)
전자는 의로운 영혼들이 죽은 후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첫 번째 죽음이 발생한 이후로 계속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곳은 때로 영혼의 세계라고도 불립니다.(Ramban (Nachmanides), Shaar HaGemul). 영혼들이 육체를 벗어난 상태로 존재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기쁨을 누리는 곳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임사 체험은 아마도 영혼의 세계를 엿보는 경험일 것이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후 세계라는 용어가 언급될 때 떠올리는 바로 그 장소입니다.
부활의 세계는 이와 대조적으로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탈무드는 언급합니다. (Sanhedrin 99a.) 대부분의 권위자들에 따르면, 이는 육체와 영혼이 재결합하여 진정으로 완전한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메시아가 오신 후에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며, "대심판의 날"(יוֹם הַדִּין הַגָּדוֹל, 욤 하딘 하가돌)이라는 사건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세계는 궁극적인 상급으로, 육체가 영원하고 영적인 존재가 되는 동시에 영혼은 더욱 그러한 존재가 되는 곳입니다. (Derech Hashem 1:3:13.)
"다가올 세상"과 같은 개념에 비하면, 환생은 엄밀히 말하면 진정한 종말론이 아닙니다. 환생은 단지 종말론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영혼이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현세에 다시 진입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활은 영혼이 (새롭게 재구성된) 이전 몸과 재통합되어 "다가올 세상"으로 가는 것인데, 이는 세계사가 아직 목격하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순수한 종말론적 개념입니다. 부활의 목적은 육신에 영원을(그리고 영혼에 더 높은 완전함을) 보상하는 것입니다. 환생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생의 실패를 만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새롭고 더 높은 개인적 완전성의 상태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Shaar HaGilgulim, Chapter 8; Derech Hashem 2:3:10.) 따라서 부활은 보상의 시간이고, 환생은 회복의 시간입니다. 부활은 수확의 시간이고, 환생은 파종의 시간입니다.
유대교 전통에 환생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유대교 신비주의의 고전적 텍스트들 곳곳에서 언급되며, 특히 카발라의 주요 원전인 조하르(Zohar))에서 시작됩니다:(Tikkunei Zohar 1a)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한, 거룩하신 분께서는 그를 뿌리째 뽑고 다시 심으시고 또 다시 뿌리째 뽑으시고 다시 심어 주십니다.” (조하르 1권 186b)
“모든 영혼은 윤회의 법칙에 따르나니, 사람들은 거룩하신 분의 길을 알지 못하도다! 그들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과 떠난 후에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겪어야 할 수많은 환생과 비밀스러운 일들, 그리고 벌거벗은 영혼들의 수와 얼마나 많은 벌거벗은 영들이 왕궁의 휘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저 세상에서 방황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영혼이 새총에 매달린 돌처럼 회전하는 방식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신비들이 드러날 때가 가까워졌다.” (조하르 II 99b)
조하르와 관련 문헌에는 환생에 대한 언급이 가득합니다. 어떤 몸이 부활하는지, 최종적인 완전성에 도달하지 못한 몸은 어떻게 되는지, 영혼이 환생을 통해 완전성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주어지는지, 남편과 아내가 함께 환생할 수 있는지, 매장이 늦어지면 환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영혼이 동물로 환생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다룹니다. (E.g. Zohar III 216a; Tikkunei Zohar 6 (22b), 32 (76b), Tikunnei Zohar 70 (133a) etc.)
1세기의 현자 네쿠니아 벤 하카나(Nechuniah ben Hakanah)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바히르( Bahir)는 환생을 통해 신의 정당화에 대한 고전적인 질문을 다루었습니다. 즉, 왜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고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는가:
‘왜 어떤 의인은 좋은 일이 생기고, 다른 의인은 나쁜 일이 생기나요? 이는 후자의 의인이 전생에 악을 행했기에 지금 그 결과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떤 비유인가요?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가꾸어 포도를 맺기를 바랐으나 신 포도만 열렸습니다. 그는 심고 거두는 일이 성공하지 못함을 보고 포도나무를 뽑아버렸습니다. 신 포도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다시 심었습니다. 심은 것이 성공하지 못함을 보자 다시 뽑아내고 또 심었습니다.’ (바히르 195)20
환생은 권위 있는 고전 성경 주석가들, 즉 람반(나흐마니데스), 메나헴 레칸티, 라벤누 바히야 등에 의해 인용됩니다. "아리(Ari)"로 알려진 성스러운 랍비 이쯔하크 루리아의 수많은 저작들 중 대부분은 그의 주요 제자인 랍비 하임 비탈의 필치로 전해지는데, 여기에는 환생과 관련된 문제들을 설명하는 심오한 통찰들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그의 저서 『샤르 하길굴림』(Shaar HaGilgulim, "환생의 문")은 오로지 이 주제에 전념한 책으로, 성경 시대부터 아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경 인물들의 영혼 근원과 그들이 환생한 대상에 관한 세부 세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리의 가르침과 세계관 체계는 그의 사후 유럽과 중동의 유대인 세계 전역에 들불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이전에는 유대인 대중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환생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아리 이후 환생은 유대교 관용어와 학문의 일부가 되어, 탈무드 고전 주석가들(예: 마하르샤, 랍비 모세 아이델스)부터 하시드 운동의 창시자 바알 셈 토브, 그리고 비하시드 세계의 지도자 빌나 가온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학자와 지도자들의 사상과 저술에 깊이 뿌리 내렸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적 성향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권위자들조차도 환생을 기본적인 교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이 환생의 원리에 대한 성경적 암시로 인용하는 텍스트 중 하나는 욥기의 다음 구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시는 것은 -- 사람에게 두 번, 심지어 세 번까지도 -- 그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되돌려 살려내어 생명의 빛으로 깨우치게 하려 하심이라.” (욥기 33:29)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구덩이"(게힌놈(גֵיהִנּוֹם) 또는 "연옥(Purgatory)"을 가리키는 고전적인 성경 용어 중 하나)에서 "산 자의 세상"으로 두 번, 심지어 세 번(혹은 여러 번) 돌아오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비주의자들은 이 구절과 다른 구절들을 단순히 환생이라는 개념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개념의 진정한 권위는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Excerpt from Soul Searching, Targum Press, by Yaakov 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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