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축복으로 난 딸 쌍둥이를 낳았다.
엄청난 행복이기도 했지만 그 때는
아이를 키우기엔 형편 없는 수준의 급여였다.
그래서 투잡을 넘어 쓰리잡을 뛰어야 했다.
당시에 내 일과를 돌이켜보면 어떻게 살았지?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오후 6시에 회사 일과가 끝나면
7시부터 인덕원 대리운전 회사로 출근을 한다.
밤 12시까지 대리운전을 하다가
새벽 1시에 1호선 오류역에 앞에서
술 취한 승객들 대상으로 악세서리를 판다.
왜 오류역이냐고? 집 앞이다!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2시다.
칭얼거리는 쌍둥이 중 하나를 업고 나가서 재운다.
자리에 눕는 시간은 3시! 또 7시에 일어난다.
그런 생활을 2년 정도 하던 어느 날
회사에서 갑자기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 했고
억지로 몸을 끌고 1층에 있는 가정의학과를 갔다.
치료받는 환자와 대기하는 환자가 있었지만
다짜고짜 의사한테 가서 살려 달라고 했다.
의사도 긴박함을 느꼈는지 불빛을 눈에 비춘다.
의사 왈 “동공이 축소되고 뇌압이 상승해서
10분후에 죽을 것 같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의사가 한 말이다.
몸이 마비되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날 데려간 직원이 119를 불러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제길 그러는 과정에 이미 10분은 지나갔다.
돌팔이 의사의 오진으로 난 쇼크를 받았다.
이것이 공황장애의 시작이었다.
계속 되는 몸의 이상으로
내과, 신경외과, 한의원까지 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에 공황장애는 지금처럼 흔한 질병이 아니었고
정신병의 일종으로 치부되던 때였다.
소개로 신경정신과에 갔고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처음엔 약물치료에 의존했지만
차츰 약을 줄이고 정신치료를 늘여갔다.
지금은? 극복할 수 있는 내성이 생겼고
내게 맞는 치유 방법을 나 스스로 알게 될 정도가 되었다.
의사는 아니지만 경험자로서 공황장애의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 부담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다가 어떤 자극을 받게 되면
표출이 되는 거다.
치료는? 내 안에 있는 공황증
(나는 “동수”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과
싸워서 이기면 된다!!
처음엔 어렵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충분이 이길 수 있다.
굳이 공황장애를 이겨낸 것이 추억인 이유는
“동수”와 싸워 이겨내는 과정이
내가 삶에 대한 의지를 키워나가는 과정이었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동수”(공황증)와 싸워 이기는 노하우를
알고 싶은 분은 댓글을 남겨 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