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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잘못된 해석덕분에, 천주교는 천원이다.

까니 |2026.06.07 10:14
조회 7 |추천 0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ㅡ 마르코 12장 38-44절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ㅡ 마르코 12장



그러면, 십일조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헌금액수가 아닌가.

그러면, 돈을 많이 낸다고 해서, 돈을 헛투로 낭비하는데 쓰여진다는 말인가. 오히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쓰는 좋은 목적이 아니었던가.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 십분의 일이나 낸다고해서, 그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는가.

예를들면, 그들의 수입이 100원이면, 그들은 십일조로 10원을 내게 된다.

90원이 유지가 되는데도, 그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가해지게 된다는 오히려 터무니없는 말이 아닌가.

10원이 수입이면, 그들은 십일조로 1원을 내게 된다.
9원이 유지가 되었다.


적을수록 심각하게 적은 액수를 내게 된다.
그래도, 불합리한가.



깊이 생각해보면, 오히려 금액이 정해지지 않아서 생기는 "마음대로 내도 된다."는 무규칙에 의지해서 아무렇게 내는 심각한 혼란 그자체인 문제보다, "사람의 힘"보다 "성경의 힘"을 택하여, 성령을 힘입게 한 하느님의 지혜이자 하느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개신교의 지혜가, 개신교가 들어온지 얼마되지않았어도, 그 개신교 신자수 급증으로 순식간에 1000만이라는 결과로 나옴으로써, 우리 앞에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바티칸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까지 보여주시는 그야말로 해결책으로 쓰기에 지나치지 않는, 가장 적절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가장 이상적인 헌금의 액수가 아니었습니까.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는 "천주교는 모든 사람들이 천원씩만 내라."는 인식으로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도 있어야 힘도 생기는,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힘이 없는 바티칸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큰 힘과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자본주의 세상이라서, 지금도 바티칸은 생각보다는 힘이 없지 않습니까.



더 강한 힘을 가질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제어할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악신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막대한 힘이 필요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다음 상대는 오직 평화로운 세상이라서, 이와 똑같은 일이 절대없다는 추측이자 상상이 아닙니까.


1000분의 1의 확률이 생겨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에도 막대한 돈이라는 힘이자 통제력을 가지지 못해서는 지금처럼 악과 서로간에 계약에서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계약을 맺어야만 했었으며, 심지어 약간의 불공정한 손해가 존재하는 계약도 합의를 보겠다는 지금의 상황을 되풀이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비춰지는 시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은 곧, 힘이 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간의 힘입니까. 성경의 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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